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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는 ‘나만의 스타트업’] 평생 갈고 닦은 주특기 살린다 

‘은퇴의 함정’ 자영업의 대안 … 기술적 한계, 사업 안정성 따져 봐야 

베이비부머가 서서히 직장을 떠나고 있다. 대기업의 희망퇴직도 줄을 잇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명퇴 칼바람’이 여전하다. 다들 한창 일할 나이인데 일자리가 없는 서글픈 현실이다. 급한 마음에 퇴직금으로 치킨집이나 커피 전문점을 차려보지만 앞날이 암울하기는 매한가지다. 자신의 직장에서 앞만 보고 달린 이들이 갑자기 다른 일에서 성공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살아온 날만큼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이들에게 ‘평생 직장’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고부가 자영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을 살린 ‘나만의 스타트업’이 서서히 늘면서 주목받고 있다.
#1.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 권상호(48· 가명)씨는 최근 드라마 [미생]의 대사를 실감하고 있다. 대기업 부장으로 잘 나가던 그는 2년 전 인사에서 이른바 ‘물’을 먹었다. 한직으로 발령이 났고 팀장 지위도 사라졌다.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에 결국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노후 자금과 자식들 결혼 자금을 생각하면 놀 수도 없는 상황. 퇴직금 7000만원에 1억원이 넘는 대출금을 보태 치킨집을 차렸다. 예상은 했지만 장사는 쉽지 않다. 같은 상권에 있는 치킨집이 어림 잡아 족히 7곳이나 된다. 그는 “인건비라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생 대신 아내와 대학생 아들까지 동원해 가게를 운영하는데도 적자가 난다”며 “접고 다른 걸 하자니 딱히 할 만한 게 없어 답답한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2. 직장 생활 19년째. 대학 졸업 후 보험사에서 샐러리맨으로만 살아온 오상일(52)씨는 지난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전에는 보험업계에서 재무 상담원 교육으로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다. 그가 선택한 다음 직함은 ‘벤처 사장님’. 현역 시절 쌓아온 상담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재무관리용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는 중이다. 앱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벤처 업계에서 진행하는 행사에서 만나 섭외했다. 정부 창업 지원 프로젝트에서 초기 자금과 작은 사무 공간을 제공받았다. 그는 “잘 아는 분야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고, 내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일 하면서 신이 난다”며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설프게 프랜차이즈 식당 같은 걸 냈다가 퇴직금마저 날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으로 은퇴 시대 가속화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아 평생 돈을 벌어도 모자라게 됐다. 정년 연장 의무화에도 장기 고용에 대한 불안심리는 오히려 은퇴 세대를 더욱 옥죄고 있다. 더구나 최근 국내 기업들은 구조적 장기 불황을 우려해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하면서 일자리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씨티·NH농협·신한·SC은행 등이 희망퇴직을 실시했거나 실시를 앞두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은 임금피크 직원(1000명)과 장기 근속 일반직원(4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키로 했다. 금융투자협회가 발간한 ‘2015년 금융투자 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증권사 임직원은 4만7970명으로 전년 대비 3980명 감소했다. 금융업뿐만이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13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KT는 지난해 8000여명을 줄였다. 경기 침체에 정부의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 압박이라는 ‘복병’이 만나 국내 산업 전반에 퇴직 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3~2020년까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자 규모가 133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앞으로 덮칠 ‘퇴직 쓰나미’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1955~63년생인 1차 베이비부머(710만명, 전체 인구의 14.3%)의 퇴직 쇼크가 가시기도 전에 2차 베이비붐 세대인 1968~74년생(604만명, 12.1%) 퇴직이 바로 이어진다. 그 뒤엔 1차 베이비부머의 자녀인 에코 베이비붐 세대(1979~85년생 540만명, 10.8%)가 기다리고 있다. 1955~85년생 퇴직이 30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인구 비중이 큰 ‘386세대(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30대였던 90년대 진보정권 탄생을 주도한 세대)’의 선두주자인 196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20년 전후엔 법정 정년으로 퇴직할 인구가 한 해 80만명이 넘는다.

여기다 조기 퇴직자까지 엉킨다. 국내 근로자의 지난해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다. 대기업 정규직 평균 근속연수는 10년 8개월. 30~40대 조기 퇴직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지난해 취업 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예상하는 평균 퇴직 정년은 48세에 불과했다. 40대 중반이 되면 어느 순간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산다는 얘기다.

치킨집 열고 닫고 또 열고 닫고…


앞으로의 퇴직자는 노후도 ‘자급자족’ 해야 하는 상황이다. 모아둔 돈은 많지 않고 과거처럼 자식 세대에게 기댈 수도 없어서다. 그런데 이들의 기대수명은 2013년 생명표 기준으로 평균 81.9세(남 78.5세, 여 85.1세)에 이른다. 기대수명은 80세가 넘었는데 빠르게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다 보니 10~20년 구직 시장을 맴도는 은퇴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막상 은퇴를 앞둔 이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한 현실에 부딪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비은퇴가구의 은퇴준비 수준은 ‘양호’에 해당하는 계층이 11% 미만이다.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생각만 있을 뿐 바쁜 생활로 구체적인 고민을 할 여유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이로 인해 늘어나는 건 천편일률적인 업종의 자영업자다. 고용정보원의 ‘자영업의 고용구조와 인력수요 전망’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남성이 은퇴 후 1년 안에 자영업자가 될 확률은 11%다. 이는 미취업 상태인 26세 이상 남성이 1년 안에 자영업자가 될 확률(4%)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밀려난 이들이 가장 손쉽게 창업에 나설 수 있는 것이 편의점 등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다. 두 업종이 전체 자영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7.1%와 32.0%(2009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각각 18.3%포인트, 15.6%포인트 높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생계형 창업 비중은 2007년 79.2%에서 2010년 80.2%, 2013년 82.6%로 증가하는 추세다. 생계형 창업은 주로 숙박 및 음식료 부문 등 영세 서비스업에서의 창업을 말한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대리→과장→(부장)→(임원)→치킨집 사장’의 ‘닭튀김 수렴 공식’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치킨집’으로 대변되는 전통 자영업은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8.2%로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높다. OECD 평균(15.8%)에 비하면 두 배 수준이다. 미국(6.8%)·일본(11.8%)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2~4배 수준이다. 자영업의 공급 과잉은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는다. 소상공인 진흥공단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월 평균 매출은 2010년 990만원에서 2013년 877만원으로 줄었다. 3년 새 연간 매출이 1300만원 넘게 준 셈이다.

생존 기간도 짧다. 창업 3년 후 생존율이 40.5%에 불과하고, 5년 후에는 29.6%로 떨어진다. 자영업 창업자 10명 중 7명이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치킨집의 평균 생존 기간은 겨우 2.7년이다. 국세청이 심재철 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폐업현황을 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지난 10년간 폐업한 자영업체는 793만8683곳에 달했다. 그런데도 이 기간 자영업자수는 매년 560만~600만명대로 꾸준히 유지됐다. 해마다 수십만 곳이 문을 닫고, 더 많은 곳이 문을 여는 악순환의 연속이라는 얘기다.

스타트업은 청년층의 전유물 아니다

자영업의 위기는 자칫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는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의 은행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209조 5000억원이다. 1년 새 19조원이 늘었다. 금감원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4년 새 무려 63조 9000억원 늘었다.

자영업자 상당수가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빌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실제 대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미래 연구원은 올해 1월에 발표한 ‘가계대출과 가계부채’ 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부채 규모를 지난해 6월 말 기준 370조원으로 추정했다. 자영업자 한 명이 6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 퇴출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불안한 가계부채 상환 능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금리인상 같은 이슈까지 발생할 경우 그 여파가 더욱 커진다.

전문가들은 퇴직자의 급격한 자영업 유입을 막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생계형 자영업의 실태와 활로’ 보고서에서 “자영업 공급 과잉이 229만여명에 달한다”며 “자영업 포화상태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고 분석했다. 생계형 전통 자영업의 비중을 줄이고 재취업 혹은 고부가가치 창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청년층 신규 채용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재취업 일자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직장인 누구나 언젠가는 창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어떤 창업을 할지가 문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은퇴를 대비한 ‘은퇴형 스타트업(start-up)’이 등장하고 있다. 첨단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해 사업에 도전하는 기술집약형 벤처기업 중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을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건너온 말이다.

스타트업은 최신 IT기술을 활용한 소자본 창업이라는 측면에서 청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들의 스타트업은 대부분 아이디어나 기술이 아니라 관련 시장 판단, 실제 수익을 창출할 영업, 조직 관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은퇴형 스타트업은 이런 문제를 상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현역 시절 관련 업계에 종사하면서 구상한 아이템을 바탕으로 경험과 인맥, 노하우를 살려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조직 생활을 겪어봤다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다. 퇴직자 입장에선 창조경제 기조 덕에 정부의 정책자금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게 매력적이다. 일반적으로 전통 자영업보다 초기 투입 자금도 적게 든다.

물론 한계도 있다. 고연령의 퇴직자가 접근하기에 IT기술에 대한 이해나 숙련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장년은 시장에 대한 이해도나 노하우를 제공하고, 청년층에게 기술적 전문성을 제공받는 형태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30~40대 조기 퇴직자는 경력을 살린 과감한 스타트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안전성을 추구해야 할 고연령층 퇴직자는 과다 투자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289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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