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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시행해보니 | 중견·중소기업] 사람 부족한 中企엔 먼 나라 얘기 

숙련 인력 나이 많다고 임금 못 깎아 … 고령화 따른 생산성 저하 고민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9월 4일 인천 부평구 심팩 본사에서 열린 민간기업 임금피크제 도입 관련 현장간담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 대상 임금피크제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주로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3년 초부터 지난해 9월까지 임금피크제 지원금 지원 현황을 보면 278개 사업장, 2545명의 근로자들이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받아 줄어든 임금을 보전 받았다. 이 중 직원 1000명 이상의 기업이 전체 지원 대상의 55.8%를 차지했다. 300인 이상 기준으로 보면 76.6%에 달한다.


이와 달리 10인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21개 사업장, 28명만이 지원금을 받았다.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에 비해 근로조건이나 사내복지가 좋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더 많이 도입하고 지원금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의 ‘2014년 임금피크제 도입현황 및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이 13.4%로 300인 미만 사업장(7.9%)보다 높다.

대기업·공공기관보다 도입 비율 적어

중소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기업과 다소 다르다. 임금피크제는 기본적으로 ‘늘어나는 직원수’와 그로 인한 임금 부담에 대한 대안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정년 연장으로 경험 많은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임금피크제는 중소기업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년이 지난 사람을 계속 고용하고 싶어도 임금이나 직급 등 타 직원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정년이 늘면 대상 직원도 떳떳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다른 중소 전기제품 제조 업체 관계자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기술직의 경우 일흔 넘는 사람도 없어서 못 쓰는 상황”이라며 “나이 들었다고 임금을 낮출 수는 없는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규모가 아주 작은 중소기업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가 크고 재무 여력이 있는 중견기업 중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사례를 찾기 쉽다. 램프 등 자동차 부품을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에스엘은 2005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만 58세 1월에서 만 58세 12월로 연장하는 대신 늘어난 정년 기간 동안은 20% 삭감된 임금을 받는 형태다. 2004년 임금단체협상 당시 노조 측이 정년 연장을 요구하자 사측에서 임금피크제 카드를 꺼냈고, 임금 감액률을 협의했다. 퇴직금은 임금피크 적용 시점에 정산하고, 정년 시점에 11개월어치를 또 받는 방식이다.

삭감의 기준이 될 임금을 통상임금으로 할지, 평균임금으로 할지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통상임금을 감액 기준으로 삼으면 시간급이 줄고 이와 연동된 연장 수당도 줄어 임금 총액이 지나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본급·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적정 수준으로 줄여 임금피크 적용 전의 80% 수준이 되도록 맞췄다.

계열사를 포함해 4500여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144명이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았다. 임금피크제 적용자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는 1900여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 가운데 약 1000명이 30세 미만의 신규 인력이다. 다만, 신규 채용이 임금피크제 덕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회사의 임금피크제 적용자는 전체 근로자의 0.004% 정도다. 이들 임금의 20% 절감 효과는 정년 연장으로 인한 임금 부담을 다소나마 덜어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중견기업의 한 경영자는 청년 신규 채용에 효과에 대해 “어차피 청년층이 기피하는 중견·중소기업에게는 임금피크제의 절감 비용으로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는 정부 설명이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자 수가 많지 않아 적용 대상이나 감액 기준 등이 비교적 단순한 게 특징이다. 인천에 기반을 둔 합판 제조 업체 A사는 2006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방식은 앞선 사례와 대동소이하다. 현장 근로자의 정년을 만 56세에서 1년 연장하면서 늘어난 기간에 임금피크를 적용한 형태다. 임금 감액률은 20%다. 현재 전체 400여명의 현장 근로자 가운데 14명이 임금피크제 대상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년 연장의 부담을 더는 것뿐 아니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다 젊은층이 기피하는 중견·중소기업이다 보니 장기 근속자를 회사에 머물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개별 평가로 감액율 결정해 노사 윈윈

A사는 법제화 되는 60세 정년에 대비해 임금피크제도 손 봐뒀다.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은 만 56세에서 1년 늦춰진다. 만 57~59세는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의 80% 임금을, 만 59~60세에는 70%를 받는다. A사 관계자는 “처음엔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이 1년에 불과하는 등 미비한 부분이 많았지만, 미리 적용해본 덕에 60세 정년에 맞추기 위한 노사간의 협상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제조업 특성상 육체적인 일이 많아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는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직능급제 같은 보완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년 연장을 앞두고 회사 사정에 맞춰 독특한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시도하는 중견·중소기업도 있다. 금속 성형기계 제조업체 심팩은 지난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정년을 만 57세에서 60세로 연장한데 이어, 올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결정 지었다. 임원을 제외한 직원 295명 중 내년 임금 피크 적용 대상은 5명이다.

심팩 노사가 합의한 피크 적용 시점은 만 56세다. 시점이 다소 빠른 편이다. 대신 임금 삭감률이 유동적이다. 매년 개별 인사 평가를 토대로 0~10%의 임금 감액률을 결정한다. 전체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상대평가 방식으로 채점한다. 성과가 좋을 경우 임금피크제 시점이 지나도 임금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 관계자는 “노조 측에서는 시점이 이르다는 불만이 있었지만 개인별 평가 아이디어로 이견을 좁힐 수 있었다”며 “직원들의 동기 부여가 필요하고, 고숙련 기술자를 끌어안으려는 회사와 감액률을 줄이려는 노조의 이해 관계가 맞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 함승민 기자 ham.seungmin@joins.com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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