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정치의 저격수 기업의 저격수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총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도 역시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전이 과열되고 막말도 난무하는 등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중에는 선거 전 한 야당후보 캠프가 대통령에 대한 ‘저격수’가 되겠다는 포스터를 SNS에 올렸다가 심한 역풍을 맞은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 이전에도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에서는 ‘저격수’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실제로 여야를 막론하고 ‘~저격수’라 불리는 국회의원도 여럿 나타났다.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이들 의원은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일당백의 전력이다.

본디 군대에서 저격수란 자신은 먼 곳에 은밀하게 숨어서 뛰어난 사격실력으로 한두 발을 발사해 적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를 뜻한다. 그래서 사격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저격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스나이퍼(sniper)’는 ‘스나이프’ 즉 도요새를 쏘아 잡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매우 재빠른 이 새를 잡아내는 사람은 사격실력이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 서양에서는 총이 본격적으로 전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18세기부터 저격을 주요 임무로 하는 이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뛰어난 저격수를 보유한 군대의 지휘관은 이들의 활약으로 전장의 판세를 뒤집기도 한다. 저격수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효과적인 전투의 수단이다. 베트남전에서 보통의 미군 병사가 한 명의 적군을 사살하기 위해 평균 5만 발을 사격했지만 저격수는 1.3발 당 한 명을 쓰러뜨렸다는 통계도 있다.

전쟁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저격수는 누구일까?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에서 활약한 소련의 저격수가 유명하기는 하다. 이들 중에는 영화 [에너미 앳더 게이트]에 나오는 바실리 자이체프나 여성 저격수로 309명의 적군을 잡은 류디밀라 파브리첸코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마도 핀란드의 시모 해이해일 것이다. 그는 소련이 조국을 침공한 ‘겨울전쟁(1939~1940)’에서 단 100일이 안 되는 기간 동안 505명의 적군을 저격으로 잡아냈다. 그에 대한 소련군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눈 속에서 하얀 위장복을 입고 쏘아대는 그를 발견할 수도 없었던 그에게 ‘하얀 죽음(White Death)’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총에는 망원경이 달려있지 않아 그는 모든 저격을 맨눈으로 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 후에도 살아남아 96세까지 천수를 다했다. 그에게 훌륭한 저격수가 되는 방법을 묻자 ‘끊임없는 훈련’이라고 대답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훌륭한 저격수가 필요하다. 가령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임직원 중 아무도 이를 풀지 못할 때, 한 명의 ‘저격수’급 인재가 나타나 이를 쉽게 푸는 경우를 필자는 상당수 보았다. 물론 이들은 사내 임직원 중 한 명으로서 위급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21세기는 한 사람의 인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설파했듯이, 갈수록 이들의 보유 여부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경영환경이 변했다. 요즘 기업마다 장기 불황 속에 교육훈련 예산도 갈수록 더 줄이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저격수’급 인재들이야 말로 시모 해이해 말대로 타고나기보다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육성되는 것이 맞다면 우리 기업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경영이념인 ‘인재제일(人才第一)’은 시대가 지나도 더욱 맞는 말 같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1332호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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