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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 

유학사상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 군주들의 필수덕목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 : 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지난해 온라인에서는 ‘중용 23장’이 핫 키워드에 오른적이 있다. 어려운 고전으로 인식되는 〈중용(中庸)〉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어느 영화에 인용되면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소 의역이 있긴 하지만 이 대사가 바로 중용 23장으로, 여기서 강조하는 ‘정성(誠, 혹은 성실)’은 중용을 비롯해 유학사상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유학에서는 하늘이 만물에게 동일한 본성을 부여해주었기 때문에, 만약 정성을 다해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구현해 낸다면 만물이 각자의 본성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고 본다.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업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유학은 이 ‘정성’이라는 과제를 특히 군주에게 강조한다. 군주는 공동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구성원들이 각자의 가능성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은 그 책임을 완수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자세이다.

지도자의 책무를 완수하게 하는 기본 마음자세

아울러 정성은 ‘만물의 처음과 끝이니 정성되지 못하면 만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때문에 사‘ 람의 마음에 한 순간이라도 정성되지 못함이 있으면 비록 행하는 바가 있더라도 또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중용 25장). 정성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그리고 올바르게 발현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준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온전히 인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정성을 다해 대상을 대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대상(사람이든 만물이든)의 참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이 없으면 만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고, 한 순간이라도 정성되지 못한 순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지성무식(至誠不息,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이라는 중용 26장의 격언은 그래서 나왔는데, 이는 군주들에게 거듭 강조된 규율이었다.

회재 이언적은 중종에게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성을 지극하게 하여 쉼이 없어야 임금의 덕이 무궁해지고 임금이 세운 공업도 광대해집니다. 무릇 쉼이 없어야 함은 하늘의 도리입니다.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그 자리에 서는 것이니, 진실로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 위아래에 미치지 않는다면, 어찌 하늘의 도리를 따라 하늘이 주신 직책을 수행하고,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본성대로 육성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겠습니까.”(중종34.10.20). 임금에게 주어진 크고 무거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 된다. 쉼 없이 정성을 다해야 비로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27년 2월 20일, 우의정 심상규도 대리청정의 첫 집무를 시작한 효명세자에게 비슷한 진언을 올렸다. “나라는 오직 정성과 근면으로써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하는 대조(大朝, 순조)께서 부탁하신 중책을 맡으셔서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고 서정(庶政)을 총괄하게 되셨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근면하지 않으시면, 하루에도 만 가지 기무를 처리해야 하는 중책을 맡을 수 없고 그 번잡함도 제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중략)…탕왕이 이른 새벽부터 밝은 정치를 위해 고심한 것과 문왕이 밥을 먹을 겨를조차 없다고 한 것, 이는 모두 오늘날 저하께서 따라야 할 일들입니다. 정치와 명령을 시행하고 조치함에 있어서 어찌 한 순간이라도 근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근면하는 도리는 억지로 하는 것과 진실 되게 하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억지로 근면하다 보면 종종 중도에 끊어지고마니, 처음과 끝을 한결같게 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엄숙하고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용》에서 ‘지극한 정성은 그침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진정한 근면이 유구무강(悠久無疆)한 왕업을 이루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정성이 없으면 만물도 없는 것이니, 근면하되 정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헛된 수고만 할 뿐이며 한갓 번거로울 뿐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난 정성으로 정사에 임해야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고, 그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성공한 임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훌륭한 마음가짐을 갖고 굳은 결심을 했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행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에겐 매우 힘든 과제이다. 효종 때 신천익도 바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신이 생각하건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근본입니다. 임금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한다면 말과 행동도 모두 바르게 될 것이고, 어떤 일을 언제 어디에 시행한들 바르게 되지 않는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정(時政)의 바름과 바르지 못함, 조정의 바름과 바르지 못함, 내외(內外)의 바름과 바르지 못함은 더 이상 근심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근본임을 알았으니, 누구나 다 부지런히 정심(正心)에 힘쓸 것 같아도 다만 처음에는 부지런하다 나중에는 게을러져 끝내 마음을 바르게 만들지 못하는 임금들이 많았습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송나라의 여러 군주들 중에 마음을 바르게 하여 시종 한결 같았던 이는 드물었습니다. 아! 이는 결국 정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부디 마음에 새기소서.”(효종즉위년.10.15).

처음에는 정성스럽다가도 갈수록 나태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본래 계획했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점점 더 흐트러지는 마음을 붙잡고 처음의 뜻과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역사를 보면 초반에는 명군의 자질을 보였지만 이내 오만과 독선에 빠지고 사치와 향락에 젖어 들어, 인재를 분간하는 눈을 잃어버린 군주들이 있었다. 크게 엇나가지 않더라도 처음에만 반짝하고 종국에는 무기력하거나 범범한 군주로 남은 경우는 부지기수다. 바로 정성이 지극하지 못했고 그 정성에 멈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나태해지는 건 인지상정

무릇 정성은 개인의 삶이 마주하고 경주해야 할 모든 영역에서,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전 분야에서, 그 일이 성공하고 완성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핵심 요소이다. 이 정성은 자신의 진심과 노력을 꾸준하고도 남김없이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진 않다. 하지만 서두에서 인용한 중용 23장의 구절처럼 더 나은 나를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맹자의 말을 빌리자면 정성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삶은 아름답고 위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이 멈춤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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