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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⑬ 차이나 머니의 빛과 그림자] ‘인해전술→쩐의전술’ 변신한 중국 

세계적 선수·기업 집어삼켜 ... 머니파워로 경쟁력 올렸지만 골칫거리로 변하기도 


“중국 정도는 당연히 이겨야 하는 거 아닌가?” 8월 2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둔 이튿날 한 지인이 건넨 말이다. ‘공한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간 한국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중국 축구를 감안해 한 말이리라. 그러나 “글쎄…”라는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중국 정도’라고 표현하기엔 최근 중국 축구가 고속성장을 하고 있어서다.

국가대표 성적과는 별개로 중국 축구리그인 수퍼리그는 요새 분위기가 매우 좋다. 수퍼리그의 지난해 평균 관중은 1만 8986명. 광저우 헝다, 충칭 리판, 베이징 궈안의 평균 관중은 4만명 내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20%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유럽 상위 리그 수준이다. 참고로 K리그 클래식의 지난해 평균 관중은 8000명에 못 미친다. 2013년엔 광저우 헝다가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중국 축구의 성장 배경에는 차이나머니가 있다. 수퍼리그 구단들은 최근 높은 연봉을 무기로 수준급 외국인 선수와 감독을 영입하고 있다. 시작은 2012년 니콜라 아넬카, 디디에 드록바의 상하이 선화 입단이다. 두 선수는 결국 연봉이 체불되며 상하이를 떠났지만 중국 축구계가 지른 돈의 규모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전후로 프레데릭 카누테, 세이두 케이타, 야쿠부 아예그베니 등 유럽 축구에 꽤 큰 족적을 남긴 선수가 수퍼리그에 입성했다.

중국 리그 관중수 유럽 상위 리그 수준


▎2013년 11월 9일 중국 광저우 텐허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서울과 광저우 에버그란데 FC 경기에서 1대1로 비기고 우승을 차지한 광저우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올해도 특급 스타들이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는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 호비뉴를 영입했다. 호비뉴는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시티, AC 밀란 등 유럽 명문 구단에서 뛴 수준급 선수다. 광저우 헝다는 200억원이 넘는 이적료로 토트넘의 파울리뉴를 영입했고, 구단주가 교체된 상하이 선화도 높은 이적료로 첼시의 뎀바 바, 레반테의 모하메드 시소코를 영입했다. 이 밖에 스좌장 융창은 포르투갈 국가대표 미카엘에 이어 첼시와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아이더 구드욘센을 데려왔다.

선수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감독도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월드컵 우승 경력의 스콜라리 감독은 얼마 전 광저우 헝다 지휘봉을 잡았다. 그의 전임은 명장 리피와 이탈리아의 독일월드컵 주역인 칸나바로다. 이 외에도 에릭손(상하이 상강), 콘트라(광저우 푸리), 만사노(베이징 궈안), 쿠카(산둥 뤼넝) 등 이른바 ‘네임드(잘 알려진)’ 감독들이 중국에서 활약 중이다.

유명 외국인 감독은 구단의 시스템을 재편하고, 유럽 최상위 클럽 수준의 팀 훈련 프로그램과 전술을 접목시키고 있다. 수준 높은 선수들과의 훈련과 경쟁은 자국 선수들의 수준을 덩달아 올리는 계기가 된다. 광저우 헝다의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이 그 결실이고, 이를 본 중국 내 거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퍼리그에 뛰어들며 제2의 광저우 헝다가 탄생하고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차이나 머니는 축구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중국 구단이 선수를 사들이듯이 중국 자본가는 글로벌 기업을 삼키고 있다. 2013년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M&A) 규모는 약 385억 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 국가 1위에 올라섰다. 자본도 순유출에 가까워졌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해외투자총액(ODI)은 1160억 달러로 외국인투자유치액(FDI) 1195억6000만 달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한 돈만큼 중국이 해외에 투자했다는 말이다.

글로벌 M&A 시장에 차이나 머니 공습


▎중국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한 하대성(오른쪽)과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
중국의 글로벌 기업 인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지난해 10월 중국 안방보험은 세계적인 호텔체인 힐튼으로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의 대표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사들였다. IBM의 노트북 사업을 인수한 뒤 세계 1위의 PC업체로 부상한 레노버는 같은 달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품에 안고 삼성과 애플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최대의 자동차 부품 기업인 완샹그룹은 미국 전기차 회사 피스커를 인수해 신에너지 자동차 분야에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미국 전자 상거래 업체 숍런너와 독일 오토나비의 지분을 취득한 데 이어 모바일 브라우저 업체 UC웹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 IT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최대 육류가공 업체 솽후이는 동종 업체인 미국 스미스필드를 71억 달러(약 7조1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로써 솽후이는 이 분야 세계 1위로 발돋움했다. 유제품 기업인 광밍은 이스라엘 트누바푸드의 지분 56%를 사들였다.

중국 완다그룹은 2012년 세계 최대 극장체인 AMC엔터테인먼트 홀딩스를 26억 달러(약 2조8300억원)에 인수했고, 최근에는 영화 [헝거게임]으로 유명한 미국의 영화제작사 라이언스게이트엔터테인먼트와 ‘007 시리즈’로 이름난 영화사 MGM과도 지분 인수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명문 축구클럽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지분 20%를 확보한 데 이어 월드컵축구 중계권 독점판매 업체인 인프런트 스포츠&미디어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식성도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자본의 주 타깃은 부동산과 자원·인프라 개발에 집중됐지만, 최근엔 제조업, 하이테크 기업 중 브랜드와 기술력을 갖춘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축구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된다. 드로그바, 아넬카 등이 중국 무대로 향할 때만 해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전성기를 맞이한 선수가 대거 중국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과거 중국이 선수 영입과 M&A에서 ‘전통적 투자’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전략적 투자’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리그 성장과 국가대표 성적은 엇박자


▎6월 11일 바이옌 국제공항에서 명장 스콜라리 감독의 부임과 입국을 환영하는 광저우 에버그란데 서포터들.
중국이 이처럼 기업 사들이기에 나선 것은 이를 통해 급격히 성장하는 자국 내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자본가들은 고속 성장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자본을 블랙홀처럼 흡수한 덕에 지갑이 두둑해진 상태다. 덩달아 자국 내수 시장 규모도 커지면서 경제 패턴이 바뀌었다. 중국 신화통신은 최근 ‘세계를 사들이는 중국’이란 분석기사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에서 ‘메이드 포 차이나(Made for China)’로 전환 중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소비력이 커진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력 소비재·서비스 기업 인수에 나선 것이다. 축구 역시 자금력을 갖춘 구단주의 등장과 함께 관중동원력(내수 시장)이 검증되자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여기에 투자를 부추기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크게 작용했다.

차이나 머니에는 현재 중국 경제와 축구의 강점과 한계가 함께 녹아 있다. 먼저 축구부터 보자. 이상 열기에 가까울 정도로 수퍼리그는 호황이지만,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다. 지난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 그쳤고, 자국 전문가들조차 중국 선수 개인의 기량과 기술 수준이 오히려 10년 전, 20년 전보다 퇴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선수 몸값 인플레이션와 관계가 깊다.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로 많은 돈이 몰리다 보니 중국 선수의 몸값은 거품이 끼는 경향이 있다. 최근 중국 선수들은 유럽 리그에서도 높은 인정을 받아야 가능한 이적료와 주급을 받는다. 외국인 보유 한도를 맞추기 위해 양질의 중국 선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적 시장에 나오는 중국 선수 몸값은 더 오른다. 외부의 객관적 평가보다 내부 경쟁의 열기로 가치가 매겨진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선수의 해외 진출이 줄었다. 유럽에 진출해서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중국 내에서 받는데 굳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나갈 필요가 없어서다. 아무리 수퍼리그가 성장했다지만, 좁은 우물에 갇힌 선수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팀 내에서도 공격진에 유럽 선수가 포진되고, 수비진에도 한국 등 외국인 선수가 영입되면서 윙어 같은 특정 포지션의 편중이 심해졌다. 그만큼 국가대표팀의 다양성과 경쟁력이 떨어진다.

중국 경제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축구에서는 선수가 자국에 머무는 게 문제였다면 경제에서는 자국 내에 과도하게 쌓인 외환이 골칫거리다. 중국 경제 발전의 주체는 중국으로 들어 간 외국인 자본이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해외 직접투자의 형태로 중국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고 여기서 생산한 상품을 다시 해외로 수출했다. 외국 자본이 직접 투자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외환이 중국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수출 위주의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대규모 경상흑자도 났고 이에 따라 외환보유액은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쌓였다. 외환관리가 엄격한 중국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서 모든 외환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쌓인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말 세계 최대인 4조 달러에 이른다.

천문학적 규모의 외환은 관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 중국은 주로 안전한 미국 국채를 사고, 그러고도 남는 걸 국영기업을 통해 해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기업에게 바꿔준 위안화도 문제다. 그만큼 민간으로 위안화가 풀린 것이므로 통화량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부동산 투기와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국내에 투자하자니 이미 과잉 생산이 염려되고, 그럴 바에는 외환을 위안화로 바꾸기보다 곧바로 해외에 내보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수퍼차이나, 위기인가 기회인가?


▎8월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는 한국 선수와 망연자실한 중국 골키퍼 왕다레이(오른쪽).
따라서 축구에서는 외국인 선수 영입이 문제의 ‘원인’이라면, 경제에서는 해외 기업 인수가 이미 생긴 문제의 ‘대응’에 가깝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최근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최근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어 해외 진출 기업의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해외 투자를 위한 사전 승인 규제는 대폭 철폐됐고 해외 증시 상장과 M&A 절차도 간소화했다.

대륙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차이나 머니가 중국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될지, 혹은 몰락의 전초가 될지 예견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 당장 퍼져가는 영향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차이나 머니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 없다. 실제로 중국 자본의 국내 유입은 빨라지고 있다. 제주도 부동산으로 이슈가 되긴 했지만, 더 큰 관심 대상은 금융과 벤처 공습이다. 성장산업 분야에 중국의 벤처캐피털(VC)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내 벤처생태계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텐센트는 지난해 CJ게임즈에 5300억원을 투자하면서 3대 주주로 등극했고 알리바바는 연내 국내 벤처투자를 선언했다. 핀테크 강자인 중국에게 국내 결제대행(PG)사를 비롯한 IT 기업은 주요 사냥감이다. IT뿐만 아니라 방송·영화·게임 등 콘텐트 영역도 실탄이 두둑한 중국 자본이 눈독 들이는 대상이다. 국내 핵심 신성장산업 역량이 중국에 잠식될 수 있다는 얘기다.

축구계에서의 위협은 선수 유출이다. 수퍼리그는 최근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를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으로 데려가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하대성·박종우·김주영·정인환·임유환 등이 수퍼리그로 갔다. 에닝요·데얀·이보·에스쿠데로 등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장현수·조용형·조병국 등 다른 리그에서 뛰던 한국인 선수도 중국 무대로 건너 갔다. 이번 시즌 도중에는 K리그 클래식 득점 선두를 달리던 전북 현대 에두가 중국 2부 리그로 이적했고,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장쑤 순티엔으로부터 지금의 5배인 약 20억원의 연봉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축구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차이나 머니의 공습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볼 수도 있다. 돈줄이 마른 국내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 ‘가뭄의 단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건 K리그 구단도 마찬가지다. 차이나 머니가 이를 해소해줄 수도 있다. 수퍼리그 구단들이 유소년 시스템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성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한국 선수의 경쟁력과 아시아쿼터의 이점을 봤을 때 수퍼리그는 당분간 선수 영입에서 K리그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잘만 활용하면 이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자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핵심 경쟁력을 지키면서 교류를 이어가려면 정확한 정보와 전략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우리 축구와 경제에겐 큰 고비가 될 게 분명하다.

- 함승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1300호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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