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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유연근무제는] 최장 시간 근무국 일본도 유연화 바람 

아베 총리 “2020년까지 재택근무 비율 10%” … 독일에선 효과 놓고 공방도 


▎일본 도쿄의 출근 시간대 풍경. 일본은 유연근무제를 확대해 여성 인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스파(SPA)브랜드 ‘유니클로’로 잘 알려진 일본 패션 업체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 10월부터 주 4일 근무제도를 채택했다. 이전까지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4일 일하면 3일은 쉴 수 있다. 총 근무시간은 변화가 없어 월급은 그대로다. 이 회사가 파격적인 근무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서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선 노동인구가 감소하며 인력난 문제가 심각하다. 유엔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일본의 생산가능 인구는 28% 줄어들 전망이다. 이때문에 현재 일본 대졸 취업률은 95%에 달한다. 젊은 구직자들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이직하는 일이 다반사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주 4일제를 도입하면 직원들의 이직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회사는 우선 일본 전역에 자리한 840개 유니클로 매장에서 근무하는 정직원 1만여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한 후 결과에 따라 다른 브랜드로 점차 확대해나간다는 입장이다.

日 인력난 해소 위해 유연근무제 도입 확산


일본은 우리나라 못지 않게 많이 일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직장인의 22%가 일주일에 50시간 이상을 일한다. 직장인 5명 중 1명 이상은 주 중에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한국은 직장인의 19%가 50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영국이 OECD 국가 평균치인 13%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한국·일본 외 OECD 국가에서 장시간 일하는 근로자는 모두 평균치를 밑돌았다.

‘세계 최장 시간 근무국’이라는 오명을 쓴 일본에서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유연근무제 도입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주 4일제 확대가 노동시장에서 떠난 30~40대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를 직장으로 돌아오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에서 올 들어 주 4일제뿐 아니라 새로운 근무제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유명 주류회사 산토리는 현재 3000명 이상의 직원이 일주일에 하루 이상을 회사가 아닌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10여 명에 불과했다. 자동차 업체 닛산과 컴퓨터 시스템 업체 니혼유니스 등도 원격근무제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10월부터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한 인력채용 소개 업체 리쿠르트는 재택근무일 상한선을 아예 없앴다. 이 회사 직원은 원하는 기간만큼 얼마든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도 유연근무제 도입을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회사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 일본에서 일주일에 하루 이상 재택근무를 도입한 회사는 아직 4%에 불과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오는 2020년까지 이 비율을 1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그동안 경직된 기업문화로 일관한 일본 기업들이 유연한 조직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개국 가운데 20위에 불과하고, G7(선진 7개국) 가운데는 가장 낮다. 특히 제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진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근무조건 혁신이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덴에선 ‘짧고 굵게’ 일하기 고민


‘가늘고 길게’ 일한 일본과 달리, 스웨덴에서는 ‘짧고 굵게’ 일하는 방식을 두고 고민 중이다. 대부분의 OECD 국가와 마찬가지로 하루 평균 8시간 일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웨덴에서는 최근 6시간 근무제 도입을 놓고 설왕설래한다. 스웨덴은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가 1% 남짓에 불과(한국 19%)하고, 480일의 육아휴직과 25일 연차가 보장돼 유럽 내에서도 근무 환경이 좋기로 손꼽히는 나라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주요 국가 정책으로 내세워 효율적인 근무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몇 년 전 창업 붐 때 생겨난 스타트업 가운데 상당수가 자율적으로 탄력적인 근무 방식을 채택해 이러한 분위기가 노동계 전체로 확산됐다는 평가다.

BBC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의 디지털 미디어 제작 회사 백그라운드 AB는 지난 9월부터 6시간 근무제를 시작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이면 퇴근한다. 하루 8시간 동안 꼬박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 대표인 지미 닐슨은 “근무 시간은 6시간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업무 집중도가 높아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여가 생활을 누리며 업무 효율을 높인다. 닐슨 대표는 “앞으로 9개월 동안 6시간 근무제 실험을 해본 후 이 방식을 지속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스웨덴에서 6시간 근무제는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스웨덴 서부에 있는 도요타 서비스센터는 이미 10여 년 전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했다. 그 결과 회사 수익이 눈에 띄게 상승하자 이 회사는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6시간 근무제를 시도했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공부문의 근무시간 단축 효과를 분석한 예테보리시는 이 제도로 인해 근로자의 스트레스가 줄었고, 업무의 질은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근무단축 실험에 성공한 사례가 늘면서 6시간 근무를 검토하는 움직임은 신생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 도입 당시 기대와 달리 비용 증가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해 다시 8시간 근무 체제로 복귀한 곳이 적지 않은 만큼 스웨덴 정부는 근무시간 단축제도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른 유럽 국가도 근무시간을 줄이되 업무 효율성은 높이는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 1998년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 해온 프랑스는 사실상 근무시간 외에도 업무가 이뤄지는 상황을 개선하는 데 한창이다. 지난해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경총)와 노동조합은 퇴근 후인 오후 6시부터 출근 전인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업무와 관련된 전화, e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는 협약을 했다. 업무 외 시간에 전화를 걸거나 e메일을 보내 업무 압박을 주는 기업들은 고발 및 소송을 당하게 된다. 독일의 노동조합연맹(FDGB)도 근로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퇴근 후에도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업무 관련 통화나 e메일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퇴근 후 근로자에게 전화·e메일 금지


그러나 최근 유럽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며 근무시간 단축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도 존재한다. 프랑스는 최근 주 35시간 근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하며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은 지난 8월 “오래 전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장관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집권 사회당 내부와 노동계에서는 장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올 초에는 마크롱 장관이 샹젤리제와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경제 개혁법안을 내놓으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독일의 시그마르 가브리엘 경제장관도 마크롱 장관처럼 35시간 근로제를 재정비하는 내용의 공동 사업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해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독일은 OECD 국가 가운데서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독일 경제사회학연구소(WSI)의 지난해 발표 자료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2년 사이 독일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38.1시간에서 35.5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시간제근로자의 비율 역시 약 두 배로 증가해 전체 근로자의 2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WSI는 “독일이 근로시간 단축과 동시에 유연한 근무제도를 채택해 경제위기 속에서도 고용을 유지하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면서도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업무 강도를 높이고, 업무와 개인적 삶의 경계를 허물어 고용의 질이 하락했다”고 평가했다.

WSI에 따르면 평균 근로시간은 줄어들었으나 2012년 전체 경제영역의 근로시간 총량은 1995년 평균과 유사한 수준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사이 노동활동인구가 약 3770만 명에서 약 4160만 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현지 언론은 “노동인구의 증가는 근로계약의 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며 “여성의 사회 참여는 물론 이민자 증가 등 노동력 공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률의 감소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평균 근로시간이 감소한 것 밖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남녀간 주당 근로시간 격차가 과거보다 커졌고, 비정규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유연한 근무제도가 오히려 여성에게는 정규직 노동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불황에 주 35시간 근로제 폐지 움직임도

이러한 부작용에도 독일에서 유연근무제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1992년 불황기를 계기로 확산된 근로시간 유연화가 기업의 효율적인 인력 운용과 인건비 절감에 기여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기업들은 유연근무제로 인해 근로자의 숙련 수준과 근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어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는 물론,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도 수요 변동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실제 근로시간과 협약 근로시간의 차이를 적립해 차감 혹은 가산하는 근로시간 계좌제가 자리잡아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가 도입되고 있다. 독일 내에서 근로시간 계좌제를 채택한 기업은 절반에 달한다.

2001년부터 연간 근로시간 계좌제를 실시하는 화학약품 생산 업체 바이엘은 하루 24시간 연중무휴로 생산시설을 가동한다. 이 회사는 근로시간 계좌제뿐 아니라 재량 근로시간제, 선택적시간제, 유연적 교대제 등 다양한 근무제도를 운영 중이다. 덕분에 이 회사는 인건비가 저렴한 동유럽이나 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지 않고, 독일에서 입지를 유지해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근로시간이 유연화되면서 직원들이 연장근로를 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이로인해 생산 효율성 역시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1316호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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