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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사이 6조원 규모 기술 수출
시장 판세 읽고 계약 대상 경쟁 부추겨한미약품의 이 같은 퀀텀점프에는 두 가지 비결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우선 연구·개발(R&D)에 대한 공격적이되 선별적인 투자 방식이다. 적극적으로 R&D를 한다지만 비용 면에서 무리하지는 않으며, 기존에 있던 우수한 약제를 한층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으로 사업을 차근차근 키웠다. 좀 더 들여다보자. 창업주인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국내에서 ‘개량신약’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인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개량신약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개념이 아니다. 검증된 유(有)에서 조금 더 나은 유(有)를 이끌어내는 개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나온 검증된 약제의 염기서열을 조금 바꾸거나, 두 물질을 합쳐 성능이 강화된 새 약제를 내놓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완전한 신약을 개발하려면 각종 실험 등으로 투자비가 그만큼 많이 드는 한편 개발에 실패할 위험 부담도 커지지만, 개량신약 개발에만 집중한다면 이보다 투자비와 위험 부담이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한미약품은 자금력이 떨어지는 등 아직 열악한 국내 제약 인프라를 감안, 일단 개량신약 개발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애초에 유수의 글로벌 제약사들과 같은 수준으로 신약의 R&D에 투자할 수는 없을뿐더러 그렇게 투자하더라도 경쟁력을 갖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쌓은 노하우는 자체 경쟁력을 갖춘 기술 확보의 디딤돌이 됐다. 이번 사노피와 얀센에 수출한 두 가지 신약에는 모두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랩스커버리(Lapscovery)’라는 기술이 적용됐는데, 이 기술은 약효가 좋지만 자주 투여해야 하는 불편함을 수반했던 기존 약제에다 특정 물질을 더해 약제의 수명을 개선해낸 기술이다. 다른 비결 하나는 협상의 기술이다. 한미약품은 규모가 훨씬 큰 글로벌 제약사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은 역발상의 협상법으로 되레 이들의 신뢰를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시장 상황을 잘 고려한 점이 주효했다. 예컨대 사노피의 경우 현재 얀센 등과 당뇨 치료제를 놓고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이다. 얀센은 1~2년 전 당뇨 치료제 시장에 뛰어든 이후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 시장 경쟁에 불을 붙였다.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이 이 같은 경쟁사로 넘어갈 경우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노피는 계약 협상에서 예상보다 큰 금액 규모의 배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꾸로 얀센 역시 경쟁사를 고려해 협상에서 한미약품에 함박웃음을 안겨야 했다. 통상 국내 제약사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와의 계약 협상에서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지만, 한미약품은 이를 교묘히 피해갔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한편 한미약품은 향후 추가로 수출이 예상되는 신약 기술을 보유해 당분간 제약 업계에서 거센 바람을 몰고 다닐 전망이다. 역시 랩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한 성장호르몬 ‘HM10560A’나 항암제 파이프라인 ‘HM95573’이 기술 수출이 가능한 신약들로 관심을 모은다. 특히 HM95573은 지난 상반기부터 임상 1상이 진행 중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세계 표적 항암제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구완성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하지 않은 신약이 아직 남은 한미약품이 랩스커버리 기술을 앞세워 계속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