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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신산업⑦ 인공지능] 글로벌 ‘AI 大戰’에 한국 한 발 늦어 

구글·IBM·MS 개발 경쟁 치열...한국이 능한 의료·가전·교육 AI에 집중할 필요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중국 방송의 아침 뉴스에 기상 리포터로 등장한 인공지능 ‘샤오빙’. / 사진:텅쉰디지털 제공
지난해 12월 22일 중국 둥팡(東方) 위성방송의 아침 뉴스쇼에 새로운 기상 리포터가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샤오빙’이라는 인공지능(AI)이다. 17세 소녀의 얼굴을 한 샤오빙은 낭랑한 목소리로 “스모그가 심하니 외부 약속을 잡지 말라”고 전했다. 샤오빙은 현재의 기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방송 진행자와 간단한 대화도 한다.

세계적인 암센터인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슬론 케터링에서는 IBM의 AI ‘왓슨’이 전문의와 함께 암·백혈병을 진단한다. 미국종양학회에 따르면 왓슨의 각종 암 진단 정확도는 91~100%. 전문의의 초기 오진비율(20~44%)보다 높은 정확도를 나타낸다. 왓슨은 의료진이 각종 임상정보를 입력하면 환자의 상태와 성공 확률이 높은 치료법 등에 대해서도 조언해준다. 왓슨의 역할이 커지면서 이 암센터는 ‘왓슨 종양내과’라는 부서까지 만들었다.

IBM의 AI ‘왓슨’의 암 진단 정확도 사람보다 높아


구글은 사용자의 질문에 답해주는 AI 챗봇(채팅 로봇)을 새 모바일 메신저에 적용할 계획이다. 예컨대 챗봇에게 ‘맛있는 게 먹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면 챗봇은 사용자의 검색 기록에서 취향·입맛을 분석해 맛집을 추천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단으로 AI를 접목하려 한다’며 ‘사용자들이 계속 구글 검색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구글의 목표’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AI 대전(大戰)’이 본격화되고 있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퀄컴·테슬라·우버, 일본의 도요타, 중국의 바이두 등은 유망 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우수 인력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면서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AI란 인간과 비슷하게 스스로 학습·판단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뜻한다. 과거에는 비밀 프로젝트로 AI R&D를 진행했다면, 최근엔 관련 플랫폼을 적극 개방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다. 주요 IT기업은 쉽게 AI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무료 ‘오픈소스’로 내놓으면서 생태계 확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사의 AI기술을 표준규격으로 삼으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우수한 두뇌들이 소프트웨어를 마음껏 쓰게 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힌트를 얻고, 이들을 차후 회사로 끌어오려는 목적도 있다.

이미 AI는 포털의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 일정 관리 같은 간단한 일에서부터 자동차 간 거리 조절, 금융권의 자산관리, 스포츠 전력 분석 등 빠르게 실생활과 접목하고 있다.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스마트카·로봇·사물인터넷(IoT)도 두뇌 역할을 하는 AI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앞으로는 AI의 발전에 따라 컴퓨터 자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음성인식 기술의 고도화로 사용자는 말로 PC에 명령을 입력하고 문서를 작성한다. 자동번역 서비스와 접목하면 외국인과 의사소통도 자유롭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개발한 감정인식 프로그램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분노·경멸·공포·혐오·행복·중립·슬픔·놀라움 등 8가지 감정상태를 확인한다. 오는 2020년이면 AI 로봇이 투자 상담을 하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운용 자산은 2조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IDC에 따르면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17년 1650억 달러(약 197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그간 AI에 소홀했다. AI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해외와 달리 수익성 등을 이유로 투자에 주저해왔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19개 연구소, 대학 소속 연구팀, 기업 가운데 AI 연구개발(R&D)를 하는 곳은 39곳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민간과 함께 투자를 진행하거나, 자체 예산을 가진 건 13곳에 그쳤다. 연구 전문인력도 32곳은 50명 미만이었고, 16곳은 1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AI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은 73.1에 불과하다. 유럽(85.7)·일본(83.7)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낮다. 28개 평가 분야의 평균이 83.9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뒤처진다. 송대진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대학·연구소에서도 단기 실적 위주로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깊이가 떨어진다”라고 진단했다.

세계 최초 개발보다 세계 최초 활용에 무게를

한국판 ‘왓슨’ 개발을 목표로 총 연구비 1070억원을 투입하는 ‘엑소브레인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정부가 주도하는 장기·대형 프로젝트들은 최근에서야 시작됐다. 국내 IT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여서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AI 분야에서 빠르게 추격하기 위해선 산학연 ‘3각 공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미 해외 IT기업들이 고급 AI 기술의 상용화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각개전투’ 식으로 대응해봐야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 정책본부장은 “이젠 특정 기술의 세계 최초 ‘개발’보다는 세계 최초 ‘활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투자 확대와 인재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AI 기술의 테스트베드 조성과 함께 R&D 투자에 대한 세제 및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학제 간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국내외 우수 두뇌를 끌어들일 수 있도록 연구 환경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전망이 많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은 “의료·교육·가전 등 한국이 앞선 산업을 중심으로 특화 전략을 세우고, 아시아권 시장을 중심으로 진출하는 식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환경을 갖추고,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곳곳에 깔려있는 빅데이터의 ‘금광’이다. 각종 빅데이터를 분석해 정형화된 패턴을 찾아내고, 이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AI의 시작이었다. 이은철 트레저데이터코리아 대표는 “연구소에 있던 AI 기술을 세상으로 부른 것이 바로 빅데이터란 점에서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특정 산업별 AI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 비해 엄격한 개인신용정보 보호규제를 푸는 등의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AI는 빅데이터·인터넷과 하나로 결합해 진화할 것”이라며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축적·활용하고, 의료·교육·금융 등에 AI를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1322호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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