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제도 개선 목소리 큰 ‘깜깜이’ 가석방] 소극적 운영에 고무줄 잣대 

가석방 기준 채워도 정치 풍향 따라 ‘희망고문’ 되기도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지난해 8월 14일 자정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기 의정부 교도소에서 나오고 있다.
‘희망고문’. 권력을 쥔 누군가가 타인에게 희망을 주고 그 실현 여부를 좌우하는 상황을 짚어내는 표현이다. ‘희망’이 ‘고문’이 될 수 있는 건 당하는 사람에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등의 전통적 인과율을 벗어나는 결과로 다가온다.

2014~2015년은 ‘희망고문’의 가해자가 되기 쉬운 재벌 총수 일가가 오히려 희망고문의 피해자로 기록된 시기였다. 그 시기엔 기업 운영과 관련된 범죄로 구속 수감된 경제인들이 유독 많았다. 이들은 가석방이나 특별 사면이 임박해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마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LIG넥스원의 구본상 부회장 등이 그들이다.

반재벌 정서 비등하자 재벌 오너 역차별


▎자료: 정의당 서기호 의원 홈페이지
희망고문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오른 건 2014년 9월 24일이었다. 이날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현 국무총리)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불이익을 줘선 안 되지 않겠느냐.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황 장관은 “특정 대기업 총수들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너무 큰 기대를 갖다가 실망이 크면 경제 살리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전형적인 희망고문의 문법이었다.

‘사회지도층 물의 사범 가석방 불허’가 연중사업이던 법무부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일 법했다. 약속이나 한 듯 다음날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황 장관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장단을 맞추면서 막연한 희망은 ‘이례적 조기 가석방'이라는 기대로 변했다. 주요 인사들이 이미 법정 가석방 기준인 ‘형기의 3분의1 이상’을 채운 뒤여서 더 그랬다.

기대에 재를 뿌린 건 그 해 성탄절 가석방을 앞두고 터진 ‘땅콩회항’ 사태(12월 5일)였다.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박창진 사무장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하려고 비행기를 돌렸다는 소식에 반재벌 정서가 비등했고 성탄절은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다시 ‘기업인 가석방론’의 불씨를 살렸고 그 뒤론 매달 가석방 때면 같은 이름이 회자됐다.

자유와 경영 복귀. 다 같은 희망이었지만 응답을 받은 건 SK그룹 최태원 회장 하나였다. 최 회장은 수백 억원 대 횡령혐의로 2013년 1월 31일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지 2년 6개월 만인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에 복권까지 됐다. 비슷한 시기 배임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14년 2월 11일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LIG넥스원 구 부회장은 가장 길고 깊은 ‘희망고문’에 빠진 기업인이 됐다.

LIG 건설의 부실을 숨긴 채 2000억원대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2012년 10월 31일 구속된 구 부회장은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3년 4개월째 충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형기의 83.3%를 채운 행형 성적 S1 등급의 초범 모범수다. LIG손해보험을 매각한 돈으로 피해도 전액 보상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가가 수감되면 하나만 풀어주는 게 가석방 관행”이라며 “SK 최재원 부회장은 형이 사면돼 가석방이 어렵게 됐고, 구 부회장은 최 부회장과 함께 언급돼 피해를 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가석방이 희망고문의 도구가 될 여지는 제도 자체에 내재돼 있다. 가석방의 요건은 형법에, 절차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에 뼈대가 있지만 결정권자에게 폭 넓은 재량권을 부여하고 추상적 기준을 제시한 게 전부다. 교도소장이 일정 요건을 갖춘 수형자 중 일정 요건을 갖춘 사람을 선별해 법무부에 가석방 적격심사를 신청하면 가석방 심사위원회를 거쳐 법무부장관이 가석방자 명단을 확정한다.

가석방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가석방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기준은 ‘행상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현저한지 여부’(형법 72조)다. 행상이 양호하고 개전의 정이 양호한지는 우선 교도소장이 ‘교정성적이 우수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해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지’를 봐 1차로 판단한다. 그런 뒤 가석방위원회는 ‘수형자의 나이, 범죄동기, 죄명, 형기, 교정성적, 건강상태, 가석방 후의 생계능력, 생활환경, 재범의 위험성, 그 밖에 필요한 사정’을 고려해 대상을 가린다. 가석방 심사대상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죄인 경우 등에선 사회적 분위기까지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무부 장관은 이 심사 결과가 적정한지를 본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는 “가석방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과는 다른 행정처분임에도 교도소장과 법무부장관의 재량권 행사에 여론과 정치적 득실에 따른 권력자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수형자의 권리냐 국가의 은전이냐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받았던 공정택 전 서울시 교육감은 2013년 3월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했고,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2013년 7월 가석방심사위까지 통과했지만 법무부장관이 거부해 만기를 채웠다. 두 사람은 법조계에서 재범 가능성이 작고 흉악범이 아닌데도 ‘분위기’ 때문에 가석방이 불허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설사 가석방 대상으로 언급되다가 빠져도 수형자가 하소연할 곳은 없다. 가석방은 성격이 ‘행정처분’이라고 돼 있지만 처분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신청할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수형자들은 교도소장이 가석방 심사 대상을 가리도록 한 법 조항이나 가석방 심사대상에서 제외한 조치에 대해 헌법 소원을 내 봤지만 다 각하됐다. 수형자에게 가석방을 신청할 주관적 권리가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법관들은 자신이 어떤 죄에 적정한 응보라고 정한 형기가 행정권력에 의해 달라지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다.

형식적 기준도 있지만 ‘깜깜이 처분’을 밝혀주진 못한다. 형기의 3분의1 이상이 지나야 한다는 것(형법 제72조)과 교도소 간부들이 매긴 분류처우등급이 S1~S2 등급에 해당하는 모범수여야 한다는 것(가석방 업무지침) 외에 다른 기준은 모두 비공개다. 지난해 11월 법무부가 실제 형기의 90%를 채워야 가석방 심사대상이 되던 걸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발표에서 ‘웬만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느낄 뿐이다. 실제 형집행률 80% 미만인데 가석방 되는 사람은 전체 가석방자 중 10%도 되지 않고 매년 감옥에서 풀려나는 사람 중 가석방자는 30% 남짓이다. 한양대 로스쿨 오영근 교수는 “가석방이 수형자의 권리냐 국가의 은전이냐는 주장이 분분하다”면서도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제도의 허점과 지나치게 소극적인 운영 탓에 범죄자의 재사회화라는 목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1323호 (2016.02.2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