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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귀농 창업가들] 사업은 도시에서만? 천만에요 

30대 이하 귀농·귀촌 인구 4년 만에 11배로 늘어 ... 지역특성·아이디어 앞세워 성공 


▎1. 장훈 자연목장 대표. / 2. ‘정가네식품’의 정영균·김현숙 부부.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젊은이들이 있다. 농촌을 농사 짓고 가축만 키우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장소로 바라보는 이들이다. 1차산업인 농·수·축산업과 2차산업인 제조·가공업, 3차산업인 서비스업을 융·복합화해 결합하는 이른바 ‘6차산업’을 일컫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612가구이던 30대 이하 귀농·귀촌 가구 수는 2014년 7743가구로 4년 만에 11배로 늘어났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농촌이 새로운 도전 장소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먼저 내려가서 성공을 거둔 농촌 창업자들의 사례가 중요한 이유다.

인터넷 직거래로 수익 올리며 수요도 파악

경남 함양에서 농산물 가공기업 ‘정가네 식품’을 운영하는 정영균(33)·김현숙(32) 부부는 대표적인 농촌 창업가로 꼽힌다. 정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도시에서 마친 도시인이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다. 아동쇼핑몰을 운영하던 정씨 부부는 사기를당해 사업을 접었다. 살길을 찾아 고민하던 정씨 부부는 2009년 12월 귀농을 단행했다. 도시가 아니라 농촌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이들은 가전제품과 옷 등 생활용품을 중고시장에 내다 팔아 종잣돈 300만원을 마련했다. 그리고 짐을 싸서 도시를 떠났다. “아버지 고향이라 함양으로 왔습니다. 평생 지낼 곳이라 생각해 천천히 마을 사람들을 알아가며 농사일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곧바로 농사를 시작하는 대신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지역의 특산물과 지리적 특성, 사업 환경을 살폈다. 어느 정도 농사일을 배우고, 지역 특산물에 대해 깨우치자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했다. 지역 특산물을 다른 지역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젊은 사람이 마을에 오니 새로운 판매처가 생겼다”며 이를 반겼다. 흑미·민들레·헛깨·돼지감자·배·양파 등 함양 지역 농작물을 주로 거래했다. 인터넷 직거래로 수입원을 확보하며 고객 수요도 파악했다. 작물뿐만 아니라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확인한 정씨는 사업을 키웠다. 설비를 들여와 가공 제품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이때 흑염소 사육도 시작했다. 지리산 자락 청정지대에서 키우는 흑염소 엑기스라는 점을 홍보하며 고객을 늘렸다. 지금 흑염소 엑기스는 정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인 ‘정가네 식품’의 주력상품으로 자리잡았다. 6마리로 시작한 흑염소는 이제 200두에 달한다. 귀농 5년차를 맞은 정씨는 연간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는 “농업이 어려운 사업인 점은 동의하지만 시장성을 살피며 차별화된 방식으로 접근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귀농한 장훈(34)·이연재(33) 부부도 좋은 사례다. 이곳 자연목장에선 한 달에 한 번 ‘도르리’가 열린다. 도르리는 장씨 부부가 직접 키운 흑돼지를 여러 사람과 나눠 먹는다는 의미를 살려 고안해낸 판매 방식이다. 젊은 부부는 목장 돼지 중 딱 6마리만 도축해 직접 포장하고 배송한다.

인터넷으로 선주문을 받는 것 외엔 따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다 보니 부위 별로 파는 게 불가능해 세트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구이용·찌개용·볶음용 등으로 포장된 한 세트 가격은 5만원대. 운이 좋을 때는 목장 닭이 낳은 달걀이 서비스로 나가기도 한다. 장훈 자연목장 대표는 “3년 전 귀농해 돼지를 키우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들이 늘었다”며 “한달 간 주문을 받아 월말에 배송하는데 예약이 일찍 마감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던 부부가 귀농을 결심한 건 5~6년 전쯤. 공장식 축사에서 크는 가축의 동영상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고기를 끊었어요.

처참한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를 나와 가족이 먹고 있다는데 거부감이 들었죠. 그런데 아예 안 먹을 순 없겠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직접 건강한 돼지를 키워보면 어떨까 생각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부부의 결심대로 자연목장의 흑돼지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크고 있다. 부부는 올 봄 목장 인근에 첫 복숭아 묘목을 심었다. 아들의 이름을 딴 과수원을 만들 계획이다. 자두·고구마·돼지감자 등도 소규모로 재배 중이다. 흑돼지와 마찬가지로 무농약 원칙을 지킨다.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돼지가 자라는 환경을 직접 보여주고, 다양한 농작물의 생산과정을 교육할 수 있는 체험농장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아내 이씨는 일찌감치 채소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전통음식·술·차를 만드는 교육도 받아왔다. 장 대표는 “귀농 생활이 쉽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도시 생활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며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었고, 직접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고 말했다.

이석무(33) 젊은농부들 대표는 야심찬 ‘창농가(창업으로 농업을 택한 사업가)’다. 이 대표는 2010년 충북 음성군 감곡면으로 귀농했다. 블루베리 열매가 채 여물기도 전에 가공식품 생산과 농촌 체험을 동시에 시작한 까닭은 ‘농업은 곧 사업’이라는 철학 때문이었다. 지자체나 농업학교에서 열리는 교육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도서관에서 농작물 재배는 물론 가공·판매·체험농장 운영 등에 대한 서적을 섭렵하며 공부를 이어갔다.

그는 “농업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고부가가치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도시 대신 농촌에서 창업에 도전한 셈”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부모를 설득한 그는 아버지가 공장 부지로 마련한 땅을 임대해 블루베리 농장을 조성했다. 블루베리가 건강식품으로 인식되던 당시 트렌드에 맞춰 재배 작물로 택한 것. 이 대표는 “블루베리는 효능에 비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과일이었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은 과일이었다”며 “지금은 생산농가가 많아지고, 수입 물량도 늘었지만 대중화된 덕분에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경쟁 농가는 늘었지만 상품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그는 지난해 말 농장 근처에 가공식품 공장을 세웠다. 이전까지 소규모로 직접 생산하던 잼·즙·발효원액·비누 등을이젠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MBA 다니며 농촌 사업 구상

또 다른 사업 분야는 ‘팜핑(Farm+Camping)’이다. 농장 체험에 캠핑을 더한 개념으로, 이 대표가 직접 고안해냈다. 지난해 숙박객만 1500명이 들었다. 일반적인 체험농장이 잠깐 농장을 방문해 과일을 따서 가공품을 만들어보는데 그치는 데 반해 젊은 농부들의 팜핑은 숙박으로 이어지는 캠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귀농 5년 만에 이 모든 사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데는 철저한 계획이 밑바탕이 됐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생산-가공-체험에 이르는 6차 산업을 목표로 한융·복합사업을 꿈꿨다”며 “농사만 지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귀농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틈틈이 대학 MBA 과정을 밟으며 6차 산업 실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은 젊은 또래들에게 “농사를 짓기전에 농업과 관련된 다른 일부터 시작해보라”며 “귀농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농업에도 아이디어를 보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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