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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대학 구조조정] 칼 빼든 정부 이번엔 성공할까? 

9년간 대학 정원 16만명 감원 방침 ... 대학가 초긴장 속 갈등·반발 

정부가 다시 대학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부실 대학으로 분류되면 정부·금융 지원을 중단해 사실상 강제 퇴출시킨다는 것이 요지다. 예상대로 파장은 만만치 않다.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다. 누군가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대학을 한줄로 세워 하위권 대학을 쳐내는 방식은 갈등과 반발만 부르고, 진정한 교육개혁도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적 합의와 정책 운용의 묘가 절실하다.

▎한석수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이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8월 31일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평가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대인 강원대 신승호 총장은 결과에 반발해 사퇴했다. 수원대는 보직교수 10여 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청주대는 이사회와 총장·학생 간 학내 분규 사태로 번졌다. 경주대는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교육부 지침을 착실히 따르며 구조조정을 했지만 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국내 대학을 A에서 E등급까지 5개 등급으로 나눴다. D·E 평가를 받은 대학은 4년제 일반대학 32개교, 전문대학 34개교. 이들 대학은 국가장학금, 학자금대출 등 재정지원에 제한을 받는다.

강원대 김도경 대외 협력본부장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원칙을 지키겠지만, 이번 결과에 대해선 교육부에 끝까지 항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시작 ‘대학설립준칙주의’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구조개혁의 고삐를 더욱 조일 전망이다. 앞으로 9년간 정원 16만 명을 줄인다는 게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433개 대학(전문대·사이버대 등 포함)의 평균 입학 정원이 1650명인 점을 고려하면 약 100개의 대학을 없애겠다는 의미다. 매년 대학을 평가해 정원 감축을 유도하고 부실 대학은 퇴출시킬 방침이다. 한석수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은 “학령인구 감소로 가만히 있으면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며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을 육성하기 위해 이번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대학 입학정원은 54만명이다. 내년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는 약 62만명이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고졸자는 계속 줄어들어 2023년엔 39만명까지 내려간다. 고졸자가 모두 대학에 진학해도 입학정원에서 15만 명이 부족하다. 대학생 모집 정원에 학생 수가 못 따라가는 현상은 2003년 처음 발생했다. 2003년 4년제 대학 모집인원은 38만명이었지만 입학생은 34만명에 그쳤다. 이듬해인 2004학년도 4년제 대학 모집인원은 41만1561명이었으나 실제 입학생은 36만3425명으로 총 모집인원의 88.3%에 그쳤다. 미충원율은 2003학년도 11%에서 11.7%로 높아졌다. 이후 대학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대학 응시에서 미충원율은 줄였지만, 줄어드는 학생 수를 감당하기엔 대학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한국에 대학이 늘어난 계기는 1995년 김영삼 정권의 교육개혁에서 비롯됐다. 그 해 5월 김영삼 정부는 초·중등교육, 대학과 대학입시, 평생교육 분야 등을 망라한 종합개혁안인 ‘5·31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 가운데 대학 설립 요건에 변화를 주는 대학 설립준칙주의가 있다. 대학 설립 문턱을 크게 낮춰준 제도다. 이전에 대학을 설립하려면 정부의 까다로운 심사와 평가를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본격 시행된 이후엔 일정 요건만 갖추면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과 글로벌화로 더 많은 대학인력을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 대학 설립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정책을 준비한 안병영 당시 교육부 장관은 “5·31 대책은 전체적으로 성공한 정책이지만 세부 운영부분에서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대해선 “관리능력이 부족한 중간 단체들, 즉 교육청이나 학교에 자율을 주다 보니 문제가 꼬이면서 결국 중앙정부의 통제 기능이 약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에 더 많은 고등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관리 과정에서 통제력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1996년 이후 설립 대학 학생 충원율 70% 그쳐


▎전국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학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과 맞물리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의 양적 성장을 유발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불과 5년 만에 94개 대학이 설립 허가를 받았다. 종합대학의 18.8%, 전문대학의 13%가 이 기간에 신설된 것이다. 대학의 정원자율화 정책도 확대되며 대학생 수도 크게 늘었다. 1990년 158만 명에 불과했던 전국 대학생 수는 1995년 221만 명, 2000년에는 313만 명으로 치솟았다.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지만 오히려 사회문제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학 간판만 달아놓은 부실대학이 등장했다. 심지어 캠퍼스 크기가 일반 사립 고등학교보다 작은데다 연구논문이나 학회 활동 등 교수의 실적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학이 버젓이 나타나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비리 대학 재단도 나왔다. 일부 재단은 학생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을 교육시설 등 연구 목적이 아니라 이사장 개인적인 목적에 사용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이사장이나 총장이 사법처리를 받아도 재단은 건재했다. 이사장 친인척이 돌아가며 학교 핵심 요직을 차지하며 권력을 장악해서다. 대학설립준칙주의를 시행한 이후 나타난 지방 소재 소규모 대학교 상당수가 부실대학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1996년 이후 설립된 4년제 대학교 상당수가 학생 충원비율이 7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퇴출된 대학 6곳도 1996년 이후 설립된 대학이었다.

고학력 실업자 문제도 불거졌다. 대졸자를 요구하는 일자리 수는 그대로인데 졸업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른바 명문대 졸업생도 구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이름조차 생소한 지방대생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대학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학 구조조정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다. 정원 감축을 중심으로 한 대학 구조를 개혁하려는 정책이 본격화했다.노무현 정부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을 통해 정원 감축을 재정 지원사업의 직접적인 조건으로 제시했다. 입학 정원 감축을 조건으로 한 재정지원 사업 및 대학 간 통폐합을 추진했다. 교육부는 지방대 혁신역량 강화 및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이나 영역별 특성화 사업 및 주문식 교육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정원감축을 유도했다. 안병영 전 장관은 “당시 한국 대학은 질적 발전을 위해 양적 팽창과 백화점식 경영을 포기하고 특성화를 통해 구조개혁에 앞장서야 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부 대학구조조정 처음 시작


하지만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그리 큰 성과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개선은 국립대학에 그쳤고, 사립대학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해서다. 이를 위해 사학법 개혁을 내놓았지만 정치문제로 변질되며 여야간 협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사학법 입법을 추진했던 김신일 당시 교육부총리는 “보수·진보의 이해관계가 없는 교육정책임에도 여야가 맞서 결국 법안 마련에 실패했다”며 “교육을 정치적인 논쟁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부실 사립대학’ 퇴출을 위한 사립대학 정원 감축을 본격화했다. ‘대학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해 부실대학을 선별해 정부 재정지원 중단 등 자발적 퇴출의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2009년부터 경영 부실대학을 선정하고, 2010년부터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명단을 발표했다. 2011년에는 하위 15% 대학을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으로, 일부는 경영 부실대학으로 선정했다. ‘부실’이라는 이름을 명확히 붙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부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정부에 재정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각 대학의 경영 전반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 경영부실 대학 선정제도다.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이나 학자금 대출 제한대학처럼 특정 분야 하나가 부족해서 선정되는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부실하고, 사학비리 등 비리혐의까지 있어서 실제로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곳이 여기에 포함됐다. 2013년부터는 경영 부실대학의 경우 국가 장학금 지원을 제한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실제 폐교 조치를 받거나, 자진 폐교한 대학은 총 6개 대학으로, 감축 정원은 2329명이었다.

역대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펼쳤지만 여전히 구조조정은 어려웠다. 정부가 정책을 준비할 때, 대학은 이미 대책을 마련해 움직였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한국 대학은 문어발식 생존전략이 있어, BK(두뇌한국)21이 뜨면 대학원 중심, LINC(산학협력선도대학)가 나오면 산학협력, CK(지방대학특성화) 이야기가 나왔을 땐, 대학특성화를 추진하며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주요 종합대학이 박사과정·해외유학생연수과정·평생교육 프로그램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구조개혁 기간을 3주기로 나눠 주기마다 모든 대학을 평가하고 평가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 모든 대학은 절대평가로 등급이 매겨진다. 각 대학은 평가 결과에 따라 매우 미흡·미흡·보통·우수·최우수 5개의 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에 따라 입학정원 감축, 정부 재정지원사업 참여제한, 국가장학금 미지급, 학자금대출 제한, 자발적 퇴출 유도 조치를 받는다. 평가에 따른 결과로 퇴출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별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과 같은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구조개혁을 연계해 대학의 자율적인 정원 감축도 유도하고 있다.

대학가엔 긴장이 흐른다. 지난 발표를 시작으로 더욱 강한 구조조정의 파고가 몰아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위권·수도권·지방대 사이의 이해도 첨예하게 맞물려 있다. 이번 평가를 위해 상위권 대학도 자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학생 정원을 감축했고, 상대평가를 늘렸다. ‘학점 인플레’를 줄이고, 심지어 재수강 제도를 폐지한 대학까지 있었다. 수도권 대학은 자율 경쟁을 원한다. 더 많은 학생이 지원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대학과 비슷한 수준의 정원 감축을 계속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정부의 지방대 지원 탓에 지방대학보다 평점이 높음에도 더 많은 정원을 감축했다”며 “지방대를 위해 수도권 대학이 희생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위권·수도권·지방대 갈등 심화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인 지방대는 고통 분담을 요구 중이다. 전국 4년제 대학총장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이 고르게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5년까지 상위권 20곳을 연구중심대학으로 정하되, 학부 정원을 자율 감축하자는 제안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 부구욱 영산대 총장은 “대학 특성에 따라 연구중심대·학부대·산학협력중심대 등으로 나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위권·수도권대학의 반응은 싸늘하다. 상위권과 하위권 대학의 정원을 똑같이 줄이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부실 대학을 껴안고 계속 가는 것은 사회와 학생이 치러야 하는 비용만 커지는 악수”라며 “시장 원리에 맡겨 살 곳은 살리고 보낼 곳은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용탁 기자 cho.youngtag@joins.com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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