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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하리는 ‘소주계 허니버터칩’
젊은 여성층 겨냥한 비장의 신제품
알코올 도수 13도 내외로 순해소주 점유율 3위 ‘좋은데이(무학)’는 순하리의 판매량 1000만병 돌파 직후 리큐르 제품을 내놨다. 무학은 지난해 1월부터 일본을 비롯한 해외 수출용으로 시험 제조해오던 리큐르 제품을 내수용으로 전환했다. 수출용으로 개발된 7~8종의 과일맛 중 한국 소비자 시음평가를 거쳐 상품성이 좋은 과일을 골라 생산 라인을 돌렸다. 무학 관계자는 “하이트진로나 롯데가 리큐르 제품을 내놓을 때에 대비해 이미 사전에 준비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롯데가 순하리를 들고 부산·경남 등 무학 소주의 안방까지 침범하자 무학은 시음평가 결과가 좋았던 블루베리 등 3종의 과일맛을 5월 11일 출시했다. ‘좋은데이 블루’(블루베리맛) ‘좋은데이 레드’(석류맛) ‘좋은데이 옐로우’(유자맛)의 컬러 시리즈 3종이다. 이어 6월 8일에는 자몽맛을 내는 ‘좋은데이 스칼렛’도 선보였다. 7월 초엔 복숭아 맛을 가미한 ‘좋은데이 핑크’도 내놓을 예정이다. 알코올 도수는 모두 13.5도다. 서울 지역 소주보다 늘 조금 순하게 만들던 무학의 노선을 유지했다.무학은 다양한 맛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현재까지 개발 완료된 맛은 총 4가지다. 순하리가 1가지 맛 리큐르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소비자에게 ‘골라 마시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무학은 오래 전부터 리큐르 제품을 개발해왔다. 리큐르 분야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다. 1998년 프랑스 마리브리자드사와 기술 제휴해 칵테일용 주류인 ‘선라이즈’를 출시했고, 그 전인 1995년엔 리큐르 제품 ‘체리스타’ ‘레몬스타’ 등을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다.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는 현재 순항 중이다. 출시 1주일 만에 200만병이 팔린 데 이어 1달 만에 1000만병 판매를 넘어섰다. 6월 22일부턴 전국 편의점 매장에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무학의 마케팅 관계자는 “첫 3종 컬러 시리즈가 출시와 동시에 완판돼 생산계획을 수정하고 시설을 보완했다”면서 “울산공장과 창원1·2공장이 최근 연이어 완공돼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3개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소주량은 한국 소주 시장의 35%를 감당할 수 있다.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는 처음엔 순하리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현재 무학은 이를 기반으로 수도권 공략에 나서고 있다. 무학 관계자는 “좋은데이가 전국 판매량이 적었던 것은 수도권 소비자들이 ‘무학’이나 ‘좋은데이’란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리큐르 경쟁은 미투제품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수도권과 전국 소비자들에게 ‘좋은데이’란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기대했다.주류 업계에선 무학이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판매하면서 일반 소주를 끼워 판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특히 소비자 반응이 좋은 ‘좋은데이 블루’에 주력 소주 ‘좋은데이’를 추가해 파는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서울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도매협회)가 “끼워팔기 제보가 속출한다”며 “사실일 경우 이를 불공정행위로 제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다. 어쨌든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가 좋은데이를 수도권 소비자에 알리고, 주류 업계가 긴장할 정도로 시장에 충격을 준 건 사실이다.하이트진로는 두 회사보다 한발 늦은 6월 19일 리큐르 제품을 내놨다. 이로써 리큐르 전쟁은 3파전 양상이 됐다. 본래 리큐르 전쟁은 일반 소주 마케팅에 비하면 ‘2군’이나 ‘곁가지’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주 업계 최강자 하이트진로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반 소주 유통망을 가장 많이 확보한 업체라서 리큐르 경쟁이 전국전·정규전 양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롯데주류도 이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순하리와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가 격전을 벌이던 6월 11일부터 참이슬을 기본으로 만든 ‘자몽에이슬’을 만들었다. 자몽에이슬은 참이슬의 깨끗함에 자몽의 맛을 곁들인 13도 리큐르다. 리큐르 제품 중 가장 순하다. 출고가는 순하리와 같은 962.5원.
무학의 부울경 아성 무너뜨릴 수 있을까?사실 하이트진로도 오래 전부터 리큐르 제품을 준비해왔다. 2002년 매화수에 이어 2012년에 한정판 ‘참이슬 애플’을 출시했다. 참이슬 애플은 완판되며 리큐르 시장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2012년 중순 하이트진로 일본 법인인 진로재팬은 도쿄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진로재팬 마케팅 담당자는 일본 주류 시장을 설명하면서 “일본 리큐르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일본 정부는 내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저도주에 대한 세율을 깎아주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따라 맥아 비율이 50% 이하인 발포주(한국에서 흔히 만드는 맥주류)와 일본 소주(25도)보다 알콜 비중이 낮은 리큐르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었다. 진로재팬 양인집 사장은 “이런 시장 상황에 맞춰 진로재팬도 소주 ‘진로(일본에서 판매하는 소주이름)’를 기반으로 한 리큐르 제품을 최대한 빨리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새로운 리큐르 출시는 일본 소비 시장 현황에 따라 지난해 8월에야 이뤄졌다. ‘진로그레이프푸르트’란 이름의 리큐르로 25도 진로 소주를 기본으로 자몽을 첨가했다. 이 제품은 자몽에이슬과 달리 16도짜리다. 일본인 입맛에 맞게 단맛이 강하다. 마산공장에서 생산해 전량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본 리큐르 수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제품이 한국 리큐르의 원조라는 말도 나온다. 롯데가 일본에서 진로재팬의 상품 가능성을 본 뒤 한국에서 순하리를 출시했을 거란 추정도 이 때문에 나왔다. 한국에 출시된 자몽에이슬은 참이슬을 기반으로 청원공장에서 생산한다. ‘매화수’ 생산라인의 일부를 리큐르 생산으로 돌린 것이다.리큐르 준비 기간이 길었던 하이트진로가 롯데에 비해 한국 시장에 한 발 늦게 진입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한국 과일 리큐르 시장 규모는 전체 주류 시장의 1~2% 정도이고 아직 초기 수준이라 안정적으로 수요가 형성됐다고 보기 이르다”면서 “리큐르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가 많아 자칫 생산량을 늘려놨다가 시장이 식어버리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 조사 결과, 한국인의 과일 리큐르에 대한 수요와 반응이 매우 소극적이었다. 불안한 리큐르 시장에 먼저 뛰어들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특히 소주 1위 ‘참이슬’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도 제품 출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주류 업계는 현재 한국 소주 시장을 1강 2중 군소로 나눈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1강, 롯데주류(처음처럼)·무학(좋은데이)이 2중, 나머지는 각 지역 기반 업체들이 조금씩 시장을 나누고 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전국구’로 활동한다. 하지만 유독 무학의 근거지인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에선 좋은데이가 75%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무학이 전국구에 가까운 2중까지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소주 시장 과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하이트진로 입장에선 무학이 특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여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점유율 과반을 넘기면 독과점 규제에 걸릴 위험까지 있으니 3사3분 형태가 이상적일 수 있다.하지만 롯데 입장은 다르다. 부산·경남을 그룹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무학에 밀리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롯데는 처음처럼을 앞세워 이 지역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해왔다. 한 때 수도권 지역에 버금갈 만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지역사랑이 유별난 탓에 판매량을 늘리는 데 고전을 면치 못했다.소주 업계에 따르면, 순하리는 애초 부울경 지역 공략을 목적으로 기획됐다. 견고한 부산 소주 시장에 균열을 내기 위해 고안한 신무기란 의미다. 이 때문에 순하리는 부울경의 대학가에 가장 먼저 등장했다. ‘소주계 허니버터칩’이란 말도 순하리를 구하려다 지친 부울경 대학생들로부터 나왔다. 롯데는 순하리를 통해 부울경 점유율을 확대해 전국 소주 시장을 1강2중에서 2강 체제로 재편하겠단 욕심이다. 하지만 업계 시각은 좀 다르다. 처음처럼이 부울경에서 시장을 잠식하는 효과보다 좋은데이가 수도권에 알려지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본다.강력한 미투제품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진 순하리가 선방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판세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순하리가 허니버터칩이라면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나 자몽에이슬은 뒤이어 나온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로 빗댈 수 있다. 수미칩은 과거 전통적인 감자칩의 명성을 이어오다 허니버터칩 이후 꿀감자칩 버전을 따라 내놨다. 허니버터칩의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끼자 수미칩은 이 틈을 비집고 꿀감자칩 시장에서 강자로 떠올랐다. 이젠 미투제품인 수미칩이 원조인 허니머스타드와 비슷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소주 업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리큐르 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적표는 올 연말에나 나올 전망이다. 출시일이 일렀던 순하리는 메르스 사태의 영향을 덜 받았다. 이와 달리 하이트진로와 무학은 메르스 사태 탓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진정세로 접어들고 있어 마케팅 여부에 따라 리큐르 강자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리큐르로 대표되는 소주전쟁 4라운드 종료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