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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포크너作 [곰]의 ‘베어마켓’ 

1700년대 초 보스턴 곰가죽 시장에서 유래 ... 불마켓은 1850년대에 명명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황소와 곰 동상.
짐바브웨의 명물사자 ‘세실’이 한 미국인 사냥꾼이 쏜 총에 희생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다. 세실은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사자였지만 사냥꾼이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해 죽였다. 많은 미국인 사냥꾼이 코뿔소·기린 등을 사냥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달려가고 있다. 사냥은 미국인의 오랜 전통이다.

미국을 건설할 당시 미국인에게 야생동물은 직접적인 위협이었고, 생존을 위해서도 사냥은 불가피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곰(The Bear)]은 당시의 곰 사냥 이야기를 다룬다. [곰]은 1942년 출간된 [내려가라, 모세여.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Go Down, Moses and other stories)]에 수록된 7편의 작품 중 대표작이다. 7편의 작품은 연작으로 소설은 제각기 연결된다. 포크너는 마크트웨인과 함께 미시시피강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美 사냥꾼의 짐바브웨 명물사자 ‘세실’사냥

[곰]은 나이가 들면 숲으로 들어가 사냥꾼이 되기를 동경하는 한 소년의 성장기다. 미국 독립을 전후한 한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한 가문의 기록이기도 하다. 주요 등장인물 5명이 있다. 소년 사냥꾼 아이작, 아이작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혼혈노예 샘 파더스, 그리고 거대한 숲 ‘빅바텀’을 지배하는 전설의 곰 ‘올드벤’이 핵심 3인방이다. 여기에 최고의 사냥개 ‘라이언’과 또 다른 인디언계 혼혈사냥꾼인 분 호건벡 등 2명이 더 추가된다.

올드벤은 전설이다. 빅바텀 주변 사람들은 올드벤에게 10여 년간 옥수수며, 새끼 돼지, 송아지를 잡아먹히면서도 감히 이 곰을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광활한 황야를 자기 집 앞마당처럼 휩쓸고 다니는 이 곰은 잔인한 숲의 신령이다.

소설은 5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16세의 아이작이 10세와 11세 때 가을을 회상한다. 10세 때 샘과 함께 한 사냥에서 올드벤의 흔적을 느끼지만 올드벤과 조우하지는 못한다. 11세 때 총도, 나침반도, 시계도 갖지 않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서야 올드벤을 목격한다. 잠시 아이작을 지켜보던 올드벤은 깊은 산림 속으로 사라진다. 2장은 아이작 14세 때 이야기다. 샘이 사나운 개 라이온을 잡아서 길들인다. 라이온은 올드벤에게 덤벼들지만 사냥에 실패한다. 올드벤은 총을 맞고도 자취를 감춘다. 3장에서 아이작 일행은 올드벤을 사냥하는데 성공한다. 16세 소년이 된 아이작은 분 호건백과 함께 사냥에 나선다. 라이온은 올드벤을 덮친다. 올드벤과 라이온이 업치락덮치락하던 사이 분이 곰의 등에 올라타 칼로 곰의 목을 찌른다.

‘조금 뒤 곰은 벌떡 일어서더니 사람과 개를 함께 쳐들고 방향을 바꾸어 숲 쪽으로 두세 걸음,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것 같이 걸어가다 대번에 쓰러졌다. 그것은 맥없이 쓰러진 것이 아니다. 나무가 쓰러지듯이 단숨에 쓰려졌다’. 올드벤은 이렇게 최후를 맞이한다. 올드벤과 사투를 벌였던 사냥개 라이온도 죽는다. 그리고 올드벤의 죽음을 지켜보던 샘도 쓰러져 죽는다. 올드벤의 죽음과 함께 숲의 균형도 깨진다.

4장은 아이작의 가족사 이야기다. 21세가 된 아이작은 할아버지 농원 상속을 포기한다. 노예의 피와 땀, 인권유린을 통해 농원을 일군 할아버지의 부끄러운 역사를 전해듣고서다. 5장은 18세 아이작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올드벤이 죽은 지 2년 만에 빅바텀은 제재회사에 팔린다. 거대림의 나무는 잘려나가고, 제재소도 들어서고 있다.

미국인의 유별난 곰 사냥 사랑은 ‘테디베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테디베어를 곰 인형 브랜드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곰돌이’를 뜻하는 보통명사다. 유례는 1902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됐다. 사냥 애호가였던 그는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사이의 주 경계선을 확정짓기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수행원들과 함께 곰 사냥에 나간다. 그가 곰을 잡지 못하자 한 보좌관은 사냥개의 추격으로 기진맥진한 어린 흑곰을 버드나무 밑동에 묶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정당하지 못하다며 이 흑곰을 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화제가 됐고, 만화가인 클리포드 베리먼은 당시 상황을 삽화로 그려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게를 하던 모리스미첨은 이 이야기를 듣고 곰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여 ‘테디스 베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인형은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모리스미첨의 상점은 미국 최초의 대형 장난감 회사인 ‘아이디얼’로 성장한다. 모리스미첨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애칭인 ‘테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슈타이프사가 1903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장난감 박람회에서 곰인형을 선보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인형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후 곰인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테디베어는 상처입은 미국과 유럽인을 달래주는 장난감이 되면서 더욱 친숙해졌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이 인형을 선물할 만큼 슈타이프 테디베어는 독일의 국민곰이 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슈타이프 테디베어는 명품 곰돌이다. 2009년 고객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 미국인 펀드매니저가 소장했던 슈타이프사의 ‘테디베어 콜렉션’이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올라 175만 달러(약 18억원)에 팔렸다. 이 펀드매니저는 기관투자자들로부터 횡령한 돈으로 슈타이프 테디베어를 사들였던 것이다.

미국인의 곰 사냥 사랑은 증권가로 이어졌다. 증시에서 약세장을 의미하는 ‘베어마켓’이다. 1700년대 초반 미국 보스턴에서는 곰가죽 시장이 번성했다. 곰가죽이 품귀되면 상인들은 곰가죽을 며칠 뒤 넘겨주기로 하고 비싼 가격으로 돈을 먼저 받았다. 곰가죽 가격이 비싸다는 소문이 나면 곰 사냥꾼들이 곰을 열심히 잡았고, 그러면 공급이 많아져 곰가죽 가격이 떨어졌다. 곰가죽은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투기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1719년 출판된 디포의 <증시의 해부>에서는 ‘곰가죽 매수자’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곰은 자연스럽게 하락장의 대명사가 됐고 ‘베어마켓’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락장 속에서도 일시적인 반등 장세가 있는데 이를 ‘베어마켓 랠리’라 한다. 하락장 속에서도 수익을 내도록 설계된 펀드는 ‘베어마켓 펀드’다.

곰 사랑 유별나면서 곰 사냥 많아

베어마켓의 반대인 불마켓은 베어마켓보다 100년쯤 늦게 명명됐다. 1850년께 월스트리트의 한 신문이 곰에 맞설 동물이 없다는 데서 착안한 동물이 뿔을 높이 세운 황소(Bull)였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저서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bull은 강세를 뜻하는 독어 ‘bullen’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인들의 곰 사랑은 유별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냥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사냥전문지 [바우헌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 3만5000여마리의 흑곰이 사냥된다. 포크너의 눈에 곰 사냥은 신성한 자연의 파괴로 보였다. 분은 올드벤을 죽인다. 하지만 전설의 곰이 죽은 뒤 밀고들어오는 제재소의 전기톱날에 맞서 “이건 전부 내거야”를 외치는 분의 절규는 가슴을 아련케하는 구석이 있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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