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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의 ‘한계비용’ 

상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드는 비용 기술·생산 혁신으로 낮춰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사진:중앙포토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공장의 중앙 사무실. 무대 오른쪽에 출입구가 있다.’ 카렐 차페크가 1920년 발표한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이렇게 시작한다. 로봇이라는 단어가 처음 탄생한 순간이다. 로봇은 현대의 모든 SF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중년들에게 낯익은 로봇태권브이, 우주소년 아톰, 마징가제트는 물론이고 요즘 아이들에게 익숙한 터미네이터, 트랜스포머, 카봇, 또봇까지 SF에서 로봇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일상에서도 로봇은 깊숙이 들어와있다. 청소용 로봇부터 산업용 로봇까지 로봇 천지다. 100년도 안돼 로봇은 현대에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가 됐다.

로봇의 원적지는 체코 프라하

로봇은 카렐 차페크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일만 하는 기계’를 고안했고, 이를 로봇이라 이름 붙였다. 로봇의 원적지는 체코 프라하다.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발표 이듬해인 1921년 이곳에서 초연됐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성공한 이 연극은 1922년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으로 이어진다. 특히 뉴욕에서는 한 시즌에 184회나 연속 공연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렐 차페크는 이제 현대 SF의 창시자라고도 불린다.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가 자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묵시록적인 로봇 소설과 영화의 원형이 됐다. 어느 외딴 섬에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회사가 있다. 늙은 로숨은 과학의 힘으로 ‘인간’을 만들어 냈고, 그의 아들인 젊은 로숨은 공정을 단순화해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현 회사 사장인 도민에게 헬레나라는 아름다운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는 도민과 결혼한다. 10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이제 로봇을 단순히 노동자로만 쓰지 않는다. 로봇들은 전투용 군인으로 제작돼 전쟁에 투입됐다.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헬레나와 갈 박사는 로봇이 사람처럼 살도록 하기 위해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변형시키지만, 인간을 이해하게 된 로봇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섬에 고립된 사람들은 저항 끝에 몰살 당한다. 단 한 명, 건축가 알퀴스트만 살아남는다. 로봇은 인간을 몰아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헬레나가 로봇 제작 과정을 담은 로숨의 원고를 태워버린 까닭에 더는 로봇을 생산할 수 없다. 로봇들은 알퀴스트에게 로봇 생산법을 알아낼 것을 요구하지만 건축가는 무력하다.

인간이 기계문명을 과신하고, 이 때문에 결국 종말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내용은 SF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이다. 로숨은 왜 이렇게 위험한 도구를 만들었을까. 늙은 로숨은 생명을 창조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픈 욕망이 있었다. 아들 로숨은 이 창조물을 대량 생산해 낼 수 있다면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R.U.R 회사의 대표이사 도민의 사무실에 인쇄된 포스터를 보자.

‘가장 저렴한 노동, 로숨의 로봇’ ‘신제품 열대지방용 로봇, 1개에 150달러’ ‘당신만의 로봇을 장만하세요!’ ‘생산비를 줄이고 싶으십니까? 로숨의 로봇을 주문하십시요’…. 카렐 차페크가 살았던 1920년대. 비용 절감을 통한 생산력 향상은 경영의 최고 화두였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장들은 대량생산과 함께 임금 삭감에 나섰다. 판매가격이 떨어지면 물건이 더 잘 팔릴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은 후유증이 금세 나타났다. 주머니가 빈 노동자들은 공장이 만든 물건을 사주지 못했고, 재고가 넘치면서 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졌다.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임금을 더 깎았고, 재고는 더욱 쌓였다. 이런 악순환은 1929년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케인즈가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시기에 노동력을 절감하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로봇’을 구상한 것은 시대적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로봇은 ‘한계비용 체증’을 막는다. 한계비용이란 상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드는 비용이다.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은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한계비용 체증의 법칙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다. 한 토지가 있다. 1사람이 쌀 10가마를 생산할 수 있는 땅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쌀 15가마니를 생산하고 싶다. 한 사람으로서는 생산할 수 없으니 1명을 더 고용해야 한다. 결국 두 사람이 15가마니를 수확해 생산량은 늘렸지만 1인당으로 보자면 7.5가마니로 오히려 줄었다. 고층 건물을 짓는 것도 비슷하다. 1층에서 10층, 20층으로 건물을 올릴수록 건설비용은 더 많이 들어간다.

한계비용에다 생산량을 곱하면 생산비용이 된다. 생산비용은 고정비용과 가변비용으로 이뤄진다. 고정비용은 기계설비, 임대료 등, 가변비용은 원자재, 임금 등이다. 통상 가변비용은 생산량에 관계없이 일정비용이 필요하고, 가변비용은 생산량이 줄거나 늘어나는 것에 따라 변화한다. 통상 가변비용은 생산 초기에는 급속히 증가하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감소한다. 그러다 한도를 넘으면 다시 비용이 늘어난다. 기업가로서는 가변비용이 최소화되는 시점이 중요하다. 최대의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지점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수익은 더 증가할 수 있다. 생산량을 늘리던지 임금을 깎으면 된다. 그게 바로 로봇이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R.U.R회사의 회계사인 부스만은 말한다. “지금 로봇 하나가 120달러 입니다. 15년 전에는 1만 달러였죠” 15년 전에는 1만 달러를 줘서 로봇 한대를 구입했는데, 지금은 고작 120달러다. 15년 만에 83배나 싸졌다. 로봇 구입 비용 절감은 임금 하락을 의미한다. 부스만은 “우리가 노동임금을 낮췄어요. 식대까지 포함해도 로봇을 쓰면 시간당 3분의 4센트 밖에 안 듭니다”라고 자랑한다. 도민 사장은 로봇을 이용해 큰 수익을 남기려는 악독한 기업주는 아니다. 그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꿈이었다. 생산비용이 하락해 물건값이 싸지면 인간은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할 필요가 없고, 대신 자아실현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도민과 같은 고민을 해 본 경제학자가 제러미 러프킨이다. 그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자유시장의 기술 혁신이 한계비용을 계속 낮춘 결과, 한계비용이 제로에 근접하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전망했다. 로봇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 물류혁명을 통해 한계비용이 계속 낮아지고, 그 결과로 기업의 이윤은 최소화된다. 거의 공짜로 물건을 쓰게 되는 시점이 오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버티기 힘들다. 자본주의는 막을 내리고 ‘협력적 공유사회’가 탄생한다고 러프킨은 밝혔다.

로봇은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의 영역에도 들어왔다. 미국 USA투데이는 이미 로봇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한 경쟁이 만들어낸 한계비용 제로의 사회는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318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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