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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스 아난드 피델리티자산운용 유럽주식운용대표] 브렉시트보다 인플레이션이 걱정 

임금·원자재값 오름세 전망... 확장적 재정정책, 규제 완화 흐름 이어질 듯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파라스 아난드 피델리티자산운용 유럽주식운용대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올 상반기 막판 세계 경제를 뒤흔든 사건이다. 예상보다 충격은 적었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분석도 많다. 시장의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영국 현지에서 경험한 ‘유럽 본토’ 투자 전문가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의 파라스 아난드 유럽주식운용대표는 “브렉시트보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의 글로벌 본사는 영국 런던에 있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6월 27일 국내 기관투자자 미팅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아난드 대표를 만나 브렉시트 이후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물었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다니.

“최근까지 영국은 경제가 상승세로 돌아서는 상황이다. 브렉시트로 불확실성이 발생했지만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집권해도 현재의 경제 상승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쓰진 않을 것이다. 기업 지원을 늘리고, 규제를 완화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칠 것이다. 그동안 긴축을 계속 유지하던 다른 유럽 국가도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6개월~1년 사이에 올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 한다. 인플레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인플레가 오면 채무와 부채 상환여력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럽은 지금껏 디플레이션을 우려해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폈다.

“유럽은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실업률이 높았다.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남아있는 근로자의 임금도 오랫동안 오르지 못했다. 이제 실업이 해소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면 중단됐던 임금 상승이 시작된다. 오랫동안 쌓여 있었으므로 상승 속도는 빠를 것이다. 임금 상승이 한 업종에서 시작되면 다른 업종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임금이 상승하면 소비가 활발해 진다. 임금 상승은 주요한 인플레이션 발생 요인 중 하나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도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은 오랫동안 하락세를 보였다. 이제 가격이 바닥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브렉시트 여파로 파운드와 유로화가 약세가 진행되는 것도 인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화폐의 실질 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고용환경이 좋아진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개혁이다. 재정위기를 겪은 스페인과 아일랜드 등은 어려움을 겪으며 노동시장 유연화에 힘썼다. 이를 바탕으로 오히려 일자리가 풍부해졌다.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고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2011~2012년에 있던 재정위기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던 국가들이 가장 많이 개혁을 한 것이다. 이를 참고한 이탈리아나 프랑스도 노동시장 개혁을 검토 중이다. 노동시장 개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기 침체를 겪던 유럽에 긍정적일까.

“인플레이션은 당분간은 경기가 회복되는 현상 중 하나로 나타날 것이므로 경기지표는 좋아질 것이다. 지표상으로 경제 성장이 확인되면 정부도 투자로 정책 기조를 바꿀 것이다. 시장의 두려움도 개선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현재 자산 보전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투자에 과감히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인플레가 발생하면 가진 자산의 가치와 구매력이 낮아진다. 결국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투자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적완화 정책도 바뀔 것이다. 그동안 유럽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꾸준히 했지만 성공적인 전략이라 볼 수 없다. 쏟아부은 돈의 양에 비해 변화는 은행 대출이 늘어나는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바로 투자가 활성화될까.

“현재 같은 0%대 금리에선 투자자가 자산을 현금으로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약 0.04%를 보관비로 지출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투자자는 현금 보유를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이 작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장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 현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고, 이를 만회하려 투자시장에 자금이 들어오고, 투자자금이 다시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거다. 근데 지금의 시장환경에서는 투자자들이 확실성만 쫓고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 이벤트도 실제보다 과도하게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당신은 “내수 비율이 높은 미국 기업에 비해 유럽 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 비율이 높아 브렉시트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은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회사가 많다. 그래서 유럽 지역에선 민감도가 커질 수 있지만 전체적인 기업 가치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화폐 가치가 떨어져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이후 엔·달러·금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고 있다.

“사람들이 유동성이 늘어난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가 0%대 금리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를 샀다. 수익보다는 자산가치를 보존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을 해서다. 하지만 유동성이 곧 리스크란 생각은 맞지 않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나는 유동성 있는 15% 수익을 원하지 유동성 없는 15%의 수익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유동성이 있어야 총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알아야 한다.”

유럽 주식시장에서 어떤 종목을 주목해야 할까.

“유럽 주식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수가 바로 상승할 걸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는 많다. 대표적 업종은 헬스케어다. 그동안 정치적 변수 등으로 평가가 낮았지만 곧 좋아질 것이라 본다. 은행과 인프라 기업 등 발전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 기업은 업종과 상관없이 투자할 만하다.”

유럽 증시 전반은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거라 보는가.

“일단 브렉시트 이후 유럽 각국에서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다. 정치 지도자가 바뀌는 상황에선 투자자가 리스크를 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리스크를 감내하는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영국 현지에서 브렉시트 상황을 지켜봤을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국민투표는 정치 이벤트였다. 투표를 하게 된 것도 영국 보수당이 총선에서 이기려고 낸 공약이었다. 영국 국민 입장에선 이번 투표는 유럽연합(EU)에 남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영국 경제와 사회상에 대해 평가를 내린 것이다. 국가의 경제지표는 EU에 가입한 후 좋아졌을지 몰라도. 이 과정에서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EU 가입으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들이 탈퇴를 지지한 이유다. 현재 영국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중일지 몰라도 체감 경기 회복엔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아직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저소득 노동자층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급격한 산업환경의 변화도 원인 중 하나다. 얼마 전 영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탈퇴를 지지하는 기사에게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물었다. 그가 이유로든 것은 다름 아닌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였다. 새로운 경쟁상대가 나와 생계가 위협받는데도 정부가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다. 기술 진보로 소외된 자신들을 신경 쓰지 못한 국가를 심판하는 의미도 이번 투표 결과에 엿보인다.”

1344호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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