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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③] 붕당 경고 무시했던 율곡의 참회 

율곡 이이의 목숨 건 사직상소② ... 수많은 탄핵과 비난 쏟아져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1575년(선조8) 10월 1일, 선조는 김효원을 부령부사로, 심의겸을 개성유수로 각각 발령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동인과 서인이라는 붕당이 형성되어 대립이 심해지자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둘을 외직으로 내보낸 것이다. 이른바 ‘을해당론(乙亥黨論)’으로 율곡 이이의 건의에 따른 조치였다.

사실 붕당을 바라보는 율곡의 심경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불과 3년 전 영의정 이준경이 죽음을 앞두고 올린 상소에서 붕당을 경고하고 이를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율곡은 붕당은 없다며 강경한 어조로 반박했다(선조5.7.1). 붕당을 결성했다는 죄목으로 조광조 등 선비들이 대거 화를 입었던 기묘사화의 참극이 다시 되풀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동서붕당이 확산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그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율곡은 관직에 있는 동안 어느 누구보다도 붕당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붕당에 대한 율곡의 고심은 특히 1579년 5월에 올린 대사간을 사직하는 상소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오늘날 동인과 서인에 관한 논의가 큰 문젯거리가 되고 있으니, 신은 이 점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이하 인용은 모두 선조수정실록 12년 5월 1일의 기사)라며 붕당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대책을 상세히 개진했다.

동서붕당 확산 막을 기회 놓쳐

율곡의 설명을 종합하면 붕당은 ‘선배사림’과 ‘후배사림’ 간의 갈등에 심의겸과 김효원의 감정싸움이 결합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척신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도 척신정권에 참여했던 선배사림과 척신이 몰락한 후 조정에 출사한 후배사림은 서로를 ‘지조를 지키지 못했다’ ‘지나치게 급진적이다’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여기에 ‘외척이었지만 사림을 보호하기 위해 힘쓴’ 심의겸과 ‘몸가짐이 맑고 뜻이 높은 선비’ 김효원이 대립하자 선배사림은 주로 심의겸을 지지했고, 후배사림은 대부분 김효원을 중심으로 뭉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당쟁’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가 힘든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괜한 일을 만들어 소문내기 좋아하는 자들이 동인과 서인의 설을 지어내어 실상은 살펴보지 않고 단지 의겸과 가까운 사람은 서인으로, 효원과 가까운 사람은 동인이라고 하니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동·서로 편입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굳어져 논의가 갈수록 과격해지고 바로잡아 제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율곡은 양시양비론을 선택한다. “효원도 신이 아는 자이고 의겸도 신이 아는 자인데, 이 둘의 사람됨을 논한다면 모두 쓸 만하고 과오를 논한다면 두 사람에게 다 잘못이 있습니다. 이 중 한 사람을 군자라 하고 다른 한 사람을 소인이라고 부른다면 신은 결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율곡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능력이 있고 뛰어난 사람들이지만 심의겸은 외척으로서 정치에 개입하려 한 잘못이 있고, 김효원은 사적인 감정으로 심의겸을 비난한 잘못이 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화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 율곡의 판단이었다.

이러한 율곡의 입장은 미봉책이라는 반론을 받을 수 있다. 율곡도 이 점을 예상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사람들은 신에게 ‘둘 다 옳다고 얼버무리니 시비가 분명하지 않다’고 나무랍니다. 천하에 어떻게 둘 다 옳고 둘 다 그른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놀립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논함에 있어 세상에는 둘 다 옳고 둘 다 그른 경우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은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사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신념과 신념, 목표와 목표가 충돌할 때 빚어지는 것이 갈등이다. 개개인이 가진 생각의 차이, 인식의 차이, 경험의 차이, 이 ‘차이’가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도 옳고 상대도 옳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서로 이해하고 합의 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율곡은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갈등은 건강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창의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일에 대한 의견과 아이디어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인 ‘직무갈등(task conflict)’의 경우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감정이 좌우하는 영역인 ‘관계갈등(relationship conflict)’과 합쳐지게 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비전과 역량의 경쟁은 사라지고 쓸데없는 감정싸움만 남게 되는 것이다. 율곡이 바라본 붕당도 이와 같았다.

율곡은 또 붕당으로 인한 갈등이 정치 본연의 임무까지 소멸 시킨다고 우려했다. “동인과 서인이 서로 버티게 된 뒤로부터 상대가 나를 도모할까 두려워하여 이를 견제하느라 다른 일에는 모두 손을 놓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벼슬길이 혼탁해져 기강이 날로 무너지고 있고, 백성의 삶이 쇠잔해져 가도 바로잡아 구제하지를 못합니다. 대체 누가 군자의 이름을 얻고 누가 소인의 이름을 얻느냐가 곤궁한 백성들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시시비비를 밝혀 군자당과 소인당의 구분을 명확히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것이 당장 오늘을 연명하기에도 힘든 백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좋은 정치를 펼치겠다면서 정쟁에 함몰되어 정치를 방기하고, 상대 당파를 이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느라 민생을 저버리는 행태를 율곡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로 견제하느라 정치엔 무관심

이에 율곡은 임금 선조에게 간곡히 진언한다. “지금 조정의 분열을 해소하지 않고 저들이 서로 헐뜯고 다투게 내버려둔다면 머지않아 종기가 곪아 터지는 아픔이 오늘날보다 더욱 심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동인과 서인의 묵은 감정을 씻어버리고 다시는 서로를 구별하지 말도록 명하옵소서. 당파와 상관없이 그 사람이 어질고 재능이 있으면 등용하고 그러지 못하면 버리옵소서. 편벽되게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자와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자는 억제하고, 남을 모함하여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공연한 일을 만들려고 하는 자는 배척하옵소서.”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인 화해가 어렵다면 임금이 갈등 조정자로서 적극 개입하여 강제적으로라도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율곡은 덧붙인다. “이제 신의 상소가 아침에 전하께 올라가면 저녁도 되지 않아 신을 헐뜯는 말이 쏟아질 것이옵니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신이 받은 큰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이 몸을 다 바치더라도 어찌 주저하오리까.” 율곡이 자신에게 닥쳐질 고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민감한 붕당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그것이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율곡에게는 수많은 탄핵과 비난이 이어졌는데 그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사직상소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20호 (201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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