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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2015에 참석한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 “양자협력보다 다자협력 필요” 

효율적 공공 연금제도로 고령화 사회 대비해야 


▎사진: 오종택 기자
‘역대 두 번째 최장(最長) 총리’. 존 하워드(76) 전 호주 총리를 칭하는 말이다. 자유당 총수를 지낸 하워드 전 총리는 다수당이 총리를 배출하는 규정에 따라 1996년 총리직을 처음맡은 이후 2007년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네 번 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18년간 집권한 로버트 멘지스 전 총리에 이어 호주 역사상 두번째 장수 총리가 됐다. 정계를 떠난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총리로 불린다. 호주 시장조사 업체 에센셜리서치가 지난 3월 1000여명의 유권자를 상대로 ‘최고의 연방 총리(The best prime minister)’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하워드 전 총리가 무려 34% 지지도로 1위를 차지한 것. 노동당의 봅 호크 전 총리(1983~1991년)가 15%, 노동당의 고프 휘틀럼전 총리(1972~1975년)가 13%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와 달리 20개월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토니 애봇 총리를 지목한 응답자는 단 2%에 불과했다.

세월이 지나도 국민에게 사랑받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백발의 노장은 눈썹을 살짝 씰룩이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을 아꼈다.

호주 정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하워드 전 총리가 제주포럼 참석 차 5월 20일 제주 서귀포시를 찾았다. 그는 한반도와 아시아, 글로벌 현안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논하는 개회식 기조연설에서 “중국의 부상은 경제적으로 전 세계인에게 이익이며, 미국이 이 지역에서 존재감을 갖는 것 역시 한국·일본·호주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중 간 갈등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으며 심화될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호주와 동북아시아의 경제 발전을 위해 각국이 어떤 식으로 협력해야 하나?

“양자협력은 물론 다자간 협력이 필요하다. 호주는 한·중·일과 모두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그러나 이는 양자간 협력이지 다자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가 양자협력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까닭은 그만큼 다자간 협력이 약화됐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재임 시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인도네시아의 경우엔 양자간 협력이 강화된 사례가 아닌가?

“인도네시아는 호주와 가장 근접한 주요국 중 하나다. 두 나라는 문화적인 배경이 매우 다름에도 공동의 목표를 찾아 협력했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중·일과의 관계는 그보다 더욱 격렬하다고 본다. 그러나 양자간 협력이 결국은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다자협력 방안의 일환이라고 본다. 나는 호주가 다자간 협력하에서 좋은 파트너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정상회담 등에 참가하길 바란다.”

존 하워드 전 총리가 장기 집권에 성공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성공적인 경제 정책이다. 그가 집권한 이후 호주 경제는 연평균 4%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고, 실업률은 3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그는 대대적인 반전(反戰) 여론에도 2000여명의 군대를 이라크 전쟁에 보내기로 했을 때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악화된 여론 탓에 2004년 총선 당시 박빙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그가 압승을 거둔 이유도 결국에는 호주를 경제 부국으로 이끈 공이 컸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2000년대 들어 호주 부동산과 증권시장이 활황을 띠며 성장을 거듭해나갔고,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호주 경제의 성장을 주도한 저력은 무엇이었나?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을 제공했다. 정부가 나서 투자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자 그들 역시 과감한 경제 활동을 이어나갔다. 산업·경제 부문에서 세금 체제를 재편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을 아시아 지역에 적용해 성공을 거뒀다.”

대내외적인 악재에도 호주는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국이다. 특히 이민자 유입에 따른 인구증가, 도시화 현상 심화 그리고 노후화된 인프라 대체 수요로 인프라 투자가 활발한 편이다. 교통 기반시설(도로·철도·항구·공항)의 경우 호주 정부는 현재 물동량이 2030년 경 두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객수와 대중교통량은 각각 3배, 3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주도의 사업 프로젝트도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도로·철도·항구·공항 인프라 건설에만 정부 예산 500억 호주달러(약 43조2000억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당신이 기틀을 다진 경제성장 정책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고 보나?

“내가 집권하는 동안 적용된 개혁 정책과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이 융합돼 좋은 결과를 낳았다. 내가 정계를 떠날 때 국가 부채가 별로 없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타격이 적었다. 호주 경제 발전은 단순히 내부 정책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하나는 동북아시아, 즉 한·중·일로의 수출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된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소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철광석을 비롯해 주요 생산 자원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이는 정부 예산에 타격을 줘 역풍을 맞았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한 상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으로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다. 과거 개혁으로 빚어낸 이익이 결국엔 소진될 것이고, 앞으로 또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호주가 직면한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현재 후발국의 거센 추격, 저성장의 고착화, 연금·복지와 관련한 재정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가 처한 현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은?

“위기를 맞은 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인구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단 점이다. 인도·중국 등 몇몇 국가들이 인구 과잉을 우려하는 반면 또 많은 국가들은 저출산과 고령화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상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안전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공공 연금제도를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은퇴 후를 대비하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직면한 문제이고, 호주의 상황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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