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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헌의 ‘질문 레시피’ | 이기적인 이타주의의 힘] 착하기만 하면 착취당한다 

상대에 우호적이되... 배신하면 바로 응징해야 

권귀헌 질문연구소 SMART Q-Lab 소장

아끼는 후배가 얼마 전 사기를 당했다. 3000만원에 달하는 금전적인 피해도 속을 쓰리게 했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이 후배를 더 괴롭혔다. 더구나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직장을 그만두면서 심신은 그야말로 망가졌다. 돌이켜 보니 상대에 대한 믿음, 어려운 사정을 배려한 양보 등이 오히려 후배 자신을 한없이 만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요인이 됐다. 투자 과정에서 상대방의 요구안을 거의 모두 수용해 계약서를 작성했고, 사업 운영의 전권을 위임했으며, 계약이 중도에 파기되었을 때에도 위자료 지불을 적당히 합의했는데 이런 호의가 오히려 비수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 빠진 사람 많아

가족의 생계는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불우한 사람을 돕는 자원봉사자, 동료의 사정을 봐주느라 매번 자신의 휴가는 챙기지 못하는 직장인,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려는 회의 참석자들은 보통 ‘착하다’ ‘사람 좋다’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시간과 돈,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이른바 ‘착한 사람 증후군’의 증상이다.

이런 희생적인 성향은 주변의 부탁을 더욱 끌어들인다. 이들은 타인의 곤란함을 해결해주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부탁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착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상대가 자신을 좋게 평가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아니 자신을 나쁘게 평가할까 걱정돼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처럼 ‘착한’ 사람만 있지 않다. 경찰청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사기사건은 해마다 증가해 2014년에는 24만 건을 기록했다. 최고점을 찍은 2013년의 27만 건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하루 평균 740건의 사기행각이 일어나는 셈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세상에서 착한 사람은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들의 주변에서는 범죄라고 하기 어려운 교묘한 착취가 공공연히 일어난다. 간단한 물건을 사러 나가는 길에 동료들의 부탁을 몇 번 들어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모두 언제 나가는지 물어보며 당연한 듯 심부름을 시킨다. 여기저기에서 도와달라는 일을 해주다 보니 정작 자신이 해야 할 본연의 일은 제 때 마무리 짓지 못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면서 돌아오는 것은 야근과 주말 출근뿐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태도는 조직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타적이기만 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역량도 제대로 발휘 못하고 남 좋은 일만 하기 쉽다. 와튼스쿨의 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가 말한 것처럼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기버(Giver)는 패배자가 될 확률이 높다. 남을 위해 많은 것을 베풀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길 줄 아는 ‘이기적인 기버(Giver)’가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언제 베풀고 언제 내 것을 챙겨야 하는 걸까. 이럴 땐 이렇게, 그럴 땐 그렇게 하는 식으로 두부 자르듯 정확히 가를 수는 없지만 나는 우연히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에서 인간관계의 기준이 될 만한 원칙을 찾을 수 있었다. 죄수의 딜레마은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진행된다. 우선 이 게임에는 두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데, 이들은 협력과 배신이라는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다. 둘의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는 모두 네 가지다. 서로 협력하면 5점, 한 선수만 협력하고 다른 한 선수가 배신을 선택하면 그에게는 3점, 협력을 선택한 선수에게는 0점을 부여한다. 두 선수 모두 배신하면 1점을 받는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상대 선수의 선택과 무관하게 배신을 선택할 때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선수 A는 B가 협력을 할 때 배신을 하면 3점이고 협력을 하면 0점을 받는다. B가 배신을 할 때는 배신을 해야 1점이라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선수 B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 선수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 즉 배신을 선택할 경우 상호 협력했을 때 받을 수 있는 3점보다 낮은 1점을 받게 된다. 딜레마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딜레마는 존재한다. 신상품 기획안을 두고 팀원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획안을 구상할 수도 있고(협력),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내놓을 수도 있다(배신). 힘들이지 않고 기획안을 낼 수 있는 배신이 더 큰 이익이며 공들인 기획안을 뺏기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된다. 협력하지 않고 모든 팀원이 하이에나처럼 다른 사람들의 기획안을 노린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조직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현실 속 죄수의 딜레마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할까. 착하기만 해서는 착취만 당할 게 뻔한 상황에서 이기적인 이타주의는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야 할까. 앞서 살펴본 죄수의 딜레마가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몇 번 만나고 말 사이가 아니라면 우린 수없이 많은 선택을 반복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놓인 직장인과 같다. 그러므로 이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해보면 좋은 교훈을 얻게 되지 않을까.

게임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액설로드 미시건대 교수는 전세계 학자를 대상으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대회를 열었다. 한 번의 시합에서 200번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참가자들은 협력과 배신을 선택하는 공식이 담긴 프로그램을 제출하는 형태로 대회에 참가했다. 예를 들어 ‘요스’라는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협력을 선택하되 10회 중 한 번은 배신을 선택한다. 또 상대방의 배신에는 다음 선택 때 배신으로 되갚아 주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트랜퀼라이저’라는 프로그램은 연속 두 번 배신하지는 않고, 배신이 전체 게임의 4분의 1 이상이 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성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프로그램이 참여한 두 차례의 실제 대회와 1000번의 모의대회를 통해 로버트 액설로드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팃포탯(첫 번째 선택에서 협력한 뒤, 두 번째 선택부터는 상대방의 바로 전 선택을 모방)’이라 불리는 단순한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팃포탯’이 가진 특성을 최대한 많이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 높은 성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몇 가지 사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응징 후 다시 협력할 여지 남겨야

첫째, 상대방을 우호적으로 대해라. 상대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먼저 배신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둘째, 상대방이 배신한다면 바로 응징해야 한다. 상대방의 배신이 지속될 가능성은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한다. 셋째, 응징 후에는 바로 용서하라. 장기적으로 볼 때 협력할 기회는 다시 오게 마련이므로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넷째, 상대방이 나의 태도를 예측할 수 있도록 분명한 입장을 취하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줘야 상대방도 나를 대할 때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착하기만 하면 누군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착한 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방패와 칼이다. 배신하면 바로 응징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다시 협력할 날을 위해 용서해주는 것, 또 자신의 이러한 원칙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심성을 빛내줄 방패와 칼이 될 것이다.

권귀헌 - 어떤 질문을 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연구하는 조용한 혁명가로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 [질문하는 힘], [삶에 행복을 주는 시기적절한 질문] 등이 있다.

1329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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