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무조건 일단 해보고? 

 

문형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최근 구의역 사건 등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한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우리를 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건 비극적 사고에 대한 대처가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일단 시행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고치면 된다’는 의식이 아직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 중의 하나가 일단 밀어붙이자는 정신이었다. 합리적 의심조차 뒷다리 잡는 행위로 매도되고 부작용은 일을 하다 보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예기치 않은 혹은 예견된 문제라도 발생하면 땜질식으로 처리하고 적당히 넘어갔다. 자원도 없고 규칙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는 어쩌면 불가피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에 K팝 등으로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에 다가섰다.

구의역의 비극은 ‘2인 1조 작업 규정은 일이 많으니 급한 대로 혼자서 하다 문제가 생기면 원칙대로 하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작년에 통과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은 어떤까. 많은 국회의원이 이 법은 문제가 많아서 곧 고쳐야 한다고 한탄했지만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일단 통과시켰다. 올 9월 시행을 앞두고 똑같은 얘기가 나온다. 일단 시행하고 지켜보면서 문제를 고쳐 나가자는….

문제가 바로 눈에 보이는데도 나중에 실제로 발생하면 고치자는 인식은 너무 위험하다. 새로운 법이나 제도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철저한 시행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그대로 둔 채 일단 시행하다가 부작용이 발생한 후 내용을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심리학자 맥과이어가 제안한 예방접종이론(theory of inoculation)을 보자. 변화의 영향을 받을 사람들은 변화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꼼꼼히 따지고, 평가하고, 반박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뒷다리 잡기(저항)로 치부하면 변화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면역력을 키워주게 된다. 약한 병원체를 접종해 살짝 가볍게 병에 걸리게 하면 나중에 질병에 대한 면역이 생기는 것처럼, 어설프거나 약한 설득을 통한 변화의 시도는 면역력을 키워 새로운 변화 시도에 대한 저항력을 더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리라 믿었던 사람들이 겪게 될 제도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고통도 감안해야 한다.

변화가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일관성 있게 실천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특정 지도자의 의지나 집단무의식에 따라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않으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법이나 제도의 시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 보완하라고 요구하는 전문가의 용기와 그걸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트러블메이커가 필요하다. 어떤 제안이든 반대하는 사람(악마의 옹호자, devil's advocate)이 있어야 좀 더 완벽한 안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셋째,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왕 시작된 것이니 잘못은 시행하는 과정에서 걸러내자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자세가 중요하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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