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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곧은 사람 들이고, 굽은 사람 버려라 

인사를 통해 리더의 수준 가늠 … 인재를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 유도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1623년 3월 13일, 조선에서는 두 번째 반정(反正)이 일어났다. 인륜을 무너뜨리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렸다는 죄목으로 광해군이 폐위 당하면서 정국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대놓고 폭정을 일삼았던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죄’는 대부분 백성의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고, 반정은 지배계층의 권력다툼일 뿐이라는 인식도 팽배했다.

그런데 3일 후, 새로 영의정에 임명된 이원익이 한양 도성 문을 들어서자 민심은 빠르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입성하던 날 도성 백성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그를 맞이했다’고 한다(인조1.3.16). 백성들은 ‘이원익이 지지한 반정이니 옳을 것이고’, ‘이원익이 재상이 되었으니 이제 좋은 정치가 펼쳐지리라’ 기대하며 인조 정권 지지로 돌아선다.

이원익이 지지한 반정이니…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처럼 훌륭한 인재는 비록 한 사람에 불과할 지라도 공동체의 여론을 좌우하고, 구성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누가 CEO가 되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주가가 오르고, 누가 경제정책의 수장을 맡느냐에 따라 시장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논어] ‘위정(爲政)’편에 등장하는 공자의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송나라 애공(哀公)이 “어떻게 해야 백성이 복종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들어 쓰고 굽은 사람을 버리면 백성이 복종하고, 굽은 사람을 들어 쓰고 곧은 사람을 버리면 백성이 불복한다(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고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임금이 국가를 통치하고 CEO가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은 강제를 수반한다. 구성원의 이익과 공동체의 목표 달성을 위해 위에서 지시와 명령을 내리면, 아래에서는 그것을 따라 이행해야 한다. 이 때 강제성을 가진 ‘지시와 명령’이 정당화되고 효과를 발휘하려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는 권위가 필요하다. 인재는 바로 그 권위를 채워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훌륭한 인재’가 내리는 판단과 결정은 구성원들로부터 쉽게 지지를 받는데, 이는 해당 업무의 최적임자라는 위상에 더하여 그가 축적해 놓은 신뢰자본 때문이다. 덕분에 리더는 인재를 통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도 인재를 통해 리더의 수준을 확인해 볼 수가 있다. 인재를 취사선택하는 리더의 안목을 보며, 그가 과연 구성원들을 이끌고 공동체를 경영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서 논어의 이 구절을 거론할 때는 주로 이 부분에 강조점이 찍혔다.

조선 중기의 학자 정경세는 이렇게 설명했다. “백성들이 임금 마음속의 사악함과 바름, 공(公)과 사(私)를 직접 알 순 없지만, 이처럼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을 살펴 관찰하게 되면 그 속마음을 환히 볼 수 있게 됩니다. 백성들은 늘 이것으로써 임금을 따르거나 아니면 돌아서는 것입니다.”(광해군즉위년.5.2). 백성들이 임금의 생각과 내면을 바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임금이 어떤 사람을 선호하고 배척하는지를 보면 그의 가치관과 내면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정경세는 이를 가지고 백성들이 임금에게 복종할 것인지, 불복할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영조 때 나학천은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임금이 사람을 쓰거나 버릴 적에 굽은 사람과 곧은 사람을 잘못 구분한다고 해도 그것이 민심의 향배와는 직접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공자께서 이에 따라 민심이 복종하고 불복하는 것이 결정된다고 하셨으니,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대개 선(善)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은 사람들의 타고난 본성으로, 선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이 좋아하는 바이고, 악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이 싫어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임금이 싫어하는 바와 좋아하는 바가 뭇 사람들의 마음과 같아지면, 굳이 민심이 복종하기를 꾀하지 않아도 자연 복종하는 법입니다. 임금이 사람을 쓰거나 버림이 민정(民情)에 거슬리면 민정은 절로 불쾌하게 될 것이니, 이는 당연한 천리(天理)이고 필연적인 일입니다. [대학]에서 백성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해야 하니, 이를 백성의 부모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영조 6.1.12).

이 말이 리더가 무조건 다수 대중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재 선발의 내용을 통해 리더가 올바른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공동체나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보편정신을 이해하고 있는지, 구성원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리더는 스스로 내가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인재를 찾아 등용했는지, 혹 주관적이고 사사로운 욕심에 따라 기호에 맞는 사람만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라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게 되어, 구성원들의 이반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결국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그래서 숙종 때의 재상 박세채는 여기에 실패한 임금을 ‘무도(無道)’하다고 규정한 바 있다(숙종 9.7.6).

인사와 소통에 실패한 임금은 무도(無道)하다

아울러 정조 때 ‘작은 퇴계(小退溪)’로 불렸던 대학자 이상정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곧은 것과 굽은 것은 서로 그 길이 달라서 함께 뒤섞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청렴한 사람을 상주면서 탐욕스러운 자를 물리치지 않는다면 청렴한 사람이 수치스런 마음을 지니게 되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기용하면서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런 사람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임금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도리에 어긋나게 하여 탐욕스럽고 아첨하는 자들을 충성스럽고 청렴한 사람이라 여긴다면 옳고 그름이 뒤집히고,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일이 어긋날 것이니,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정조5.7.3). 바르고 훌륭한 인재와 그렇지 못 한 함량 미달인 사람들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도리에 맞게 이들을 등용 혹은 배척하지 못한다면 결국 좋은 인재들이 떠나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더구나 임금이 간신을 충신이라 생각하고, 소인배를 뛰어난 인재라 여긴다면 이는 임금 개인의 잘잘못을 넘어 공동체의 존망까지 뒤흔들게 된다.

요컨대, 인재는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나 리더 개인을 위해서나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 사람의 자질보다는, 얼마나 리더에게 잘 순종하고 부합하는 지를 등용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리더의 인사(人事)는 당장은 자신의 뜻대로 행사되더라도, 민심의 지지를 상실하고 구성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공동체의 힘을 결집 시키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곧은 사람은 들어 쓰고 굽은 사람을 버리라’는 공자의 말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289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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