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신기술의 허와 실] 신기술일까, 신기루일까? 

사물인터넷·3D프린팅, 개인 소비자가 쓰기엔 무리 … 신기술 테마주 투자 유의해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이 등장하는 시대다. 3차원(3D)프린터,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IoT) 등이 그 예다. 더구나 지난 40여 년간 정보통신 시대의 상징이던 PC와 인터넷이 점차 모바일에 자리를 내주면서 여러 산업에서 모바일을 활용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다. 특히나 초기 단계의 신기술 혹은 개념들은 그 모호함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과대평가되는 경향도 있다. 이로 인해 경영자는 어떤 기술이 실제 잠재력이 있는지 평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열광적 관심 지나면 기술 침체 구간


첨단소재를 연구하는 한 연구자의 말을 들어보자.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이 기술은 정말 대단하고 파급효과가 크다’고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용성이나 상용화 가능성보다는 이것으로 무엇이 가능한지를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약간의 과장도 섞어 장밋빛 미래를 내놓는다. 더욱이 언론이 가세하면 살이 더 붙어 지금 당장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처럼 포장된다. 물론, 모든 신기술이 똑같진 않겠지만 심지어 내가 연구하는 분야도 ‘저 기술이 저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닌데’ 싶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신기술은 많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 세포 복제나,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된 나노이미지센서 연구 같이 거짓으로 밝혀진 일부의 사례만 말하는 게 아니다. 더 심각한 건 시간에 대한 오해다. 대부분의 신기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나서 본격적으로 산업에 적용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기술이 이슈가 되는 순간 많은 이들은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사람들의 기대와 상용화 사이에 시차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시차를 분석한 게 미국 IT 전문 리서치 업체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관심 주기)’이다. 기술의 실제 발전단계와 상관없이 시간에 따라 얼마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느냐를 그린 그래프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기술에 대한 기대는 시간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나타낸다. 초기의 신제품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업고 많은 매체에 언급된다. 이때 신제품에 대한 과대평가와 효과에 대한 환상도 종종 보인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 신기술이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초기에 가졌던 기대는 급격한 실망으로 바뀐다. 점차 관심과 기대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는 어두운 시간을 보낸다. 그 후 환상이나 과대평가 대신 그 기술이 가진 실용적인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비로소 ‘얼리 어댑터’가 아니라 상용화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기술들도 있다. 지난해 8월 가트너가 발표한 ‘2014년 하이프 사이클’에 따르면 현재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사물인터넷과 개인용 3D프린팅 등은 버블기에 해당된다. 가트너는 이 기술들이 상용화되는 데 적어도 5~1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의 신기술이 우리가 상상한 것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과거 주목을 받았던 ‘유비쿼터스’가 지금의 사물인터넷으로 변형돼 다시 버블기를 거치는 것이 예다. 지금의 기술이 흔히 예상하는 모습대로 발전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초 딜로이트컨설팅이 발표한 ‘2015년 TMT(기술·미디어·통신) 보고서’는 사물인터넷·3D프린팅·드론 등 몇몇 신기술에 대해 시장이 기존의 시각과 다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딜로이트의 정성일 전무는 “정보통신 시대가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최근의 모바일 혁명 등은 개인 소비자가 주도했지만, 전혀 다른 기술의 패러다임이 시작될 시점인 지금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기업이 기술의 공급자이자 수요자가 될 것”이라며 “이 경우 기술 발전 속도는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가 전망한 각 기술별 미래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 사물인터넷 언론에서는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보안·난방·가전기기 제어 등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런 호들갑에도 당분간 개인의 사물인터넷 제품 수요는 기업 소비자의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다. 사물인터넷은 문제의 일부분만을 해결해준다. 원격에서 세탁기를 가동시킬 수는 있어도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꺼내서 널고, 개서 옷장에 넣는 일거리가 남는다. 이처럼 기술의 혜택에 비해 도입 비용은 너무 크다. 여러 종류의 기기가 난립해 기기 간 연동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 쉽지 않다. 또 개인이 사물인터넷으로 행동 패턴을 쉽게 바꾸지도 않는다. 실제 미국에서 전기 사용을 분석해주는 스마트 미터기를 설치한 소비자를 분석했는데, 설치 후 3년간 한 번이라도 이를 확인한 가정은 6%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가령 비슷한 스마트 미터기를 발전소에 설치하면 정밀한 수요 예측과 공급으로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약한다. 이처럼 사물인터넷은 기업의 수요가 훨씬 크다. 따라서 사물인터넷은 산업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될 것이다.

② 3D프린팅 2017년까지 판매되는 장비의 약 70%는 가정용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3D프린터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90% 이상은 기업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3D프린터는 비싸다. 비교적 싼 1000달러 이하의 가정용 프린터는 사과 정도 크기의 물체만 인쇄 가능하다. 재료도 한정적이고 품질도 조악하다. 조정·유지·사용도 극도로 까다롭다. 1~2℃의 온도 차만 있어도 하자가 생긴다. 속도도 느리고 플라스틱으로 한정된 인쇄 재료는 비싸기까지 하다. 불편함을 겪으면 사용을 포기할 것이다. 한 예측에 따르면 판매된 프린터 중 2016년까지 사용되는 비율은 10%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정에서의 3D프린터는 ‘가정용 전동 공구’처럼 어쩌다 한 번 꺼내 쓰는 정도가 될 것이다. 이와 달리 기업의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제조업체에 가장 중요한 재료인 금속을 인쇄하는 프린터가 적고, 그나마도 시간·비용에서 비효율적이다. 사용처도 한정적이다. 3D프린터 활용이 많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대부분 시제품(90%)이나 금형·주형(10%) 제작에 쓰인다. 실제 판매할 최종 제품에 쓰는 사례는 없고, 앞으로 2년간 그럴 계획도 없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3D프린팅으로 만든 보청기와 인공 치아가 자주 인용되지만, 그 사례도 적고 아직은 전통적인 제조 방식이 더 빠르고, 싸고, 품질이 좋다.

③ 드론 활용범위가 굉장히 방대해지겠지만, 관련 산업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최근 드론은 카메라·충전기·GPS·무선 컨트롤 등의 발달로 항공 촬영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격한 수요 증가로 대규모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기는 어렵다. 비행거리가 짧고 악천후에는 속수무책이다. 일반 소비자는 20분밖에 못 날고 추락 가능성도 있는 드론보다는 스마트폰이나 다른 장난감에 지갑을 열 것이다. 규제의 불확실성도 크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벌금이나 비행 금지 구역 같은 규제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규제로 인해 소비자의 드론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 물론 기업과 정부의 활용도는 높다. 그러나 필요 수량이 많지 않다. 업무당 한 대씩이면 충분하다. 심지어 드론은 헬기보다는 싸지만 차보다는 비싸다. 드론을 통한 운송 역시 비싸고 가벼운 짐에 대해서만 경제성이 있다. 향후 5년 동안 이 비용의 급격한 하락은 어렵다.

이 보고서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빅데이터·자율주행차·온라인전기자동차(OLEV)·그래핀 등도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빅데이터의 활용도는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데이터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이를 공유하지 않고 있어 말 그대로 ‘빅(big)’ 데이터가 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개인이 이를 활용할 방안은 거의 없다. 자율주행차는 IT와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아직은 드론과 마찬가지로 규제의 불확실성과 사고발생률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정밀한 조작을 맡기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 전까지는 사람의 운전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개발은 2020년, 보급은 2040년 정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주행 중 충전이 가능한 OLEV와 신소재로 각광 받은 그래핀은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아직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상용화 시차 감안하고 냉정하게 봐야


물론 이들 신기술이 유용하지 않다거나 주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영화 같은 기술들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이 기술 중 몇몇은 실제로 상용화돼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미리 해당 기술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 그 전에 발생하는 과열 현상은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는 증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증시에서는 신기술 테마주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사물인터넷 관련주로 꼽힌 효성ITX·모다정보통신·위즈정보기술 등은 가격 제한폭까지 거래량이 늘었고, 하이비젼시스템·TPC 등 3D프린팅 관련주와 윈스테크넷·이글루시큐리티·더존비즈온 등도 반짝 오름세 보였다. 이 외에 라이파이(Li-Fi)주, 비트코인주에도 테마주 바람이 불었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스마트폰 성장세 둔화 우려가 대두되면서 스마트폰이 아닌 신사업에 기댄 IT부품주들에 시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테마주 목록에 오르내린 대다수 종목의 주가는 반짝 오름세에 그치고 마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이슈화부터 상용화까지의 시차 때문에 눈에 띄는 실적 개선세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때로는 기술이 실패로 끝나기도 하고, 해당 기술과는 무관한 회사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정성일 전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잉태기에 이르러 다양한 신기술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정말 세상을 뒤집을 몇몇 기술 빼고 나머지는 사장되거나 다른 개념에 흡수될 수 있다는 얘기”라며 “산업 관점에서 분석할 때는 기술 상용화 시차 감안하고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288호 (2015.06.0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