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새플링에서 운영하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널리 퍼져야 할 아이디어’라는 모토로
경제·경영·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저명 인사들의 동영상 강의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TED 웹사이트에 등록된 강의(1900여건)는
대부분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시사성 있는 강의를 선별해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DJ나 VJ처럼 LJ(Lecture Jockey)로서 테드 강의를 돌아본다.
▎ 일러스트: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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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구에서는 해마다 국가별 ‘행복지수(Happiness index)’라는 걸 조사해서 발표한다. 대개 국민소득이나 삶의 만족도 등을 조사하고 여기에 이런 저런 가중치를 곱하고 더해 계산한다. 예를 들어 2002년 영국에서 개발된 행복지수는 네 가지 항목으로 되어 있다(각 10점 만점). ①나는 외향적이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②나는 긍정적이고 스스로 잘 통제한다. ③나는 건강·돈·안전·자유 등 나의 조건에 만족한다. ④나는 내 일에 몰두하며 스스로 세운 기대치를 달성하고 있다. 이들네 개 항목 각각의 점수가 계산되면 당신의 최종 행복 점수는 (①+②)+(5×③)+(3×④)이란다(100점 만점).그저 놀랍다. 불행한 수재도 있고, 행복한 바보도 있는 것 아닌가. ‘투뿔(1++)’ 한우가 질기다고 짜증내는 사람도 있고, 비계 잔뜩 붙은 삼겹살 앞에서 마냥 즐거운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렇게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개인의 행복을 점수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이런 점수화가 행복을 갉아먹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살짝만 들춰 보자. 2015년 UN이 발표한 국제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158개국 중 47위란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들을 빼고 나면 이건 뭐 사실상 꼴찌권이다. 아, 역시 불쾌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33위라고 해서 역시 OECD가 UN 보다 좀 낫구나 했는데, 34개국 중 그렇단다.
불행한 수재, 행복한 바보의무는 원래 성가시다. 그래서 학교는 지겹고(교육의 의무), 군대는 끔찍하고(병역의 의무), 세금은 피하고 싶은 거다(납세의 의무). 반면 권리는 즐겁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떡 하니 써 있다. 그렇다면 맘껏 행복을 찾고 누려야 마땅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사실 우리는 성적·합격·승진·포상 같은 거 빼고는 어떻게 행복을 추구하는지를 모르고 살아 간다. 캐나다에 사는 ‘별로 행복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청년 닐 파스리차(Neil Pasricha)는 인생의 불행하고 우울한 순간에 우연찮게 나름의 행복 비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들어 보자.파스리차는 비록 가난했지만 조용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거쳐, 무탈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까지 했다. 그의 삶은 물처럼 흘러갔다. 그런데 2008년 어느 날, 그는 아내로부터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날벼락 같은 통보를 듣는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전날까지 수다를 떨었던 하나뿐인 죽마고우가 바로 다음날 자살했다는 끔찍한 소식까지 접하게 된다. 그때부터 파스리차의 삶은 망가져 갔다. 그의 주위에는 늘 어둠의 그림자가 맴돌았고, 하루하루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TV를 켜도 온통 전쟁·기아·재앙·테러·실직 같은 우울한 소식만 넘쳐났다. 한마디로 모든 게 엉망이었다.
▎‘놀라운 세 가지 A’ 강연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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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파스리차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든지 긍정적인 것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슬며시 기분 좋은 순간들을 적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알아서 공짜 리필을 해 줄 때라든지, 목요일인 줄 알았는데 금요일이었을 때 같은 것들 말이다. 일상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그는 ‘1000가지 굉장한 것들’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계속해서 즐거운 생각들로 채워 나갔다(1000awesomethings.com).예를 들면 교통 관련해서라면 차를 몰고 가는데 계속 파란불을 만날 때, 러시아워 때 내 차가 서 있는 차선이 가장 빨리 움직일 때, 갑자기 과속 카메라를 만났는데 다행히 정속으로 달리고 있었을 때,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가 착륙할 때 잠에서 깼을 때 같은 것들이다. 횡재 관련해서는 마트 계산대에서 맨 뒤에 서 있는데 옆에 새로운 계산대가 막 열렸을 때, 자판기에서 음료 두 개가 한꺼번에 나올 때, 작년에 입었던 옷 주머니에서 20달러를 ‘발견’했을 때,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말짱할 때 등이 있다. 일 관련해서는 사장의 잔소리가 짧게 끝날 때, 상사가 일이 있다며 일찍 퇴근할 때,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상대가 더 늦게 나올 때, 데드라인이 예기치 않게 연장될 때, 알람 맞춰놓는걸 깜빡 했는데 제 시간에 눈을 떴을 때 등이다(직장인들은 200% 공감할 듯). 아주 소소한 일상 관련해서는 하루 종일 이빨에 껴있던 팝콘 조각을 빼냈을 때, 치과의사가 더 이상 충치가 없다고 말해줄 때, 시험에서 찍은 게 용케 맞았을 때, 집에 찾아온 손님이 하지 말랬는데도 설거지를 할 때, 한 대쳤더니 전기기구가 다시 잘 켜질 때 등이다.재미 삼아 시작했던 그의 블로그는 점점 인기를 얻게 되고 어느 순간 접속자 수가 수백만명으로 불어난다. 비슷한 우울과 좌절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리라. 급기야 다음해 그는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고 하는 웨비상(Webby award)의 블로그 부문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더욱이 블로그 내용을 [행복 한 스푼(The Book of Awesome)] 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는데 10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된다.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시작한 일이 불행도 잊게 하고, 덤으로 기대치 않았던 행운까지 가져 온 것이다.테드 무대에 선 파스리차의 얼굴은 참 행복해 보인다. 돈벼락을 맞아 반쯤 취한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감사가 녹아있는 담담한 행복이다. 그는 자신의 행복 비법을 3가지 ‘A’에 담아 소개한다. 우선 태도(Attitude). 괴롭고 슬픈 상황에 닥쳤을 때 세상을 욕하고 영원히 비관에 빠지느냐, 아니면 툭툭 털고 새롭게 펼쳐질 미래를 직면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두 번째는 지각(Awareness).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리는 세 살아이의 호기심과 순수함을 가질 때 행복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A는 진정성(Authenticity).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따라 진정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해야 행복이 찾아 온다.
삶의 끝자락에서 찾은 행복의 원천결국 행복은 습관이고 마음먹기 나름이다. 옆에서 보기에 행복의 요소를 다 갖춘 것 같은 사람도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프랑수아 를로르의 소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정신과 의사 꾸뻬씨가 전 세계를 방랑하며 행복의 비법 23가지를 찾아 낸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가 어렵사리 찾아낸 비법이란 것이 고작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별로 대단할 것 없는 것들이다. 결국 파랑새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나 보다. 아니라고? 그러면 불행해 진다. 판단은 각자의 몫.한때 직장가에서 감사나누기 운동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명분도 그럴싸하고 회사에서 은근히 독려도 했지만 솔직히 며칠 시늉만 하다가 흐지부지된 기억이 있다. 직장은 한가한 ‘감사 무대’가 아니라 살 떨리는 ‘밥벌이 무대’라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이제 생각을 좀 바꿔보자. 묵직한 감사 대신 가벼운 일상에서 자잘한 재미를 찾아 보는 거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고장 난 ‘행복 센서’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내년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UN의 국제행복지수 비교표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