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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어떤 직업 대체할까] 화가·음악가·작가도 불안에 떨 듯 

의사·법률가·경영자도 안심할 수 없어 ... “지금보다 더 평생학습 중요”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인공지능(AI)이 세계 최고수 프로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연달아 꺾으면서 AI가 그려갈 미래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이겼다. 구글 딥마인드가 선보인 AI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첫 날(3월 9일)에 이어 이틀 연속 승리를 거두자 나온 반응이다. 비록 바둑 몇 판이지만 ‘충격’이라 칭할 만큼 상징성은 컸다. AI가 그간 체스와 퀴즈 등의 종목에서 인간을 꺾을 때마다 “경우의 수가 비교도 안 될 만큼 복잡한 게임인 바둑에서는 인간의 적수가 못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을 꺾었을 때만 해도 “세계 최고수에 비할 실력은 아니다”란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AI의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AI가 어디까지 진화해서 인간의 영역을 어디까지 대체할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자리다. AI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직업도 상당수 대체할 거란 전망은 그간 반복해서 나온 바 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5년엔 로봇과 소프트웨어 등 AI가 전 세계 일자리의 25%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도 미국 내 직업 가운데 47%가량이 20년 안에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거나, 직업의 형태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번 대국을 계기로 이 같은 전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는 어떤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10~20년 안에 사라질 직업과 남을 직업을 가려낸 논문에서 702개 직업을 ‘손재주’ ‘설득력’ ‘교섭력’ 등 9개 성질로 나눠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AI가 대체할 직업 1순위는 주로 보조 역할을 하는 단순 사무직이다. 은행 창구 담당자, 보험 대리점 직원, 증권사 일반 사무직, 세무신고 대행자, 부동산 중개인 등이다. 다음으로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반복해서 하는 현장직이다. 공장기계 오퍼레이터나 스포츠 심판, 방범업체 직원 등이다.

“2025년엔 AI가 인간 일자리 4분의 1 대체”

인간이 보기엔 고도화된 업무를 하는 전문직도 위태롭다는 분석이다. 공인회계사, 증권가 애널리스트, 법률 관련 종사자 등이다. 연구진은 이들 업무에 빅데이터나 AI가 단기적으로 급속히 파고들 것으로 점쳤다. 이미 로보어드바이저 등 최신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 AI 전문가는 “회계나 금융, 법률 등은 인간에게는 숙련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어려운 분야이지만 딥러닝으로 빠른 계산과 지식 습득을 하는 AI에겐 익히기 수월한 분야”라고 조심스럽게 평했다. 지적으로 고도화된 직업일수록 경험에 의거해 반복된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말로 컴퓨터가 가장 자신 있어 할 만한 분야란 얘기다.

인간이 도달한 최고의 전문적 영역 중 하나로 꼽히는 의사도 점차 AI의 거센 도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분야로도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IBM이 개발한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은 미국 내 10여개 병원에서 암 수술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 안전사고 발생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한 기술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술의 정확도를 높이되 속도는 단축하는 데 기여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김석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실장은 “지금의 상황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인간의 모든 직업에 대규모 변화가 진행 중인 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있던 버스 안내원 같은 직업이 사라졌듯 특정 직업이 완전히 사라질 거란 얘기는 아닙니다. 그 직업 종사자 수가 AI의 대체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 거란 의미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등의 ‘의사 결정’도 아직까진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AI가 지금처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 이 또한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IT 리서치·컨설팅 업체인 가트너는 오는 201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로봇의 지시를 받아 일할 것으로 예상했다.

“커뮤니케이션 관련 직업은 대체 어려워”


통상 창의성이나 예술성, 직관과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감성이 중요한 직업은 AI가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평가된다. 화가나 음악가,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통념을 깨는 AI의 도전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화가 겸 개발자 헤럴드 코헨이 만든 화가 로봇 ‘아론(Aaron)’은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이 만든 ‘쿨리타(Kulitta)’는 작곡을 하는 AI다. 기계가 만든 음악치고는 꽤 정교하다는 평이다. 장기적으로 기자도 AI가 대체할지 모른다. 로이터와 AP 등 세계 주요 언론사들은 현재 로봇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일부 내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AI가 끝내 대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직업이 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사람이 사람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관련 직업일수록 AI가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환자의 재활훈련을 돕는 전문직이라든가 사회복지사, 카운슬러 등이 그렇다. 의외의 곳에서도 AI가 맡기 어려울 직업을 찾아볼 수 있다. 김문상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인간 관점에선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이는 업무도 AI가 하긴 어려운 업무일 수 있다”며 “손톱미용(네일아트) 등 사람의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분야에선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운동선수 등 인간의 순수 신체 능력을 가늠하는 분야의 직업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날이 오는 걸 무작정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 AI 기술의 발전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경제월간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지난해 6월호에서 ‘AI를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더 확장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원 실장은 “AI의 발전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전문성을 가져야만 살아남는 현상이 심화될 거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면서 “앞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평생학습’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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