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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업’ 강국을 가다 |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펀드 회장] 될성부른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 키워야 

스타트업 10%는 생존 ...“한국 거점으로 아시아 신흥시장 개척”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펀드 회장은 정부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지원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 사진:중앙포토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1990년대 슬슬 피어오르던 창업 열풍을 살리기 위해 1993년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창업 지원 펀드인 ‘요즈마펀드’를 출범했다. 정부와 민간이 각각 4대 6의 비율로 투자해 조성한 이 펀드는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거듭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의 기반과 스타트업 창업 환경도 조성했다. 1997년 민영화된 이후로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1억 달러였던 규모는 현재 40억 달러 수준으로 불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창업펀드로 평가받는다. 요즈마펀드의 성공 비결과 이스라엘 창업의 강점은 뭘까? 펀드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23년째 요즈마펀드를 이끌고 있는 이갈 에를리히 회장을 만났다. 이갈 회장은 이스라엘 산업통상노동부 수석과학관(장관급)을 9년간 역임하며 창업국가 비전 설립에 참여했으며, 창업전선의 최전방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또 한국의 창조경제와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협력사업을 펼치는 중이다.

이스라엘이 창업국가로 성장 전략을 짠 배경은?

“척박한 땅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의 고립 전략으로 정치·외교적으로 위태로웠다. 경제적으로는 곤궁했고, 산업 기반 역시 취약했다. 인구는 많은데 영토는 좁고 자원은 부족했다. 당연히 내수 시장도 전무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 정세 불안으로 많은 방위비가 소요됐다. 한국의 1950~1960년대와 비슷했다. 자원은 없고, 가진 것은 사람 밖에 없다 보니 아이디어 중심의 창업형 성장 전략을 마련하게 됐다. 한국이 중후장대 중심의 산업 국가로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창업국가 비전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이갈 회장은 오는 12월 판교에 첫 해외 캠퍼스를 개소하는 등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 사진:중앙포토
“이스라엘은 치수·치안 등 기초적인 생활 요구를 충족시켜가면서, 자연스레 해외 시장을 보게 됐다. 해외에 막대한 규모의 시장이 있고, 이 시장을 공략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한국이 경제를 전략적으로 성장시키는 관리형 모델이었다면, 이스라엘은 기업들의 글로벌화를 독려하는 방임형 모델이었다. 창업자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다 보니 전 세계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아이템을 고민하게 되고, 해외의 강한 기업과 경쟁하며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모든 이스라엘 국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2년 정도의 휴지기를 가진 뒤 군대에 가며, 그 뒤부터 본격적으로 장래를 고민한다. 이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서 창업의 동력이 발생하며, 느리지만 탄탄한 창업경제의 초석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스라엘 정부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 번째는 1993년 요즈마펀드를 설립시키는 등 창업의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시장이 자생적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 전문가들은 성공의 원인을 탈무드 등 교육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탈무드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탈무드 정신이 사회와 창업 전반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탈무드는 토론하는 정신을 가르치는데, 이 안에는 후츠파 정신이 강하게 담져 있다. 과거부터 랍비(유대교 사제)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학생들에게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쳤다. 다만, 많은 이스라엘인은 탈무드를 배우지 않는다. 탈무드는 일종의 종교적인 가르침으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탈무드 자체는 종교인이 많이 읽는 것이지, 정규 교과 과정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후츠파 정신이란 무엇이며, 이스라엘에게 스타트업네이션이란 무슨 의미인가?

“한국에서 후츠파, 혹은 후츠파 정신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한국 사회가 후츠파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리 대단한 의미를 가진 말은 아니다. 일상적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혁신적인 기업을 일으키고 이를 성공으로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 후츠파 정신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실패를 스타트업이란 게임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누군가의 실패를 용인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하다. 인생에서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높은 게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스라엘은 마치 스타트업 공장과도 같은 곳이 됐다. 눈에 보이는 공산품이 아니라 창업과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트업네이션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기술시장이 작아 스타트업의 매각·상장이 원활하지 않다.

“인수·합병(M&A)과 상장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스타트업 시장에 10개 가운데 9개는 실패하지만, 1개는 반드시 성공하는 규칙성이 있다. 이 때문에 성공하는 1개의 스타트업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좋은 스타트업이라면,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성장을 일궈야 한다. 또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른 기업의 기술과 접목해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모색해야 한다.”

투자 손실을 피하는 요즈마펀드의 노하우가 있나?

“투자를 먹고 일어서는 신생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무척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투자실패 가능성을 항상 열어둬야 한다. 요즈마펀드의 경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기업과 여러 종류의 사업 아이템에 투자해 리스크를 분산한다. 20개 기업에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일반적으로 18개가 문을 닫고 2개 기업이 대성공을 거둔다. 이 성공한 2개 기업의 투자 이익을 통해 모든 손실을 상쇄한다. 요즈마펀드 출범 이전에 창업 인큐베이터를 먼저 설치한 점도 리스크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었다. 스타트업은 창업 이전에 좋은 환경에서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자금 지원 등의 엑셀러레이팅은 그 이후 문제다. 또 글로벌화할 수 있는 기업을 우선 선정한다. 글로벌 트렌드에 적합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가진 회사가 첫 번째 투자 대상이다. 물론 투자자로서 모든 기업과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돼야 하며, 높은 전문성과 리스크 분산, 분석은 기본이다.”

요즈마펀드 한국 캠퍼스의 운영 계획과 기대 효과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투자가 몰릴 것이다. 현재까지 요즈마펀드를 비롯해 세계적인 벤처캐피털인 미국의 360IP·페녹스VC·클리어브룩, 영국의 브라이트스타파트너스 등 5개 벤처캐피털이 참여하기로 했다. 이런 활동이 한국 경제에 큰 변화를 이끌지는 못하겠지만, 창업 생태계는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좋은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작업을 먼저 펼칠 것이다. 캠퍼스가 일종의 인큐베이터가 되는 셈이다. 아울러 와이즈먼 연구소의 기술 이전 센터도 유치했다. 와이즈먼 연구소는 지적재산권으로 연 매출 1조원을 올리는 곳인데, 이곳의 여러 기술을 한국에 들여와 가장 적합한 스타트업에 접목시키고 기술을 이전해 줄 생각이다. 인큐베이팅과 엑셀러레이팅 모두 요즈마와 와이즈먼이 함께 한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1년 반이나 걸렸다.”

한국에 요즈마 캠퍼스를 설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즈마펀드가 이스라엘 이외에 캠퍼스를 개소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창업이 활발한 나라도 없다. 한국은 정부와 모든 유관기관이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요즈마펀드는 한국을 거점으로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진출도 꾀할 것이다. 아시아시장에서는 한류 열풍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한국의 스타트업은 높은 전파성과 확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타트업을 바로 미국에 진출시키기보다는, 아시아 시장에서 먼저 검증 받고 성공을 이루는 편이 중장기적으로 낫다고 본다. 향후 나스닥 등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도 유리하다. 아울러 한국-인도네시아, 한국-중국 등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두 시장을 한번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강점을 꼽는다면?

“한국에는 세계를 이끄는 큰 기업이 많고, 기술적으로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스타트업들의 기술력 역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정부의 투자 및 지원 대부분이 대기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업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살릴 기회가 별로 없다. 만약 새로운 기술을 내놓더라도 대기업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혹시 뺏기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한다.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국 스타트업, 나아가 한국 경제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발전을 위한 조언을 한다면?

“무엇보다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한편 많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창업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 성공한 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에 기반을 다져줘야 한다. 한국의 아이카이스트라는 기업은 현재 요즈마펀드 한국지사가 나스닥 상장을 주관, 지원했고 이를 통해 수백만 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아이 카이스트는 애초부터 글로벌 시장에 나가야 할 회사였고, 요즈마펀드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해외로 진출시킨 사례다. 한국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창업을 장려하고 스타트업을 격려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실패했을 때 이를 용인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패를 용납할 준비조차 안 돼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놀란 점이다. 이스라엘 과학수석실의 경우 스타트업이 실패하면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공유한다. 반대로 성공한 경우에는 함께 승리를 만끽하며 돈도 같이 번다. 한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가장 큰 태도 차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스스로 실패나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준비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국민들이 마음껏 창업하고, 스타트업 시장에서 자유롭게 실패할 수 있는 이유다.”

- 텔아비브=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1309호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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