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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전지로 떠오른 중고차시장] 벤처부터 대기업까지 치열한 영토 전쟁 

완성차·렌터카·수입차 업체 춘추전국시대 … 모바일·온라인 시장도 활성화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현대캐피탈 인증 중고차는 국내 최초로 자동차 금융회사가 인증한 우수한 차량과 투명한 정보 제공으로 중고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전시장을 방문하면 ‘품질등급제’를 통해 차량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왼쪽). 수입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수입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의 경우 차별화된 관리와 서비스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중고차시장 규모가 연 30조원 이상으로 커지면서 시장 판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중고차 경매 등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벤처기업들도 스마트폰과 애플리케이션을 앞세워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고차시장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셈이다.

현대차·SK그룹 등 가세로 소비자 신뢰 높여

대기업들이 중고차시장에 뛰어든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요구(needs)가 있었다. 그간 중고차를 거래하려면 발품팔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매매상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다. 정교한 시스템과 서비스를 앞세운 대기업이 뛰어들기를 소비자들도 기다렸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중고차 유통 시장은 매력적이다. 신차 시장은 진입이 어려운데다 판매량이 정체된 반면 중고차 시장은 매년 성장세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중고차 거래 규모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기업들은 이 시장을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하고 있다.

2000년부터 중고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SK그룹 계열사 SK엔카는 국내 최대 중고차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전체 중고차 거래의 30~50%가 SK엔카닷컴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영 매장 거래 규모만 봐도 30%를 점유한다. SK엔카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업계 최초로 자체 진단 시스템을 갖췄다. 보증 차량을 SK엔카가 직접 선정하기 위해서다. 일반 부품까지 최대 1년 보장받을 수 있는 보증서비스(EW)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중고차를 원격으로 구매해 환불까지 받을 수 있는 홈엔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소비자 신뢰도를 높였다.

SK엔카의 프리미엄 내 차 팔기 브랜드 ‘SK유레카’는 연초 누적 접수가 5만 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정비이력서, 직접 작성한 차계부, 자동차와의 추억이 담긴 엽서 등 차주가 차량을 얼마나 아끼고 관리했는지를 확인하면 매입가를 올려준다. 정비이력서와 차계부로 각각 매입가의 1%, 직접 작성한 엽서로 1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전국 어디서든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중고차의 가치를 평가하고 견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SK엔카가 잠식하는 시장을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이자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이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룹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중고차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최대 강점은 오프라인 경매다. 중고차 경매장 브랜드 ‘현대글로비스 오토옥션’은 매주 1600여 대에 달하는 중고차를 거래한다. 전국 1400여개의 중고차 매매상이 입찰에 참여하는 만큼 시장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경쟁 입찰을 통해 투명한 가격에 거래돼 소비자 호응도 높은 편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오프라인 경매인만큼 낙찰률도 높은 편이다. 현대글로비스 경매장인 오토옥션에 따르면 경매 출품 대수가 2월 5748대, 3월 7754대로 증가세다. 올해 1분기 낙찰률은 62%로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약 10%포인트 상승했다.

‘SK유레카’와 유사한 차량 판매 플랫폼인 ‘오토벨’도 현대글로비스가 운영하고 있다. 오토벨 전용 콜센터나 홈페이지를 통해 중고차 매각을 신청하면, 오토벨 컨설턴트가 직접 고객을 찾아간다. 오토벨 서비스에 대해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국내 최대 경매장을 운영하며 축적해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량 가격을 산정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믿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렌터카 업계도 중고차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렌터카 1위 업체 롯데렌터카는 지난해 롯데렌터카가 타던 차를 팔고 신차 장기렌터카를 계약하는 ‘두꺼비 프로모션’을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장기렌터카 계약 직거래 장터까지 만들었다. 렌터카 업체의 특징을 이용해 렌터카와 중고차를 결합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예컨대 중고차를 롯데렌터카에 판매하는 고객이 장기 렌터카로 새 차를 계약할 경우,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롯데·아주 등 렌터카 업계도 눈독

중고차 거래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수단을 내세우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중고차에 대한 고객의 판매 희망 가격과 매입 제시 가격 간의 차이가 발생할 경우 중고차 판매가격 보장제도를 선택하면, 롯데렌탈 오토옥션 경매 출품을 통해 희망가격으로 낙찰 시에는 낙찰된 가격으로, 유찰 시에는 기존에 제시했던 가격으로 중고차 판매가격을 보장해준다.

대기업 특유의 서비스도 도입했다. 롯데렌터카 전국 지점을 통한 상담 신청 및 롯데렌터카 홈페이지와 모바일앱 중고차 팔기 문의에 차량 정보를 남기면 48시간 이내 전화 또는 e메일로 견적을 안내 받을 수 있다.

렌터카 업계 2위 AJ렌터카는 아예 자회사를 설립해 중고차 유통에 뛰어들었다. 중고차 서비스 브랜드 AJ셀카를 지난 2013년 설립하고 몸집을 불리고 있다. 매입 중고차 수가 2014년 8500여대에서 지난해 1만2000여대로 증가하는 등 사업이 커지고 있다. AJ셀카는 조만간 자체 중고차 인증 시스템을 갖추고 AJ셀카가 인증한 중고차만 거래를 허용해 소비자 신뢰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경기 기흥에서 운영 중인 중고차 경매장을 내년 1월 경기 안성으로 두 배 확장한다는 계획도 있다. 이렇게 되면 AJ셀카의 하루 처리 가능 중고차 수는 1000여대에서 2000여대로 늘어난다.

국산 완성차·렌터카 업계에 수입차 업계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사 차량을 잘 관리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품질의 중고차를 제공하면, 고급차 중심의 수입차 이미지도 좋아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자사가 판매하는 차량의 인증 중고차를 제공한다. 인증 중고차란 수입차 업체가 직접 자사의 차를 매매하는 중고차다. 신차 수준으로 수십 가지 항목을 검증하고 보증기간도 1~2년으로 늘려 기존 중고차 매매상보다 고객 신뢰를 높인 게 특징이다.

중고차 유통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 몰려


▎경기도 용인에 있는 AJ셀카옥션 경매장에서 중고차 딜러들이 새로 설치된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통해 차량을 점검하고 경매 가격을 산출하고 있다(왼쪽). 온라인 자동차 경매 애플리케이션 업체 ‘헤이딜러’는 중고차를 판매하려는 사람이 차량 정보를 올리면 전국의 매매업자들이 매입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BMW코리아는 2005년부터 ‘BMW 프리미엄 셀렉션(BPS·BMW Premium Selection)’이란 중고차 사업을 진행 중이다. 무사고 5년·10만㎞ 이하의 BMW와 미니(MINI) 차량을 판매한다. 수십여 가지 항목을 직접 정밀 검사해 중고차 매물을 내놓는다.

수입차 업계 최초로 BMW 프리미엄 중고차 매매 웹사이트도 운영 중이다. 전국 중고차 구입은 물론,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BMW·미니 차량의 현재 중고차 매매 가격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13개의 중고차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BMW 코리아는 연내 16개로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도 2011년부터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자사 중고차 매각부터 신차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원스톱 솔루션을 구축했다. 자사 전용 중고차 매장 ‘스타클래스(StarClass)’에서 인증 중고차를 판매하고, 스타트레이드 인(Star Trade-in) 프로그램을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신차를 재구매하는 방식이다. 현재 8개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하반기 5개 전시장을 추가하고 2020년에는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BMW·벤츠의 인증 중고차 사업이 인기를 얻자, 재규어랜드 로버코리아도 인증 중고차 사업을 기웃거린다. 2014년 서울 양재동에 인증 중고차 전시장을 개설한 데 이어 최근 성동구 장안평에 중고차 전시장을 또 열었다. 차량 판매와 구매 고객의 편의를 위해 리스 승계와 금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한국 토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 지난해 9월 공식 중고차 브랜드 ‘LEXUS CERTIFIED’를 론칭하고 서울 성동구에 첫 번째 전시장을 열었다.

이처럼 대기업과 수입차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 편의성도 높아지고 있다. SK엔카 관계자는 “중고차시장은 꾸준히 커지고 있어 기업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하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의 편익은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벤처기업까지 ‘중고차 전쟁’에 가세했다. 대기업이 오프라인 경매에 주력한다면, 벤처기업들은 애플리케이션 등 온라인 부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검색·빅데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물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원하는 조건의 차량을 연식·등급·주행거리·가격 등에 따라 세부 검색하는 기능을 제공해 소비자들을 끌어 모은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6월 19일 주차장·경매장 등 자동차 경매 관련 시설이 없어도 온라인에서 경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라 벤처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참여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불법 딱지가 붙었던 신생 벤처기업인 ‘헤이딜러’ 등이 합법적으로 온라인 중고차 경매 영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온라인 자동차 경매 애플리케이션 업체 ‘헤이딜러’는 중고차를 판매하려는 사람이 차량 정보를 올리면 전국의 매매업자들이 매입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판매자는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한 매매 업자에게 차량을 팔 수 있고, 중간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대 재학생 3명이 창업한 이 업체는 창업 1년 만에 다운로드 30만건, 거래액 300억원을 기록했지만, 규제 탓에 지난 1월 폐업했다가 국토부가 단속 유예를 결정하면서 2월 영업을 재개했다.

이렇게 온라인 기반 중고차 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벤처는 첫차·천언더·바이카·꿀카 등 다양하다. 최근 벤처캐피털 자금이 중고차 거래 관련 벤처기업에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동문파트너즈가 ‘첫차’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미스터픽에 7억원을 투자하고, 더벤처스가 ‘헤이딜러’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피알앤디컴퍼니에 투자했다. IBK기업은행 역시 바이카에 3억원을 투자하는 등 자금이 몰리면서 벤처업계의 중고차 거래 시장 공략도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박스기사] 중고차시장으로 영토 넓히는 캐피털사 - 신차 할부·리스 너머의 새로운 블루오션

중고차시장이 금융권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신차 할부·리스 시장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중고차 쪽으로 눈을 돌리는 금융회사가 늘어나서다. 원래 자동차 시장의 할부·리스 프로그램을 주도한 것은 캐피털 회사였는데, 여기에 보험·카드사까지 가세하자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위기를 느낀 캐피털사들은 중고차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가 추산하는 중고차시장 규모가 30조원에 이르는데다 해마다 성장하는 시장이어서 금융권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 캐피털 회사 관계자는 “중고차시장에 특화된 인프라와 금융프로그램이 적어서 앞으로 많은 기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KB캐피탈이다. 중고차의 시세 및 정보를 제공하고 매매가 가능한 플랫폼 ‘KB차차차’를 론칭하며 도전장을 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안정환씨가 나오는 TV 광고로 잘 알려진 플랫폼이다. KB차차차는 중고차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개인이 중고차 매물 정보를 입력하면 사전에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허위 매물이 걸러지고 자동으로 시세가 책정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이 알아서 차종·주행거리·사고유무 등의 정보를 분석해 시세를 책정하기 때문에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중고차 거래를 할 수 있다. KB캐피탈 관계자는 “지난 1년 간 중고차 시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이를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프로그램의 개발 노하우를 적용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KB차차차는 또 기존 중고차 거래 사이트와 달리 ‘헛걸음 보상’ ‘매도가 보장’ ‘환불보장’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랫폼에서 확인된 매물과 실제 현장에 방문해서 확인한 매물이 다를 때, 인도받은 차량에 결함이 있을 때, 실제 차량 거래 시 플랫폼에서 제시된 가격이 다를 때 등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플랫폼만 제공하고 KB차차차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립적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게 KB캐피탈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주캐피탈은 중고차 판매점을 방문한 고객이 상담과 동시에 대출 신청부터 대출금 지급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였다. 앱을 통해 대출한도 산정은 물론이고 대출상담 시점부터 수납 내역까지 모든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아주캐피탈은 이미 중고차 거래에 발생하는 중간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대신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중고차다이렉트 상품을 출시해 운영 중이다. 아주캐피탈 관계자는 “새로 개발한 모바일 앱은 중고차 거래에서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없애는 차원에서 마련했다”며 “기존 다이렉트 상품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BNK캐피탈과 DGB캐피탈 역시 중고차 금융 시장을 노리고 있다. BNK캐피탈은 현재 전국의 중고차 매물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공인인증서만으로 대출이 가능한 저금리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DGB캐피탈도 중고차 다이렉트론 상품을 개발하고, 수도권에 중고차 출장소 운영을 준비하는 등 경쟁에 가세했다.

업계는 캐피털 회사들의 시장 진출이 중고차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객들이 중고차를 살 때 고를 수 있는 금융상품의 종류가 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캐피털 회사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론칭할 때, 다양한 보상제도를 마련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 박성민 기자

1343호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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