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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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과 마케팅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미래할인 효과와는 반대되는 실험을 해보자. ‘좋아하는 영화배우와의 키스’와 ‘불쾌한 전기쇼크’에 대해 사람들은 시간에 따른 가치를 어떻게 바라볼까? 키스와 전기쇼크를 각각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실험참가자들은 영화배우와의 키스는 지금 당장보다는 3일 정도 후로 연기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이와 달리 전기쇼크는 먼 장래 시점으로 연기하고 싶어 한다. 키스와 전기쇼크는 각각 이득과 손실을 의미하는데, 당장이 아니라 미래로 옮기길 원해 미래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분 좋은 일은 지금 당장보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이와 달리 공포감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현재가치보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미래가치를 더 크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 그건 미래의 기대감 혹은 조바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신제품을 지금 당장 구입하기보다는 미래로 연기하게 되는데, 미래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감소된다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굳이 지금 당장 선택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좋은 성능과 새로운 기능이 있는 자동차나 스마트폰이 나올 텐데 좀 더 기다렸다 사자. 지금 사면 어차피 구형이 될 거잖아’라는 심리가 소비자에게 작용한다.긴축안에 반대한 그리스 표심, 결과는…지금 당장 구매하면 나중에 출시되는 제품을 사지 않는 후회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신형 아이폰을 전시하는 쇼케이스는 구매 욕구를 부추긴다. 많은 소비자가 기대감 자체에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수요는 오히려 급격히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보면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의 예고편은 본편이나 본방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작전이다. 기업들은 미래가치 극대화 방안으로 한정판을 출시하기도 한다. '안 사면 안 보면 손실'이란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친구인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파버카스텔 연필의 뛰어난 품질을 극찬했다. 고흐 외에 괴테, 헤르만 헤세, 귄터 그라스 같은 수많은 예술가가 이 연필을 사랑했다. 1761년 탄생한 파버카스텔은 독일의 대표적 기업으로 8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동그란 연필이 굴러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6각 연필을 고안한 그들의 한정판 이야기를 들어 보자.“파버카스텔은 성인 소비자들을 겨냥해 수집 가치가 있는 고급 제품을 한정판으로 만들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도 합니다. 창립 240주년을 기념해 240년 된 올리브나무로 만든 만년필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매년 한 종류의 제품만 수작업으로 만들어 그 해에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번 소비자가 영원한 소비자이기를 원합니다. 처음 색연필을 쥐고 색칠공부를 시작하는 어린이가 명품 필기도구를 원하는 까다로운 성인 소비자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전략입니다.”앱솔루트 보드카도 유명한 예술가와 함께 협업해서 한정판을 출시한다. 워낙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여긴다. 이런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미래 어느 시점에 손에 꼭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우리는 채무위기를 겪은 그리스를 보며 국가가 어떻게 어려워지고 국민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지를 인식했다. 나라나 기업이나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199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먼델 교수는 화폐를 통합해 얻는 이득이 화폐주권을 포기해서 발생하는 비용보다 큰 경우 해당 지역의 국가들이 단일 화폐를 사용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려면 금융시장이 잘 통합돼 있고 경제정책 협조가 원활하며 국가 간에 노동이나 자본 같은 생산요소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그러나 하나의 화폐를 쓰는 현실의 유로존 모습은 그리스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유로존 통합 초기의 부동산 가치 상승은 폭락으로 이어졌고 넘쳐나는 국가 빚에 국민들은 서럽다. 아테네의 가난한 아빠는 아이를 입양 보내야 했고 어린 소녀는 햄버거를 먹기 위해 매춘에 손을 대었다. 재정위기에 따라 정부가 긴축안을 내놓자 사람들은 크게 반발했다. 긴축안에는 연금과 최저임금 삭감, 공공 부문 감원이 포함돼 있어 그리스 사람들은 손실을 바로 체감하게 된다.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최악의 경우 손실 가능성이 월등히 크지만 ‘당장에 확보하고 있는 것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손실 회피 성향이 반발로 나타나 표심으로 이어졌다. 관광객이 늘어난 그리스는 국가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몰라도 청년은 여전히 어렵다. 이게 이익에 도취되고 손실회피를 늦춘 결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슬픈 마음이 든다. 한 그리스 젊은이의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그리스는 관광객이 넘치는 아름다운 나라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잖아요. 희망이 사라졌는데 나를 지탱할 사다리도 없는데 어떻게 조국을 사랑하라는 겁니까? 돈이 없어요. 일자리가 없는데요. 그리스에서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돕기 위해 대학을 그만뒀습니다. 제 친구들은 학사를 7~8년 다니고 졸업했는데 할 일이 없어요. 노르웨이로 갈 겁니다. 내 남동생은 프랑스에, 친구는 독일과 영국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국이 좋아지면 돌아올 겁니다.”‘경험의 자아’로 세상사 분석해 손실 줄여야그리스는 비대한 정부 운영에 허점이 많은데도 정부 규모를 줄이지 않았다. 지금보다 공공영역이 작아지면 상당수의 공무원이 줄어들기에 그들의 표심을 생각한 것이다. 정치인의 손실회피 성향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구조조정 논의가 한창이다. 구조조정은 더 나은 산업경쟁력을 위한 성장통일 수밖에 없다. 실업이 발생할 소지가 많은 가운데 대주주가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한 것은 지탄을 받아야 한다. 조선·해운업의 경우 손실회피 성향으로 구조조정을 미루다 더 큰 손실을 불러왔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업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장원리를 원칙으로 하되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에는 LTE급으로 신속하게 처리해 대외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들어 구조조정의 결과가 LTE(long-Term Evolution, 장기 발전) 효과를 얻게 해야 한다.휴가철에 운전을 하는 데 차가 막힌다. 내가 서 있는 차로에서는 차가 움직이지 않는데 옆 차로는 그래도 잘 빠지는 것 같다. 막상 차로를 바꾸면 원래 달리던 차로가 더 잘 빠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막히는 도로에서 차로를 수시로 바꾸면서 운전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추월한 차량은 시야에서 금방 사라지지만 나를 추월해 앞서 간 차량은 시야에 오래 남는다. 그런 손해는 괜찮다. 그러니 잊어버리고 남을 위해 양보도 해보자. 중요한 것은 내 손해를 피하자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나쁜 행위이고, 표 떨어진다고 나라 망치는 정치인의 셈법이다.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조정은 없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설득으로 합의에 이르는 게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10만 달러의 지출을 당장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기업의 직원이 냈다고 하자. 사장에게 직원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매년 10만 달러의 손실을 볼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면 매년 10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득하는 것이 인간의 손실회피 성향을 고려할 때 공감이 더 가지 않을까.월급통장이 지출로 텅텅 비어 나가고 있다면 손실회피 성향을 이용하는 마케팅에 속지 말자. 그게 카너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설득의 기술이자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다. 그는 두 개의 자아를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기억의 자아’만이 아니라 내가 겪은 ‘경험의 자아’를 통해 세상사를 다각도로 분석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인생의 지혜 아닐까?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년 3월~): 이스라엘 국적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를 해서 1979년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발표했다. 고정관념에 기초한 인간의 사고와 편향성에 대해 연구를 한 후 인간이 모두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나,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기대효용 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전통 경제학이 주장하는 인간의 합리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를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서막을 열었다. 인간에게는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라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며 이를 통해 행복경제학을 연구한 것도 공적이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