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은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제약회사와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하는 쾌거를 일궜다. 종로의 작은 약국에서 시작해 30년 이상 독자기술 개발에 매달린 성과를 맺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혼다자동차가 소형 제트기를 생산, 미국과 유럽·브라질에 납품을 시작했다. 혼다는 이 제트기의 엔진을 독자 개발했다. 혼다의 항공기 사업은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꿈이었다. 혼다 오토바이에 그려진 날개도 ‘하늘을 날고 싶다’는 염원의 표현이다. 혼다가 항공기 개발에 돌입한 것은 지난 1962년. 반세기 동안 연구를 걸쳐 드디어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인 것이다. 보잉의 ‘777X’ 등 최신예 항공기들에 사용하는 탄소섬유. 무게는 철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강도는 10배나 강하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탄소섬유를 공급하는 곳은 일본의 ‘도레이’. 도레이는 1960년대부터 탄소섬유 개발에 매달려 2000년대 들어서야 개발을 완료했다. 보잉과는 10년 이상, 1조엔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유수의 소재·화학 회사들이 연구에 뛰어들었다가 포기한 분야에서 도레이는 마지막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이들 세 회사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한미약품의 창업자 임성기 회장은 직원들에게 항상 ‘남과는 다른 길을 한발 앞서 가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혼다는 ‘도요타·닛산과는 다른 차를 만들겠다’가 목표였으며, 도레이는 모두가 탄소섬유 개발을 포기할 때 홀로 묵묵히 기술개발을 지속했다. 둘째, ‘자기 사업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업의 목적이 단순히 이익 창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이런 신념은 오랜 기간 R&D(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인재 중시’의 경영 철학을 가졌다는 점이다. 한미약품 임 회장은 매일같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진을 격려했고, 혼다와 도레이는 신사업 분야에 대한 연구인력을 꾸준히 채용했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인재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노동자들에게 많은 급여를 주는 것은 가장 좋은 투자다. 이런 투자가 내게 높은 배당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바이오·정보통신(IT)·환경·사회인프라…. 이와 관련해 셀 수 없을 정도의 연구보고서가 쏟아진다. 그러나 리포트만으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한미약품·혼다·도레이의 성과도 이런 연구 보고서와는 무관하다. 한국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다.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우수한 학생과 연구자가 많고, 기업 내에도 견실한 연구자들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인재에 대한 투자 성과는 하루 이틀 만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인재들이 장기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영자라면 이럴 때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할까. 상식적인 선에서 유휴 부동산을 팔고,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그럼 이렇게 모은 자금은 어떻게 쓸 것인가. 모두가 당장 눈 앞의 일만 보고 ‘긴축경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100년 전 카네기의 말을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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