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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ICT를 만나다] 거대한 논·밭이 손바닥 안으로 

스마트폰으로 작물 체크에서 온도 조절까지 … 전문가·소프트웨어 확충이 과제 


▎전남 장성에서 인삼쌈채를 재배하는 박윤희씨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도와 습도를 체크하고 있다. 박씨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인삼쌈채의 대량생산에 성공하면서 억대 소득을 올리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미래에나 구현될 듯했던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우리의 삶에 점차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한 곳에서 조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화 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각각의 사물이 약간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물인터넷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스마트폰은 사물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지휘통제실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집안 곳곳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집안의 온도를 조절하고 불도 껐다가 켤 수 있다. 냉장고를 체크해 부족한 물품을 찾아 장을 보고, 출근할 때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잘 먹고 지내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지금 당장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현실이다.

논과 밭도 IOT 열풍


사물인터넷이 삶을 바꾸고 있는 곳은 가정뿐만이 아니다. 농촌의 생활까지 바꿔놓고 있다. 앞서 나열한 기술은 모두 농업이나 축산업에 적용할 수 있다. 최근 농사를 짓는 하우스에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는 사례가 많다. 비닐하우스 곳곳에 카메라와 센서를 설치해 농작물을 관리하는 것.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스마트폰만 보고도 농작물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스마트폰으로 물과 비료를 보충하고 습도와 온도 역시 조절할 수 있다. 스마트폰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농작물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수확량이 늘고 품질도 좋아진다. 과거에는 하루에도 수십번 드나들어야 할 논이나 밭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시간적 여유도 안겨준다.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 농업에 ICT를 접목해 성공한 농가가 많다. 한상구 세종시시설하우스연합회 회장은 세종시 연동면에서 수박·오이·멜론 등 다양한 품목을 재배한다. 1980년대 초반부터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최근 한 회장의 농장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연동면이 세종시와 SK가 추진하는 창조마을 시범사업 장소로 선정된 것. 비닐과 흙만 가득했던 비닐하우스에 최첨단 설비가 장착됐다. 한 회장의 하우스 안에는 카메라·온도계·습도계·CCTV 등 6개의 장비가 있다. 이 장비를 토대로 지능형 비닐하우스 관리 시스템(스마트 팜)을 운영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하우스 내의 온도와 습도를 체크한다. 간단한 조작만으로 작물에 물을 주거나, 하우스의 천장을 열었다 닫을 수 있다. “오이나 토마토 같은 작물은 외부 기온에 아주 민감하다.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볼일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며 해가 내리쬈다. 하우스 천장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 위해 하우스로 달려갔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불안해서 멀리 나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농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축산업에도 ICT를 도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전남 구례군에서 산수유양돈농장을 운영하는 박건용 대표는 다양한 ICT 장비를 활용해 돼지를 키우고 있다. 냉·난방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은 물론이고 일정 시간마다 필요한 사료가 공급되는 장치도 갖췄다. CCTV를 이용해 돼지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과거보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돼지를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ICT 기술 도입 이전보다 인건비는 33% 줄고, 생산성은 30%가량 늘었다”며 “무엇보다 작업에 매달리는 시간이 6분의 1로 줄어서 다른 일에도 매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여유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있다. 산수유양돈농장은 대한민국 축산분야 1호 농식품 ICT 교육장으로 선정됐다. 1년에 300명이 넘는 사람이 박 대표의 농장을 찾는다. 축산업에 몸담고 싶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부터 이미 양돈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대한민국의 농업과 ICT의 만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지 모른다. 한국은 최근 많은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전 세계의 값싼 농축산물이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비교적 경작 규모가 작고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한국의 농가가 맞서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생산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는 다른 나라가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좋은 품질의 작물을 생산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주요 농축산물 생산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여 생기는 여유시간을 활용해 다른 부가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이 모든 문제 해결의 키를 ICT가 쥐고 있다. 사물인터넷·근거리무선통신·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가능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하우스나 축사 곳곳에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한다. 이 센서가 전달하는 정보를 사물인터넷과 근거리무선통신을 이용해 농장 주인에게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쌓이는 정보를 분석해 농축산물이 잘 자라는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 센서를 비롯한 다양한 ICT 장비가 과거 사람의 몫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노동투입 시간을 줄이고도 양과 질이 풍부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FTA 위기 타개책은 ICT


▎스마트폰으로 하우스 내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시설의 원격조종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 사진:베티카 제공
정부도 적극적으로 ICT를 결합한 농축산업 시스템을 늘리려 힘쓰고 있다. 현재 그 중추 역할을 맞고 있는 곳이 세종시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세종센터)다. 첨단 영농기술과 ICT를 융합한 ‘농업형 창조경제’ 모델 개발을 목표로 6월 30일 출범했다. 정식 출범 전인 지난해 10월부터 세종시에 창조마을 시범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세종센터는 SK와 함께 ‘신농사직설’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빅데이터를 비롯한 ICT 기술을 농업에 적용해 스마트 팜과 스마트로컬푸드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스마트폰으로 농산물의 환경을 실시간·원격 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팜을 도입한 농가는 벌써 100곳이 넘어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스마트 팜으로 딸기 농사를 짓는 농가를 대상으로 성과를 조사한 결과 생산성은 22.7% 증가했고, 노동력은 38.8%, 생산비용은 27.2% 감소했다.

최근 세종센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농업과 ICT의 접목을 계획하고 있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세종시를 찾는다. ICT 기술을 활용해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나 새로운 기술로 생산성을 높이고 싶은 농민, 농축산 분야 스타트업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 세종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기술만 배워가는 건 아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기도 한다. 세종센터는 찾는 이들에게 기술과 노하우를 알려주고, 센터를 찾는 이들은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센터는 더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팜 2.0’ 사업이다. 현재 국내 농촌에 보급되는 ICT의 중심은 하드웨어다. 각종 센서와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눈과 귀, 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장치들은 수없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이 정보를 제대로 분석한다면 더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월간·연간으로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 농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병충해가 발생하는지도 분석해 미리 대응할 수도 있다. 데이터 자체가 대한민국 농업과 축산업의 힘이 되는 셈이다.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게 ‘스마트 팜 2.0’ 사업의 골자다. 농식품부와 농진청, 강원도, 세종센터, 농식품교육문화 정보원 등이 8월부터 힘을 합쳐 스마트 팜 2.0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농업과 ICT의 결합이 장밋빛 미래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아직 해결할 문제가 많다. 박건용 대표는 “ICT 장비는 잘 쓰면 약이요, 못쓰면 애물단지”라고 말했다. ICT 장비를 들여오는 것 자체가 결국엔 투자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많은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만만찮다. 비싼 돈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 살림에 큰 부담이 된다. 농업 ICT 분야의 전문가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단순히 장비만 설치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농사와 ICT 관련 기계에 대한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 필요한데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다. ICT를 적용할 수 있는 분야도 늘려야 한다. 현재 스마트 팜을 운영 중인 농가를 보면 딸기·토마토·오이 등 몇몇 작물에 한정되어 있다. 농산물은 종류마다 자라는 환경과 재배법이 다르다. 말 그대로 지금은 가능성만 보고 있는 단계다. 더욱 다양한 작물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농가간의 빈부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그나마 돈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농가는 사정이 괜찮다고 볼 수 있다. ICT 설비에 투자할 수 없는 영세한 농가는 앞으로 점점 더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거기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ICT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ICT 도입은 그림의 떡이다. 실제 ICT를 접목한 농가에 가보면 연구실에 들어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거대한 시스템의 지휘통제실처럼 컴퓨터 모니터가 여러 개 놓인 곳도 있다. 그 모니터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정보가 나타난다. 젊은 사람도 한 눈에 이해하기 힘들 만큼 복잡하다. 고령층이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 관련 인력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농업과 ICT의 만남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 그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해결할 과제도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ICT 가 힘들었던 한국의 농업에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상구 회장은 “스마트 팜이 생산성을 몇 % 올렸나보다 농민들의 행복지수를 얼마나 올렸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효과보다 보이지 않는 효과가 더 크다는 뜻이다.

“생산량보다 행복지수 증가가 더 반가워”

세종시의 창조마을에서 만난 한 농민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장비 설치한 지 2달째라 아직 얼마나 좋아질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마을이 예전보다 더 밝아졌어요. 농사일이라는 게 1년 12달, 하루 24시간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도 똑같은 일의 무한반복이죠. 지루하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시스템을 들어오면서 마을의 분위기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이 농작물을 관리해주니 다같이 여행을 다녀오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이 늘었어요. 그 자체가 농민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박스기사] 세계의 선진 농업은? - 재배부터 위기 예측까지 첨단기술로 중무장

농업에 ICT를 접목하려는 곳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농업과 ICT는 현재진행형의 중요한 이슈다. 농업 관련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일찌감치 농업에 ICT 기술을 적용해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농업은 거대한 사업이다. 기본적으로 경작하는 규모부터 다르다. 그 넓은 땅에서 자라는 작물을 관리하고 수확하는 걸 인력으로만 해결하긴 어렵다. 기술의 힘이 절실했다. 미국이 농업 관련 과학기술에서 앞서나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벌써 수년 전부터 드론(무인항공기)을 활용해 작물에 물을 주거나 비료를 살포한다. 카메라가 달린 드론을 활용해 농장 곳곳의 작물의 상태를 체크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은 농업 환경이 다르다. 한국이 연구해야 할 국가는 규모가 큰 미국보다는 환경이나 규모가 한국과 비슷한 국가의 기술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과 환경이 비슷한 나라를 돌며 선진농업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한국이 참고해야 할 흥미로운 기술이 많다.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는 농업 현장을 모니터링 하기 위한 휴대용 카메라 보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장비는 간단하다. 카메라가 설치된 모자, 컴퓨터가 담긴 등가방, 특수 장비가 탑재된 장갑을 끼고 현장에 간다. 현장에서 각종 작물에 손을 대기만 하면 그 작물의 사진이 찍혀 데이터로 전송된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 농작물의 상태를 점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농부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부분을 바로 촬영해 전송할 수 있어 농사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

일본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기술도 널리 보급되어 있다. 벼농사를 재배하는 지역의 토양과 수분상태, 날씨, 작물의 특성을 고려해 공급량을 산출한다. 그에 대한 쌀 수요량을 확률적으로 계산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이 이제 막 하드웨어를 보급하고 있는 단계라면 일본은 이미 보급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생산되는 정보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참고할 사례다.

멀리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새로운 농업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국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 산악지형으로 이뤄졌다. 과거에는 평지에서 밀·옥수수·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업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평야 공간을 현대식 산업 건물이 장악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산악으로 밀렸다. 작은 규모에서 효율적 농업을 할 수 있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간단한 작물관리와 시설관리부터 기후 예측을 통한 의사결정 지원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ICT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센서를 부착해 직접적인 작업이 가능한 로봇도 속속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산악지형에서도 활동이 가능하도록 특수 계량된 로봇이다. 이런 기술을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고 품질이 좋은 작물을 생산한다.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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