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악마는 구체적인 사안에 존재한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경제는 심리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불경기 이야기가 돌면 소비가 줄어든다. 기업도 투자를 줄이고 움츠러든다. 그러면 정말로 불경기가 닥친다. 이런 속성을 감안할 때 요즘처럼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한 건 우려할 만하다. 부정적 전망이 일시적인 현상이면 극복하기 쉽다. 환경이 달라지면 전망도 달라진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혁신으로 무장한 선진국과 치고 올라오는 중국 사이에 치여 탈출구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이런 현실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지 못한다. 귀에 듣기 좋은 구호는 있다. 정부 여당은 경제활성화 관련 법이 통과되면 난국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에 매달린다. 달콤한 구호를 달성할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악마는 구체적인 사안에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최저임금의 예를 보자. 먼저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최저임금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자는 대부분 자영업자와 영세사업자다. 이들의 파산과 고용회피를 막으면서 사업을 유지하는 방안을 보여줘야 한다.

동반성장을 주장하려면 왜 대기업의 30%가 채무 이자도 못 갚는지 설명해야 한다. 1970년대에 실패한 보호 위주의 중소기업 전문업종 제도가 왜 다시 부활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이를 적용할 계획인지, 어떻게 소비자에게 이익을 줄지 설명해야 한다.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파견직과 계약직 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좋은 방향이다. 그러나 기업의 고용비용이 늘어난다. 경영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동화 공정을 늘리거나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로 공장을 옮길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를 스스로 만들고 있다. 애플은 해외 하청업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한다.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애플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지 방안을 제시해야 기업도 살고 근로자도 산다. 서비스산업 활성화도 좋은 주제다. 의료 민영화와 금산분리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 존재하는 규제를 그대로 놔두고 새로운 서비스 시장과 산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게 우리의 현실이고 악마들이다.

정치권에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다.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만들 정책능력이 없거나,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인 대안 없이 현재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현 정부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상관리와 위기관리의 책무 외에 다른 혁신을 할 여력이 부족하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져드는데 국민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힘들어도 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실질적인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당명을 바꾸는 정치쇼와 경제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치 신인들에게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에게 좀 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악마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를 숨겨 둔 채로 귀에 듣기 좋은 추상적인 구호로 국민을 호도할 것이다. 그렇게 권력을 주고 나서 무능한 정권이었다고 반복적으로 분노하고 절망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기에는 우리의 경제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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