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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 강국을 가다 | 중국 베이징 ‘중관춘’] 인구대국이 창업대국으로 상전벽해 

하루 1만1000개 창업 ... ‘정책+돈+인프라+열정’이 창업 신드롬 일으켜 


▎베이징 중관춘 창업거리 입구에 있는 대형 조형물. / 사진:김태윤 기자
summary | 중국이 창업천국으로 바뀌고 있다. 창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은 중국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넘치는 돈, 풍부한 인재가 만나 창업 신드롬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중국은 올 상반기에만 하루 평균 1만1000개의 기업이 새로 설립됐다. 수도 베이징은 물론, 주요 도시마다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10월 12~15일 중국 현지에서 보고들은 창업 열기는 ‘두렵다’는 생각이 들 만큼 뜨거웠다.

베이징 서북부의 중관춘은 중국의 창업 열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20여년 전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국가급 첨단기술 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중관춘에는 약 3만여개의 크고 작은 기업과 북경대·칭화대·인민대 등 40여개의 대학, 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등 국책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다.

중관춘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곳은 ‘이노웨이(Innoway)’로 불리는 창업대가(創業大街 : 창업거리)다. 리커창 총리가 올해에만 두 차례 방문해 화제가 된 곳이다. 200m 남짓한 창업거리는 원래 헌책방과 문구점이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카페형 창업공간 등이 생기면서 지금은 중국 청년 창업의 상징이자 메카로 통한다. 코트라 북경무역관 관계자는 “중관춘 창업거리에서만 지난 1년 사이 600개의 창업 기업이 탄생했다”며 “평균 투자(융자) 금액은 500만 위안(약 8억900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빠른 걸음으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창업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의문이 풀리는 데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빈 손으로 들어와 상장하고 나간다”


▎카페형 창업공간인 처쿠카페에서 청년들이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김태윤 기자
10월 13일과 14일 찾은 중관춘 창업거리 보행도로는 한산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방송팀만 분주히 움직였고, 공안(경찰)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거리 입구에 있는 대형 조형물 사진을 찍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범한 거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창업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 안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창업 생태계의 압축판이었다. ‘엔조이 더 비거(Enjoy the Bigger)’라는 이름의 카페 벽에는 온갖 게시물과 대자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O2O(Online to Offline) 창업을 함께 할 프로그래머를 찾는다’ ‘혁신적인 온라인 쇼핑몰 개발팀을 구성했다. 우리를 먹여살릴 투자자 겸 CEO를 찾는다’…. 이 카페 운영책임자는 “이노웨이에는 20여곳의 창업 카페가 있다”며 “카페라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제각각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맞은편 6층짜리 건물에도 ‘IC카페’라는 창업 카페가 있었다. 2층에는 중국 3대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가 운영하는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가 있었고, 3층에는 창업투자회사가 자리했다. 창업거리에만 이런 창업서비스 기관이나 회사가 40여곳 입주해 있다. 중관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형 창업공간인 처쿠카페 관계자는 “중관춘 창업거리는 빈 손으로 창업 아이디어만 가지고 들어와서 기업공개(IPO)를 하고 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창업거리 중간쯤에 있는 한 창업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출입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내부는 청년들로 북적였다. 한 쪽에서는 상담을 받기 위해 예닐곱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유리 파티션을 친 ‘ㄷ’자 모양의 공간 안에서는 5명의 직원이 전화를 받거나 자료를 출력하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1~2층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창업 관련 법률·재무·인력운용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4층에는 스타트업 벤처가 20여곳 입주해 있다”고 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중국투자인중심(中國投資人中心)’이라는 벤처캐피털 겸 인큐베이팅 회사가 있었다. 직접 창업 투자도 하고, 엔젤투자자·벤처캐피털리스트와 창업가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맞은편 대각선 건물에는 ‘싼더블유(3W)카페’라는 곳이 있었다. 지난 5월 리커창 총리가 들러 청년 창업가들을 만난 곳이다. 카페 입구에는 음료를 만드는 바가 있고, 카페 안은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층 한 쪽 벽에는 ‘나스닥 인덱스’라는 제목의 대형 판넬이 붙어 있었다. 1980년 애플, 1986년 마이크로소프트, 1997년 아마존이 나스닥에 상장했다는 기록과 함께 1999년부터 지금까지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벤처 90여곳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른 벽면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대형 사진이 걸려 있고, 중국 IT거물들의 사진도 타일 형식으로 붙어 있었다. 3W카페를 찾는 중국 청년들이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카페 관계자는 “이곳은 주로 인터넷 비즈니스 스타트업들이 모인다”며 “대중 창업공간은 모든 창업 서비스 요소들이 구축된 곳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창업 공간과 투자사, 인큐베이팅 회사, 크라우드펀딩 기업, 창업 커뮤니티 등 창업 프로세스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아우르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2층에서는 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관련 벤처가 대형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운 채 사업 설명회를 하고 있었다. 카페 관계자는 “올 봄에는 한국 스타트업 15곳도 이곳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연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창업 4.0시대 맞은 중국


▎한 창업카페 벽에 중국 IT업계 거물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인근 빙고카페라는 곳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회원제로 운영한다는 창업 카페다. 카페에는 30여명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거나,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이 카페 벽에도 레이쥔(샤오미), 마화텅(텐센트), 리옌홍(바이두), 스위즈(자이언트) 등 중국 IT업계에서 신화로 불리는 CEO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카페 관계자는 “레이쥔은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청년들을 만난다”고 했다. 그곳에서 만난 20대 청년은 “저 벽 맨 꼭대기에 내 사진이 올라갈 것”이라며 웃었다.

창업거리 입구에서 안쪽으로 50여m를 가면 국내 벤처 업계에도 잘 알려진 처쿠카페가 나온다. 처쿠는 차고라는 뜻이다. 처쿠카페는 중관춘 창업카페의 원조격이다. 2011년 문을 열었다. 13일과 14일 연이어 찾은 처쿠카페는 커피 한 잔 값으로 하루 종일 앉아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음료를 만드는 공간 옆 벽면에는 엔지니어나 동업자, 투자자를 찾는 게시물이 빼곡히 붙어 있다. 2층에 있는 카페에는 4~6인용 테이블 40여개가 있었는데, 빈자리는 없었다. 모두 창업을 했거나 준비 중인 청년들이다. 그들은 사진을 찍건, 옆 테이블에서 인터뷰를 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한 쪽 테이블에서 중년의 남성이 청년 3명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카페 관계자는 “중관춘에서 유명한 엔젤투자자”라고 귀띔했지만, 토론 열기가 뜨거워 말을 걸기 어려웠다. 처쿠카페 관계자는 “보통 하루 200명 안팎이 찾는데, 그마저도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건물 6층 전체를 처쿠카페로 개조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쿠카페는 창업 구상 단계부터 컨설팅, 투자, 인큐베이팅까지 모두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했다.

중관춘 창업거리는 ‘창업→투자·육성→성장→재투자’의 창업 생태계가 구축돼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태계가 중관춘 창업거리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라 북경무역관 관계자는 “펑타이나 창핑 등 베이징시 외곽 지역이나 징진시(베이징·톈진·허베이) 전체로 확산되는 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상하이나 선전·광저우·항저우·충칭 등에서도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에서 창업 열풍이 본격적으로 분 것으로 지난해부터다.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에서 685만개의 새로운 기업이 설립됐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다. 법인기업만 따지만, 200만1000개로 19.4% 증가했다. 하루 평균 1만1055개 기업이 탄생한 셈이다. 지난해에는 하루 1만개, 2013년에는 6857개였다. 올 1월 리커창 총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총회 개막식에서 “중국 경제는 신창타이(뉴노멀)로 진입하고 있어 앞으로는 중고속 성장을 통해 ‘중고급 수준으로 나아가는 솽중가오(雙中高)’를 실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2개의 엔진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했다. 2개의 엔진 중 하나가 바로 3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대중창업(大衆創業), 만인혁신(萬衆創新)’이다.

이를 전후로 중국 정부는 ‘쉬운 창업’을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중국 국무원은 등록자본등기제도 개혁을 통해 최소 창업 자본금 요건을 철폐했다. 기존에는 기업 설립에 최소 3만 위안(약 530만원)이 들었지만, 현재는 1위안만 있어도 창업을 할 수 있다. 창업 절차도 대폭 줄였다. 창업을 위해 160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절차를 대폭 줄이고, 권한도 지방 정부에 이양했다. 또한 창업을 하기 위해 각각 발급받아야 했던 공상영업허가증과 조직기구번호, 세무등기증을 하나로 통합하는 ‘삼증합일(三證合一)’, 사업자 등록을 위한 6개 증서를 하나로 합한 ‘일조일마(一照一碼)’ 시행을 전국에 확산했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삼증합일 시행 후 평균 26일 걸리던 기업 등록 소요시간은 14일로 줄었고, 일조일마 시행 후에는 3일로 단축됐다. 심지어 하루만에 기업 등록을 마칠 수도 있다.

중국 IT 거물들도 미래 스타 기업가 키워

정책 자금도 쏟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 1월 400억 위안(약 7조1200억원) 규모의 국가신흥산업 창업투자 촉진기금 조성을 발표했다. 9월 1일에는 600억 위안(약 10조70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발전기금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씨앗기와 초창기 성장형 기업의 융자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파격적인 세금 감면 정책도 내놨다. 8월 국무원 상무위원회는 소형·초소형기업의 세금을 감면해 주기로 했는데, 예상 세금 감면 규모만 1000억 위안(약 17조8000억원)을 넘는다. 또한 지방정부도 앞다퉈 혁신창업을 위한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3년 졸업자 723만명 중 17만명(2.3%) 정도인 대학생 창업자 수를 4년 내에 80만명 수준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정부만 나서는 것은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창업투자 규모는 147억 달러(약 16조7300억원)로 전년보다 3.7배나 증가했다. 사상 최고치다. 중국 창업 투자 규모가 줄곧 증가해온 것은 아니다. 2010년 69억 달러 수준이던 창업 투자규모는 2012년 49억 달러, 2013년 40억 달러로 줄었다. 그러다가 중국 정부가 창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급증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약 8000~1만개 정도의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벤처캐피털 업체들의 투자 가능 자본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2%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530억 달러(약 59조9000억원)에 달했다. 또한 실제 VC투자 규모는 2013년 66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69억 달러(약 19조1000억원)로 급증했다. 창업 초기에 주로 투자하는 엔젤투자 규모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엔젤투자가들이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5억3000만 달러(약 6030억원). 전년 대비 162%나 증가했다. 투자건수도 766건으로 350% 늘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 내 벤처 투자가 중에는 성공한 기업인이나 해외 투자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내에서 가장 많은 엔젤투자를 한 젠펀드(ZhenFund)는 중국 유명 교육회사인 신동방교육그룹과 미국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 캐피탈이 합작한 곳이다. 투자 3위인 레전드스타는 중국과학원과 레노버가 함께 설립했다. 레노버는 3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200여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청년 창업자들의 우상인 알리바바의 마윈은 아예 100만 창업자 육성을 내걸었다. 마윈은 지난 3월 말 100억 위안(약 1조7800억원)을 들여 ‘촹커플러스’라는 온라인 창업 지원 플랫폼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IT 관련 스타트업에 제품·부품 개발 지원은 물로 공장 부지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관련 중관춘에 있는 빙고카페 관계자는 “베이징은 물론, 상하이나 선전, 우한 등에서 시범 운영 중인 촹쿼플러스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는 청년들이 150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마윈뿐 아니라 레이쥔(샤오미), 마화텅(텐센트), 장차오양(소호닷컴) 등 중국의 IT거물 다수가 엔젤투자가나 벤처캐피털 역할을 하고 있다.

투자회수 시장이 활성화된 점도 투자가들이 창업 시장에 몰리는 요인이다. 중소·벤처가 주로 상장하는 선전거래소 창업판(ChiNext)과 중소기업판(SME), 홍콩 성장주시장(GEM), 북경 신삼판(新三板) 등 IPO를 통한 투자회수도 활발하다. 특히 최근에는 장외거래시장인 신삼판이 각광받고 있다. 신삼판에 등록한 상장기업은 9월 말 현재 3720개다. 지난해 말(1572개)보다 두 배가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중국 벤처들은 지난 3분기에만 신삼판에서 525억 위안(약 9조3000억원)을 조달했고, 시가총액은 올 상반기 기준 1조1940억 위안(약 213조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올 1월 ‘신삼판’을 전국적 범위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약 830건의 투자 회수가 이뤄졌는데 IPO와 인수합병(M&A), 지분매각이 약 80%를 차지했다. 2014년 투자건수 대비 투자회수 비율은 29% 정도다. 창업 후 IPO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다. 평균 3.9년이다. 한국은 13년, 미국 8년, 유럽 6년 정도 걸린다.

중국 전역으로 창업 인프라 확산

창업 인프라도 확산되고 있다. 중관춘에 있는 ‘중국투자인중심(中國投資人中心)’ 관계자는 “창업가와 예비 창업가 그리고, 엔젤투자자, 창업투자사, 인큐베이터, 정부, 대학, 미디어 등으로 이뤄진 창업 생태계 주체들이 창업 지원 서비스 체인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의 경우 창업 아이디어 단계에는 칭화대 창업동아리 X랩이나 베이징우전대학 등 창업교육기관이 있다. 다음 단계에는 AAMA·레전드스타 같은 창업 트레이닝 기관이 있고, 처쿠카페·36커 같은 창업 교류 플랫폼이 형성돼 있다. 투자를 받아야 하는 창업 초창기 단계에는 K2VC·AAMA 같은 엔젤투자·벤처캐피털과 호우더TMT·인터넷교육혁신중심 같은 신형 인큐베이터 회사들이 있다. 또한 초창기를 벗어난 창업기업은 액셀러레이터(벤처기업에 투자와 컨설팅을 동시에 하는 기업)의 도움을 받거나 전문산업단지에 입주한다. 칭화대가 출자한 투자회사인 THTI홀딩스의 황옌 디렉터는 “중국은 계속해서 선진국의 창업 인큐베이팅 사례를 탐색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의 500스타트업이나 플러그앤플레이, 이스라엘의 Y콤비네이터 등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500스타트업(500Startups)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고, 플러그앤플레이(Plug and Play)는 구글·페이팔 등에 초기 투자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큐베이터다. Y콤비네이터(YC)는 이스라엘에 있는 세계 최초의 엑셀러레이터다.

‘창업 낭인’ 우려에도 창업 열기 오래갈 듯

대학에도 창업 바람이 불고 있다. 황옌 주임은 “대학이 청년 창업가의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경대에는 창업트레이닝센터가 생겼고, 주요 대학마다 창업 관련 강의가 늘고 있다. 북경대 경영학과 4학년인 유학생 문정윤씨는 “리쿼창 총리의 다보스포럼 연설 이후 실제로 창업 관련 강연이 늘었고, 창업으로 방향을 튼 학부생도 많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패션 교육 분야에서 중국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북경복장 학원(대학)은 지난해 졸업생 중 7.5%(107명)가 창업을 했다. 또한 중국취업촉진회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매장 창업으로 1000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는데, 이 중 대학생이 창업한 온라인 몰에서 일하는 취업자 수만 618만명에 달한다. 이 중 30만명 정도는 현재 대학 재학생이 창업한 온라인몰이다.

중국에서 ‘창(創)의 열풍’이 불고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중국어 ‘창(創)’은 성조에 따라 ‘새로 시작하다’와 ‘상처를 입다’는 뜻으로 나뉜다. 실제로 중국 창업시장에서는 요즘 ‘A룬시(A死)’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창업 이후 투자를 A~D단계로 분류하는데, C단계까지 가면 증시 상장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창업기업이 A단계에서 죽는다는 말이다. 창업은 쉽지만, 일정 규모로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창업사기도 빈번하다고 한다. 투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조작한다거나, 실적을 부풀리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투자 유치액을 부풀리고, 창업판이나 중소기업판, 신삼판 같은 증시에서도 매출과 이익을 날조하는 상장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전반적인 경제 둔화로 일자리가 줄면서, 특별한 기술이나 아이템 없이 무작정 창업에 뛰어드는 청년들도 많아, 중국 내에서도 ‘창업 낭인’을 우려하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지방정부의 부패나 ‘훙딩중제’와 같은 중국 특유의 장애물도 여전하다. 훙딩중제는 공증·허가 등과 같은 정부의 기업 대상 업무를 대행하는 기관인데, 중국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이로 인한 낭비와 부패, 폐단이 심해 ‘공공의 적’으로 불리는 제도다.

하지만 중국 창업 열기가 쉽게 식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중국 정부가 달라졌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둔화되는 경제를 ‘창업과 혁신’으로 부흥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를 위해 ‘창업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훙딩중제 개선에 나섰고, 공무원들이 창업 허가 과정에서 사적 이익을 취하거나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틈새를 메우는 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또한 민간 투자자 활성화, 특히 해외 기업과의 공동 투자나 협업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샤오미·알리바바·화웨이·하이얼 등의 성공담이 중국 사회에 퍼지면서, 제2의 마윈·레이쥔을 꿈꾸는 청년 창업가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1세대 벤처와 CEO들이 혁신적인 창업 플랫폼과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국가적 전략과 민간의 자발적 열정이 시너지를 내며, 경제대국 중국이 창업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 베이징=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스기사] 황옌 칭화대 THTI홀딩스 산업촉진연구원 디렉터


“실패는 경험, 재창업 기회 열려 있다”

THTI홀딩스는 중국 3대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가 출자한 창업 투자·컨설팅·인큐베이팅 회사다. 중관춘 창업거리도 이 회사가 기획·운영·관리한다. 중국 창업 현장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다. 지난 10월 14일 베이징 칭화대 캠퍼스 내에 있는 THTI홀딩스에서 만난 황옌 디렉터(주임)는 “한국 스타트업이 중국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만, 중국을 제대로 알고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관춘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나?

“중관춘에는 중국과학원과 북경·칭화·인민대 등 주요 대학과 창업 투자 관련 회사들이 밀집해 있다. 연구 환경이 최적화돼 있고, 창업 프로세스도 잘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중관춘의 핵심 경쟁력은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중국 내 투자자들은 주로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나? 투자회수는?

“창투사들은 주로 TMT(Tech·Media·Telecom)와 문화산업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한다. 전통적 제조업은 하락 추세이기 때문이다. 투자 회수 시기는 다소 짧은 편이다. IPO나 M&A보다는 지분 매각으로 차익을 얻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이나 실리콘밸리나 창업 기업의 5% 정도만이 살아 남는다. 창업 열기가 이어지려면 실패 후 재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어떤가?

“창업 실패 후 다시 투자를 받는 것은 현재 중국 분위기에서는 전혀 비관적이지 않다. 실패해도 얼마든지 재창업할 기회가 있다. 우리 회사만 해도 창업에 실패했다면, 그 팀을 다시 본다. 좋은 팀이라고 판단하면, 실패한 경험이 오히려 가산점이 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창업 붐업을 하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산업 부흥과 사회 안정 차원이라고 본다. 중국 실물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쌍창’ 즉, 창업과 창신(Innovation)이다. 그런데, 이노베이션은 원래 있던 산업을 혁신하고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당장 국내총생산(GDP)을 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 창업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연 750만명의 대학 졸업생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창업을 독려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둔화되는 실물경제와 제조업 상황을 감안할 때 청년 일자리를 모두 소화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는 중국 진출을 바라는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 그들이 중관춘에 온다면 말리겠는가, 환영하겠는가?

“매우 격려를 하고 싶다. 얼마 전에도 한국 벤처 관계자들을 만났다. 좋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는 중국 시장을 너무 몰랐다. 중국에 진출하려면 중국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경쟁사가 있는지, 법률 체제는 어떤지 등을 세세히 알아야 한다. 최근 한 한국 대학생 창업가를 만났는데 매우 좋은 기술이고 아이템이었지만, 중국 정부가 국가안전 차원에서 막는 기술이었다.”

[박스기사] 홍다이멍 처쿠카페 대외협력팀장


“한국 진출 추진하고 있다”

처쿠카페는 중관춘 창업거리에 있는 창업카페의 원조격이다. 지난 9월 23일 미·중 정상회담 때 시애틀에서 열린 ‘미·중 인터넷산업 포럼’에 중국 창업플랫폼을 대표해 처쿠카페 CEO가 참석했다. 마이크로소프트·IBM·애플·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양국 IT거물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10월 14일 만난 홍다이멍 대외협력팀장은 “한국에 처쿠카페 분점을 내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에 진출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추진 중이다. 올 상반기에 한국에 가서 투자와 관련된 창업 분야 관계자들과 만났고, 정부 측과도 접촉을 했다. 처쿠카페 한국 분점을 여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국 청년들은 창업 공간이 없어서 창업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또한 서울에는 카페가 차고 넘친다. 왜 한국 진출을 타진하나?

“한국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들은 처쿠카페 분점을 열기를 원했다. 한국 내 새로운 창업 공간을 여는 것은 물론 양국간 벤처 교류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처쿠카페는 단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공익성이 강한 곳이다. 11월에 구체적인 협의를 위해 방한할 계획이다.”

왜 중국 청년들이 처쿠카페를 찾는가?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온다고 믿는다. 이곳에서는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처쿠카페의 수많은 성공 모델도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또한 처쿠카페는 인재와 아이디어, 투자자가 모이는 곳이다. 언제든 멘토링을 받을 수 있고, 창업 관련 법률 서비스도 제공한다. 처쿠카페는 중국 청년 창업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중관춘 곳곳을 돌면서 뜨거운 창업 열기를 눈으로 확인했다. 혹시 거품은 없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업에 열광하다 보니, 너도 나도 너무 쉽게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창업은 어려운 일이고,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실업을 피해 창업에 뛰어드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고 본다.”

중국에서 창업을 하려는 한국 청년들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실제로 처쿠카페에도 한국 젊은이들이 찾아 온다. 우리는 그들을 환영한다. 중국 스타트업과 협업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중국 정부도 해외에서 온 창업기업이나 투자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창업은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 자신만의 생존방식을 갖추지 않는다면 아무리 창업 환경이 좋아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309호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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