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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내가 원할 때 쉬고 내가 편할 때 먹죠 

시간 사용에 대한 개념 갈수록 유연해져 패션·식음 업계에선 ‘시즌리스’ 움직임도 


▎일러스트:중앙포토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모여 춤을 추는 공간인 ‘런치 디스코(Lunch Disco)’가 있다고 한다. 꼭 퇴근 후 저녁시간에만 춤을 추러 가란 법이 있을까. 아마도 이곳 사람들의 시간 사용에 대한 유연한 태도 덕분에 점심시간에 춤을 추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스웨덴에 ‘런치 디스코’가 있다면, 대한민국 홍대에는 ‘애프터클럽’이 있다. 모든 클럽이 문을 닫는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해 다음 날 첫 차가 다닐 때 즈음 문을 닫는 이 가게는 이름 그대로 클럽이 끝난 후 시간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다. 그런데 애프터클럽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가 재미있다. 바로 공항철도 때문이라고 한다. 지방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린 다음, 인천공항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면 순식간에 홍대에 도착하기 때문에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 무박 2일 일정의 서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심야 레스토랑도 부쩍 늘어

사람들의 유연한 태도 때문이든, 고속철처럼 외부적 요인 덕분이든, 최근 이처럼 정형화된 시간 사용법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내 맘대로 하루 24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은 건 모두 즐기면서 1년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우선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는 것과 관련, 상인들의 재미있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의 ‘더 하베스트’라는 레스토랑은 밤 10시가 되면 식당 문을 닫고 ‘미드나잇 짐’이라는 운동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식당주인과 손님들이 함께 삼청동 공원 쪽으로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낮에는 고객들의 식사를 챙기고, 밤에는 건강을 관리해주는 신개념 레스토랑이다. 그런가 하면 낮에는 꽃을 팔고, 밤 11시가 되면 ‘심야오뎅’ 집으로 변신하는 꽃집도 있다. 이제 ‘교대근무’라는 말처럼 ‘교대영업’이란 표현을 써야 할 판이다.

아예 저녁 6시에 문을 열어 새벽 2~3시까지 영업을 하는 심야 레스토랑도 부쩍 늘었다. 홍대에 있는 ‘비너스 치킨’은 시간에 따라 가게 간판이 바뀐다. 점심시간 가게의 상호는 ‘비너스 식당’이지만, 저녁 시간에는 가게 이름이 ‘꽃파는 술집’이다. 일반적인 술집은 싫고, 일반 식당보다는 분위기 있는 공간을 원하는 올빼미족들을 겨냥한 것이다. 늦은 밤에는 비교적 부담이 덜한 ‘밥’ 대용의 간단한 스낵을 판매하며 심야 고객을 배려한다.

1년 12달을 자유롭게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지만 최근에는 이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시즌리스(Seasonless)’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휴가’와 관련된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의 휴가는 보통 무더운 7, 8월에 몰려있다. 하지만 이젠 여름휴가란 말도 바뀌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여름휴가의 개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휴가가 상시화되고 있다. 업무가 몰려있는 여름휴가는 간단히 넘기고, 상황을 봐서 가을이나 겨울에 좀 더 맘편한 휴가를 쓰자는 분위기다. 반드시 휴가철에 모두 일괄적으로 휴가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 대신, 자신의 업무와 휴가 동행자의 스케줄을 고려하고, 비용과 목적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 휴가시기를 정한다.

계절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패션계의 사이클도 바뀐다. 그동안 패션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S/S, F/W와 같은 정기패션쇼 대신, 수시로 작은 컬렉션을 펼치는 이른바 ‘캡슐컬렉션(Capsule Collection)’이 생겨났다. 전 세계 바이어를 한 곳에 불러 모으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노력을 쓰는 대신, 10~20개 제품만으로 간편하게 꾸며진 소규모 컬렉션을 개최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패션쇼를 상시화해 불황 탓에 소비심리가 위축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관심과 구매 욕구를 환기하기에도 더욱 용이하다.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소비자의 행동 분석해야

먹거리에서도 시즌리스(Seasonless)가 각광받고 있다. 디저트 분야가 대표적이다. 간식 시장은 생각보다 계절을 많이 탄다. 여름에는 빙수와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따뜻한 간식이 인기라는 공식이 어느 분야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최근에는 많은 디저트 카페에서 이런 공식에 도전하고 있다. 할리스커피는 지난 겨울 ‘아포가토’ 메뉴를 새롭게 선보였다. 2종을 새롭게 선보였다.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도 판매하기 위한 전략으로, 커피에 따뜻한 커피를 부어 먹는 이탈리아 정통 디저트 양식을 차용해 겨울 메뉴로 출시했다. 2014년 여름을 차갑게 식혀주었던 빙수 전문 ‘설빙’의 경우에도 겨울이라는 계절을 맞이해 ‘군고구마’를 활용한 빙수 메뉴를 선보였다. 언뜻 보면 계절을 탈 것 같은 메뉴를 역발상으로 그렇지 않은 메뉴로 바꿔놓은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물론이고, 1년 12달을 자신이 정한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역시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다른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스케줄을 따르기 쉬운 싱글 가구가 늘어난다든지, 업무 계획이 짜여있는 출퇴근제 회사 대신 파트타임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난 사실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유연한 시간 사용을 지원한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임직원 자율에 맡기는 ‘자율출퇴근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주당 40시간의 근무시간만 채운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덕분에 금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월요일 오후에 출근한다면 휴가를 내지 않고도 3박4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이처럼 시간 사용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좀 더 유연해짐에 따라, 기업들도 이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손님이 없는 시간 특별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해피아워’와 같은 타임 마케팅(Time Marketing)은 소비자의 일상을 엿보는 빅데이터 분석과 만나 소비자들의 시간을 쪼개어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파리크라상은 북적이는 점심시간 이후 손님이 뜸한 시간인 오후 2~5시를 겨냥해, 브런치메뉴 운영 시간을 오후 6시까지 확대 운영한다. 빕스 역시 ‘브런치 바’ 운영 시간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확대하고 메뉴를 추가했다. 1년 장사를 하는 숙박업에서도 보다 세분화된 타임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다. 관건은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소비자의 행동패턴과 구매의사결정 방식을 분석해, 누가 먼저 숨어있는 시장을 발견하느냐에 달렸다.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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