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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세 인상 재연기’가 남긴 불씨] 아베의 독주에서 헤이세이 버블이… 

경제상황 비교적 괜찮은데 거듭 연기..버블 키우다 역풍 맞을 우려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6월 1일 약속했던 소비세 인상을 재연기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이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까지 이른바 ‘헤이세이 버블’ 전야와 닮아있다고 하면 놀랄 것인가? 아마도 저성장에 힘겨워 하는 일본 경제가 그런 고성장 시대로 돌아갈 리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실 버블이 꼭 경제가 잘 굴러갈 때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가 어렵고 불안한 시기에도 일어난다. 실제로 헤이세이 버블 전인 1980년대 초중반, 일본 경제는 석유파동 이후 장기 침체에 빠졌으며, 버블 발생 직전에는 엔고 불황까지 겹쳤었다. ‘리먼 쇼크 수준의 위기가 아닌 한 2017년 4월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겠다’고 공언했던 아베 총리는 6월 1일 “현 시점에서 리먼급의 쇼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약속과는 다른 새로운 판단”이라며 소비세 인상 재연기 의사를 표명했다. 현 일본 경제가 헤이세이 버블 전야와 어떻게 닮아 있는지, 그리고 아베의 판단으로 야기될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시계 바늘을 3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85년 9월 뉴욕에서 열린 G5(주요 5개국) 경제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발표된 플라자 합의의 내용은 달러 강세의 수정이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981년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은 금융 긴축과 재정 완화(대형 감세)로 사태를 수습시켰다. 하지만 대형 감세의 부작용으로 재정이 악화됐다. 적자 국채 확대는 고금리와 달러화 상승을 초래했으며, 경기 회복으로 수입이 늘면서 무역적자도 확대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금융 완화로 방향을 전환함과 동시에 플라자 합의에서 달러화 약세를 유도했다.

버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달러화 불안정


당시 플라자 합의로 달러-엔 시세는 달러당 240엔 정도에서 1986년 말 150엔대로 단숨에 엔화 가치 상승이 진행됐다. 일본은 수출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 엔고 불황에 직면했다. 한편 급격한 달러화 하락은 미국 경제에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상승이었다. 1987년 초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이 이상의 달러화 약세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 해 2월 파리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달러화 안정’을 내세운 루브르 합의가 채택됐다. 동시에 국제 협조라는 명목 하에 일본이나 독일 등 경상수지 흑자국에 내수 확대책에 따른 대외 흑자 축소를 요구했다.

여기까지 훑어보면 현 일본의 경제상황과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리먼 쇼크가 이에 해당하는데 우선 두 시대 모두 미국 경제의 불안이 원인이었다. 자금이 크게 남아도는 가운데, 큰 폭의 통화변동을 일으킨 달러의 불안정은 오늘날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와 닮아있다. 문제는 루브르 합의 이후의 일본 정세다. 내수 확대 수요에 부응해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은 1987년 7월 6조엔이 넘는 긴급 경제 대책을 발표했다. 일본이 부동산 가격이나 주가 상승을 중심으로 버블기에 돌입하는 사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일본 은행의 저금리 정책이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정책금리는 장기 경제 침체 속에서 꾸준히 하락했다. 1986년 11월에는 전후 최저 수준인 3%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후, 루브르 합의 다음 날에는 2.5%로 떨어졌다.

이미 일본은 세수 증가 부진과 세출 확대의 틈새에서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었다. 금융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서 당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 2.5%의 초저금리가 버블이 한창인 이후 2년 3개월 동안 유지됐다. 민간은행은 이윤 축소에 대항해 부동산 대출 경쟁에 매진했다. 이 역시 지금과 공통점이 많다. 우선 제2차 아베 정권의 발족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2013년 4월 이후 일본은행의 금융완화를 지적할 수 있다. 현재 정책금리는 제로다. 또한 양적완화책으로 본원통화(Monetary base)를 연간 80조엔 늘리는 식으로 국채 등을 계속해서 매입했다. 완화 위력이 당시보다 강력하다. 또한 올 2월에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해 단기부터 장기까지 금리가 하나같이 마이너스로 돌입했다. 현재 일본 내 대출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선택까지 루브르 합의 전후와 닮은 꼴


지난 5월 열린 G7 회의는 과거 루브르 합의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루브르 합의 당시 경상수지 흑자국에 내수 확대를 요청한 인물은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아베 총리가 그 역할을 맡았다. 두 시기 모두 독일(루브르 합의 당시에는 서독)의 대응이 동일하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양대전 간기(1차 세계대전 종결 후 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시기)에 미증유의 하이퍼인 플레이션(마르크화 폭락)을 겪은 독일은 재정규율에 엄격해, 루브르 합의 후에도 자국의 경기상황과 맞지 않는 저금리 정책이나 재정출동(경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정책의 하나)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루브르 합의 후 버블과 붕괴를 겪은 일본, 그리고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영국·북유럽과 달리, 독일은 유일하게 버블에서 비껴나 있었다.

이번 G7 회의에서도 일부 경제지표의 리먼 쇼크 전후와의 유사성을 주장한 아베 총리에게 가장 먼저 ‘세계 경제는 안정적’이라고 찬물을 끼얹은 것이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일본과 독일의 대응 역시 큰 차이다. 소비세 인상 연기를 결정한 아베 총리는 최대 10조엔 규모의 긴급 재정출동과 더불어 “아베노믹스를 최대한 발동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메르켈 총리는 재정출동 등 국제 협조에는 한결같이 냉담한 자세다. 루브르 합의 시대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양자의 행동이 향후 어떤 차이를 낳을지 흥미롭다.

아베 총리는 ‘최대로 발동시키겠다’고 했으나 일본에서는 이미 버블 발생 조짐이 보인다. 고용은 비정규직 문제 등 질적인 과제를 안고 있지만 의외로 좋은 흐름이다. 5월 31일 발표된 4월 유효구인비율(구직자 대비 일자리 비율)은 전월 대비 0.04포인트 상승한 1.34배로 1991년 11월 이후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지역별로도 전국 도·부·현 모두 1배를 넘었다. 도쿄는 무려 2.02배에 달했다. 4월 일본의 실업률은 3.2%다.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은행 대출도 고용과 보조를 맞추듯 지방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전년 대비 대출 증가율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형 은행이 2% 전후인데 반해, 지방은행은 3% 전후로 이를 능가한다.

2015년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다. 일부에서는 1~2%대인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일본의 성장률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다. 앞서 이야기한 버블 발생 조짐과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인구다. 1인당 실질 GDP 성장률은 대개 노동생산성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데 이 지표에서 일본은 과거 10여 년에 걸쳐 미국·유럽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일본의 경제상황은 나쁘지 않다. 전체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인구 감소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일본 경제는 언뜻 보기에 GDP 성장률이 낮지만 완전고용에 가깝다. 설령 경기를 고려한다 해도 소비세 인상을 뒤로 미루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아베 총리의 소비세 이상 재연기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베의 결정에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 기류

사실 소비세 인상은 2007년 8월 제1차 아베 정권 퇴진 후 후쿠다 야스오 정권, 아소 다로 정권이 사회보장 안전재원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기존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그 후 ‘재원은 우리가 정권을 쥐면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 장담하던 민주당이 집권했으나 새로운 재원은 전혀 나오지 않고, 고심 끝에 향후 ‘소비세 인상을 선거의 쟁점으로 삼는 것’을 목적으로 민주당·자민당·공민당 3당이 세금과 사회보장 일체개혁 문제를 종결지었다. 이 야당시대에 전혀 활동하지 않았던 아베 총리가 정권 탈환 직전에 자민당 총재에 취임했다. 그는 소비세 인상 재연기 이유를 ‘리먼 수준의 위기’에서 ‘새로운 판단’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증세 판단을 선거를 위해 이용하려는 자세가 뻔히 보인다. 어느 자민당 관계자는 “일체개혁 정신을 짓밟는 행위”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소비세 인상을 하지 않는다면 향후 소비세를 인상하려는 정권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해외든 일본 국내든 경제상황이 불확실하나 소비세를 인상할 수 없다는 억지를 부린다면 아베 정권은 금융·재정정책을 계속해서 재촉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이로 인해 향후 버블을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물론 금세라도 터질 듯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은행 대출은 부동산 중심으로 과열 기미가 있지만 그 주역인 부동산투자신탁(REIT)엔 비싼 시기에 부동산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는 시장 규율이 작용한다. 주가도 헤이세이 버블 때와는 달리 주가수익비율(PER) 등을 바탕으로 한 매매 판단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물가상승률 2%, 중장기적인 실질 GDP 성장률 2% 이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아베노믹스를 계속 추진해갈 것이다. 버블이 골치 아픈 것은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면 곧바로 고난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향후 버블로 밸런스가 무너져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다면 시장은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을 예상하고 일제히 매각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 결과 금리는 상승한다. 일본의 공적 채무는 대략 1000조엔(약 1경1000조원)으로 금리가 1%만 상승하면 10조 엔의 이자가 늘어난다. 큰 폭의 세출 삭감이나 소비세 인상을 하지 않는 한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그럼에도 한 여론조사에서 약 60%의 국민이 아베 총리의 소비세 인상 재연기를 높이 평가했다. 과연 국민들은 버블 붕괴의 치열한 위험을 눈치채고 있을까?

헤이세이 버블: 쇼와(昭和) 시대(1926~89년)가 끝나고 현 일왕인 헤이세이(平成)시대(1989년 11월~현재)가 열린 지 1개월 후부터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버블붕괴(1990년 1월)가 시작됐다. 이 불황은 20년 넘게 이어졌고, 지금도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흔히 ‘헤이세이 버블’이라고 부른다.

1342호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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