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실패의 영역?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장수 기업이 많으면 그만큼 경제가 튼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만으로 경제가 돌아가진 않는다. 신생 기업이 계속 생겨나야 경제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 망할 기업은 망하게 내버려 두고, 새롭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등장하도록 해야 한다.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이뤄져야 한다.

창조적 파괴를 가능하게 하려면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시장의 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하루에도 문을 닫는 중소기업의 수는 엄청 많다. 그러나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주주·채권자들로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가 많다 보면 기업 구조조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된다. 대기업 하나가 문을 닫으면 줄줄이 얽혀 있는 협력업체도 도산하게 되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무너지고 대마불사론이 득세하게 된다. 그 결과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되고, 구조조정에 성공할 확률도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무적·사업적으로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선제적 조치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행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으로는 선제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기 어렵다. 채권은행 입장에서 부실 징후가 있는 기의 자금을 회수하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대손비용이 증가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이다. 기업을 사고 파는 사모펀드(PEF) 시장을 통해 자율적 구조조정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은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를 자신의 선제적 구조조정의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재무적 투자자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기업 인수합병(M&A)도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 사업 재편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고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모펀드 입장에서도 어려운 점이 있다. 민간 투자자를 모집해야 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데 기업 구조조정은 고위험 투자에 해당한다. 고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를 모으기 어렵다. 사모펀드의 성공 사례가 축적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 신뢰가 쌓여 있지 않다. 소규모 구조조정 투자의 경우 사모펀드가 전문성을 발휘해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국내 토종 사모펀드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주도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게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국내 사모펀드의 기업 구조조정 참여는 시장실패 영역 또는 유치산업 단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도 채권은행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기업 구조조정의 틀을 전환하고, 시장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 일환으로 연합자산관리(유암코)의 기능을 확대해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 전문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일단 경영권 인수 사모펀드 시장을 조성해 보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장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 참여자의 보상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이냐의 문제다. 자칫 시장의 작동 원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작금의 산업은행처럼 민간 주도 구조조정 전문회사의 부실화만 초래할 수 있다. 구조조정 전문회사는 천사가 아니라 악마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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