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 모델이자 인권 운동가가인 와리스 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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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는 한때 아프리카의 모범국가였으나 지금은 무법천지다. 우리나라의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했다. 60년이 넘는 가뭄으로 먹을 게 없는 나라에서 할 건 ‘해적질’ 밖에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유럽으로 난민 행렬이 이어지는데, 아프리카 난민이 모인 케냐의 세계 최대 규모 난민 캠프가 폐쇄된다. 내전과 굶주림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수십 만 명의 소말리아·남수단 난민이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 모델이자 인권 운동가인 와리스 디리(Waris Dirie)는 엄마에게 쓰는 화해의 편지에서 말한다. “엄마는 지금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사랑하고 나는 미래의 아프리카를 믿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미래를 만드는 강하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사는 아프리카를 나는 꿈꿉니다.”소말리아 사막에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살던 부족의 다른 여자아이처럼 음핵을 제거하는 여성 할례를 당했다. 그녀가 14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그녀를 낙타 다섯 마리와 바꾸는 조건으로 60대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소말리아 외교관이었던 이모부의 도움으로 미친 듯이 도망친 그녀는 영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패션 잡지의 표지모델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세계적 화장품 회사 레블론, 로레알과 계약하며 승승장구 했다.
절대빈곤층 수는 절대 감소했지만…2000년에 선언돼 15년 간 세계의 절대빈곤과 기아퇴치에 기여한 새천년개발 목표(MDG: Millenuim Development Goals)가 2015년 끝났다. 지금 와리스 디리는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녀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을 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현재 인류는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포함한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기근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저 경제적인 원조를 하는 것으로 족할까요? 경제 발전을 도우면 자연스럽게 기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기근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정치·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 문화를 폐기해야 합니다. 저를 닮은 사막의 어린 소녀가 아직도 울고 있습니다. 세계 2억 명의 소녀가 할례를 받는 그 소름 끼침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엔이 2016년부터 실시하기로 채택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니셔티브를 적극 지지합니다.”인도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덕분이기는 하지만 극도의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1990년에 19억 명에서 2015년에 약 8억3600만 명으로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며 주거·음식·의복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절대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절대빈곤층 수를 반 이상 감소시킨 것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와리스 디리의 활약으로 세계가 여성 할례의 끔찍함을 알게 되고 유니세프 등은 여성 할례 근절을 위해 노력 중이다. 유엔 역시 2012년 여성 할례를 금지하기로 결의하고 2030년까지 이 관습을 근절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 빈곤과 기아를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 MDG의 목표였다면, 2016년에서 2030년까지 실시될 SDG는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표방하면서 빈곤과 기아를 완전히 없애자는 야심을 내걸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환경 분야의 균형적 발전까지도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사회 인프라 투자로 가난을 퇴치하고 성장을 도모한다. 사회적 포용 면에서는 성 평등을 지향하고 소수 민족에 대한 불평등을 없애고 사회 불균형을 줄이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환경의 지속성을 위해서 석탄·천연가스·석유 같은 화석 연료에서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지 않는 깨끗한 연료로 옮겨가자는 생각을 담고 있다. 유엔이 인류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총 17개의 목표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지켜보자.개발과 관련해 경제학계의 ‘선한 사마리아인’ 아마르티아 센의 철학을 살펴보자. 센은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다. ‘센지수’라고 불리는 지표를 통해 빈곤을 측정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그는 굶주림과 빈곤은 생산 부족보다 잘못된 분배 탓이라고 주장한 경제학자다. 기근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개인은 수동적으로 성장의 혜택을 받기만 하는 수혜자가 아니다. 그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서 진정한 발전이란 자유의 증진을 말한다. 발전을 논할 때 소득이나 부의 증대가 아닌 자유의 증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자유야말로 곧 역량(capacity)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한 인간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을 때 그 사회가 그걸 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면 좀 더 자유로운 국가로 본 것이다. 사업이 성공해서 이윤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는 발전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당연히 시장의 자율성과 민주주의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센이 개발 문제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방글라데시의 기근 문제 목도하고 빈곤 문제 연구센은 1943년 수백 만 명을 아사시킨 방글라데시(당시 인도의 한 지역)의 기근 문제를 직접 목격했다. 빈곤 문제를 연구한 결과 기아의 원인이 곡물농사의 흉작 때문이 아니라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임을 발견했다. 당시 기아로 사망한 사람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최빈층이 아니라 도시 임금 노동자였다. 곡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서 곡물가격이 급상승했는데,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자 식량을 구매할 능력이 없어 대다수가 사망한 것이다. 상인과 부유층의 곡물 사재기와 인도의 다른 지역 정부가 곡물가격 인상을 우려해 곡물 수출을 금지한 결과가 주요한 원인이었다. 센은 정부나 개발 관련 종사자가 빈곤층이라고 일괄적으로 모두를 같은 집단으로 보고 정책을 실시하는 게 잘못을 초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빈곤층 사이에도 영향이 각기 다르다는 걸 명심하고 기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하긴 한 나라의 소득이 높아도 일부 국민은 기대수명이 낮고 기근에 시달릴 수 있다. 어떤 나라의 소득이 다른 나라보다 낮더라도 기대수명이 높고 상대적으로 기근에 덜 시달릴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기근에 대해 논할 때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현미경을 통해 정밀진단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는 처참한 기근이 식량 공급 부족 탓일 수도 있으나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야기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시장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경제학자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빈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고, 분배를 바로 잡으려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믿게 된다. 경제라고 하면 윤리나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서 ‘시장의 효율과 가슴 따뜻한 동양의 향기’가 물씬 난다.센에 따르면 자유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사회의 각 부분에 충분한 자유를 보장해야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하고 애덤 스미스를 사랑한다. 다만 시장 메커니즘 자체만으로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각 참여자가 평등하고 그들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그의 신념을 새겨보자. “소득이나 부를 키울 수 있는 데까지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짚었듯이 이런 것은 ‘단지 쓸모이고 연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경제 성장을 경제학의 지고지순한 목적으로 다룰 수 없다고 봅니다. 경제 발전이란 우리 삶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키우는 것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자유란 우리 삶을 더욱 넉넉하고 너그럽게 만들어 장애를 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품은 뜻을 이루게 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힘 있는 자유’SDG의 등장과 함께 개발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원조에 대한 논쟁은 크게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빈곤의 종말]을 저술한 제프리 삭스처럼 대규모 원조(Big Push)를 지지하는 것이다. 삭스는 경제학이 후진국의 빈곤과 질병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보좌관으로도 활동하며 후진국의 빈곤 퇴치에 노력하고 있다. 1950년대 지독히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을 빈곤의 덫에서 구하려면 서구의 대규모 원조가 필요하다는 ‘빅 푸시(Big Push)의 신화’가 생겨났다. 우리나라 역시 전후 원조를 통해 성장한 나라다. MDG도 마찬가지 철학에 입각했다. 삭스는 부유한 나라들이 2005년부터 향후 20년 동안 빈국에 195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면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다른 시각은 [세계의 절반 구하기]를 저술한 윌리엄 이스털리가 대변하는 해외 원조에 대한 비판적 이론이다. 그는 원조를 통해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기를 든다. 그는 원조를 받는 국가는 부패하고 자치 기반이 약화되기에 빈곤 문제는 해당 국가가 자유시장 시스템을 도입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개발협력 정책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너들이 내민 유토피아적인 청사진을 폐기하고 원조를 조건으로 내세워 원조를 받는 국가를 훈계하려 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원조가 빈곤을 종말시킬 것이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개인들의 역동성과 기업가 정신에 토대를 둔 개발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해 인도적 지원의 수요자들이 공급자(구호단체)나 공급 상품(활동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접근법을 중시한다. 공급자 중심의 구호활동보다는 수요자에게 바우처를 제공하고 액수에 맞게 수요자들이 구호기관과 활동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방식도 제시하고 있다.센은 이 두 시각 중 어느 쪽에 있을까? 그는 원조의 양도 중시하고 원조를 받는 국가의 자유도 중시할 것 같다. 물론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겠지만. 그에게 자유는 단순히 구속받지 않는 것과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는 경제 발전의 목적은 자유로워지는데 있으며 사람이 다양한 삶을 살아갈 힘을 갖출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여긴다.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실생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빈곤과 삶의 질을 재는 빈곤지수를 개발했다. 센은 기존 빈곤율만으로는 빈곤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얼마나 가난한지도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이를 풀려고 빈곤 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인들 사이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포함해서 ‘센 빈곤지수(Sen Index)’를 고안했다. 수학 지식과 통계 방법을 동원해 주류 경제학에서 외면해온 빈곤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센은 빈곤계층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려 했다. 유엔에서 1990년부터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emnt Index)도 센의 견해를 반영해 고안한 개념이다. 이 지수는 국민소득에다 조기 사망율, 기대수명, 문맹, 의료혜택, 교육 등에 가중치를 붙여 작성했다. 흔히 진보주의 경제학자가 분배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치우친 면이 있는데 그는 정부보다 시장경제가 우월하다고 보면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이다. 다시 와리스 디리를 생각하며 센의 철학을 들어보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체가 보상입니다. 가족의 의사결정에서 여성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한 동인이 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 운동의 놀라운 성공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지역 금융시장에서 차별을 받아 겪는 불이익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인도가 중국 추격에 집착하는 건 멍청한 짓”그는 노벨경제학상 상금 760만 크로네를 모두 소녀들을 가르치는 인도 재단과 남녀평등에 땀 흘리는 방글라데시 재단에 내놓았다. 센을 경제학자들이 날카로운 지적 능력과 부드러운 인간미를 두루 갖춘 경제학계의 양심이자 경제학계 테레사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중국과 관련 중국 정부가 강압적인 정책을 폐기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합리적 사고와 성평등 요구의 확대로 남아 선호를 극복한 한국의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남아 100명 당 여아 수는 85명으로 세계 평균인 95명에 크게 못 미치며, 여아 낙태도 암암리에 행해지는 것을 비난했다. 센은 정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자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의의 개념을 하나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완전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단, 현실에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막자”고 주장했다. 경제학에 자본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인간 중심의 경제성장만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다.센은 인도 관료들의 경제성장률 집착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그늘에 가려진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를 같이 보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인도가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따라잡는 데 집착하는 것은 매우 멍청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두 나라의 경제를 비교하는 것은 인도를 위험할 정도로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면서 인도의 지도자들이 경제성장률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도 국민의 만성적인 영양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은 정책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더 높은 경제성장률은 사회 정의, 빈곤의 개선, 보건과 교육에 대한 예산 투입을 비롯해 사회적인 맥락에서 볼 때에만 긍정적이라고 환기시켰다.그의 철학을 되새기며 개발협력의 진정한 철학을 생각해 보자. 문득 그가 고(故) 이태석 신부님을 닮았다고 생각된다.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살고 계시는 여러분,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은 잊히는 것이 아니다’는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을 끝까지 기억해 주십시오, 그분이 만든 노래를 브라스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에 많은 한국인이 울어 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울지마 톤즈’라고 보듬어 주시는 그분의 환한 미소가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년 11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학자다. 빈곤을 측정하는 수리 모형을 개발했다. 개인의 자유가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며,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로,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로 통한다. ‘아마르티아’는 ‘불멸’이란 뜻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시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타고르가 세운 학교에 다니면서 인권존중 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1970년대 초반부터 후생경제학, 경제윤리, 소득분배론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수리 모형인 빈곤지수(센 지수)로 빈곤을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