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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에 비친 농촌] 2015판 [전원일기]는 불가능? 

농촌 구성원 삶과 유리된 [삼시세끼]의 한계 현실의 농촌으로 향하게 만들어야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도시인의 힐링 욕구를 자극한 <삼시세끼>(위쪽)는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농촌의 본질적인 가치까진 다루지 못했다. 같은 맥락에서 농촌 구성원의 일상을 밀도 있게 다룬 <전원일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다 2013년 한국에 돌아왔다. 미디어 전공자로서 자연히 한국의 TV프로그램의 트렌드에 관심을 두고 관찰했다. 독특한 건 우리나라 TV 속에 놀라울 정도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채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먹는 장면을 끊임없이 보게 되는데,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 시청자의 흥미를 끌 만하다. 유난히 식사장면이 많은 한국의 가족 드라마, 여기에서 더욱 진화해 아예 먹는 행위가 주인공인 최근의 드라마([식샤를 합시다]나 [심야식당]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맛집 탐방 프로그램, 유명인을 동원하는 경쟁적인 음식 만들기 프로그램, 연예인이 소개하는 나의 레시피나 홈쇼핑 먹거리 광고를 거쳐 그야말로 프로그램 전체가 ‘세끼 내내 밥 해먹기’로만 구성된 [삼시세끼]에 이르게 된다.

이벤트 가득한 동시대 예능 프로 누른 저력

케이블 채널 tvN의 [삼시세끼]는 참 신기한 프로그램이다. 아무리 예능계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나영석 PD라고 해도, 프로그램 내내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요리에 서투른 남자들이 세끼 밥을 해먹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만으로 100분이란 긴 시간을 때우다니. 그럼에도 시청률은 지상파 프로그램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선의 한 시골집을 세트로 삼아 두세 명 남자 연예인, 몇 마리의 동물과 텃밭으로 이뤄진 제한적인 공간, 한적하기 그지없는 분위기까지. 이 프로그램이 빠른 편집과 이벤트로 가득한 동시대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서 이슈메이커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삼시세끼]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에 대해 농촌에서의 삶이 도시인의 힐링 욕구를 자극했다거나, 자급자족적인 농촌 생활의 단순함이 주는 명료함 때문이라는 등 여러 이유가 언급된다. 그런데 이들이 밥해먹고 지내는 이곳은 정말 농촌인가? 다시 말해서 지금 한국 농촌의 현실이 반영된 장소고, 농촌의 삶이 다루어지고, 농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공간일까?

농촌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다. 농업이 지닌 기간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은 도시인의 휴식이나 테마 여행지로서가 아니라, 바로 국민을 먹여 살릴 1차재를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급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국가가 최첨단 기술로 경쟁하더라도 전혀 변하지 않는 조건이다. 또 외국으로부터 농산물 수급이 원활하더라도 국가 안보의 기본 조건으로서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인은 건강에 매우 민감해서, 발달된 몸보신 담론을 지니고 있다. 음식으로 병을 치유한다거나, 몸의 사상의학적 특성과 계절에 따른 보양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전통이 퍼져있다. 이는 다양한 현대적 변주를 낳으며, 보통 국민의 일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 담론의 기본 전제는 당연히 먹거리 1차재인 농산물의 양질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은 맛을 추구하면서도 입에 들어가는 그 식재료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관심이 없다.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시청률의 사각지대인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에 방송되는 ‘내 고향 탐방’과 같은 프로그램이 원재료의 신선함, 고향의 손맛 등을 강조하긴 해도 먹거리 생산과 유통의 구조적인 문제, 농촌의 피폐함이나 경제적·공동체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삼시세끼]는 어찌 보면 농촌에 대한 이러한 한국 사회의 집단적 감수성과 농촌 현실에 대한 현재적 무관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피곤한 도시인들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또는 남들이 먹는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면서 정신적 허탈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먹방’은 출연자 스스로 재료를 구하고 직접 요리한다는 점에서, 손쉬운 인스턴트 음식의 대척점에 서있다. 물론 이들이 한 번의 끼니를 차리기 위해 쏟는 노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농업이 남의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공동체적 목표를 지향하는데 반해, 오직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이기적이다. [삼시세끼]의 배경인 농촌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대척점으로서의 농촌, 프로그램의 남다른 배경으로서의 도시 밖 공간, 자연의 세트장에 가까운 지정학적 공간일 뿐이다.

이것은 기념비적인 드라마 [전원일기] 속 농촌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1980년에서 2002년까지 1088회 방송된 주말연속극 [전원일기]는 국내에서 손 꼽히는 최장수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동체 드라마의 원형과도 같다. [전원일기]의 배경인 ‘양촌리’는 어디에 위치한 마을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이상적인 공간이다. [전원일기]의 농촌은 농촌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공간으로서 유의미한 것이지, 무엇인가를 심고 거두는 일, 먹거리와 관련된 현실 정합성이 중요하지 않다.

이 드라마는 투박하고 때로는 거친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농촌의 일상을 공유하며, 가난하지만 따스한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적인 농촌을 그렸다. 잘못이 있으며 뉘우치도록 감싸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도와서 극복하는 그런 마을이다. 한번도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시청자까지 마음의 고향을 느낄 수 있었던 이러한 농촌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22년 동안 향수를 느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공동체로서의 농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2002년에 끝난 [전원일기] 속 공동체를 2014년에 시작한 [삼시세끼]에서 찾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TV에서 사라진 인정 넘치는 공동체적인 농촌

[삼시세끼]의 포맷이 현재의 농촌을 다루는 최적의 방송 포맷인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삼시세끼]는 애초에 농촌 사람들 또는 농촌의 현실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도록 고안됐다. 연예인으로 구성된 출연자는 녹화를 위해 여의도나 상암동의 스튜디오에 잠시 몸을 맡기듯 [삼시세끼]의 시골집을 오간다. 이 시골집이 어떤 마을의 일부고, 그 마을이 어떤 농촌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차원에서 [삼시세끼]는 가상현실 게임, 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 속에 출연자를 던져놓고 행동 양식을 촬영해 방송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형식에 충실하다. 출연자는 마을의 어떤 구성원과 만나지도, 관계를 맺지도 않는다. 도시인이 애완동물을 기르듯 외국 이름을 붙이고, 인간 중심적인 자막처리를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염소와 닭, 개와 고양이가 있는 시골집 세트 속에서 농촌 코스프레를 할 뿐이다.

어찌 보면 [전원일기]롤 보고 향수를 느꼈던 20년 전 시청자와 [삼시세끼]라는 농촌 코스프레를 보고 힐링을 경험하는 오늘의 시청자나, TV 속 가상현실로 농촌을 경험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65세 청년 농부들이 힘겹게 유지해나가고 있는 현재의 농업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는 포맷은 과연 어떤 것일까? 텔레비전에서조차 계속 먹어야 하는 허기진 사회 속 위기의 중산층과 청년세대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농촌으로 발길을 향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은 과연 없을까?

-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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