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중략)…나는 분명 그 앞에 서 있는데!’ 19세기 후반 활동한 프랑스 문호 모파상의 한 단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놓고 실존주의 등을 언급한 여러 멋있는 해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어느 의사는 그가 매독을 오랫동안 앓은 결과 시신경이 파괴돼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파상은 방탕한 생활로 20대에 매독에 걸려 나중에는 환각·환청에 시달리는 등 고생하다가 결국 4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모파상뿐만 아니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옮겨 와서 유럽·아시아까지 퍼뜨렸다고 하는 매독은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19세기까지도 맹위를 떨쳤다. 이 병의 치료제는 20세기 들어서야 나왔다.1909년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와 그의 조수 하타 사히치로는 ‘살바르산’을 발명했다. 에를리히는 독극물인 비소가 인체는 공격하지 않고 특정 병균만을 공격하게 만들면 훌륭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소를 포함한 900개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어 동물 실험을 해보았으나 대부분 병균에 대한 효과보다 실험동물에 대한 독성 등 부작용이 너무 커서 의약품으로 쓸 수가 없었다. 단 하나 606번째 화합물이 독성이 거의 없으면서 매독균에는 특효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수많은 임상실험을 거쳐 이 약을 완성시켰고, 이후 페니실린에게 이 임무를 물려줄 때까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8월 초 국내의 한 제약사가 관절염 신약을 개발해 4단계 임상실험(4상)에서 효과는 크고 부작용은 적다는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게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곧이어 지난 10년 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9985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1단계 임상실험에서 신약 승인까지 평균 성공률은 9.6%로, 10개 중 1개만 의약품으로 시판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살바르산 이후 개발된 신약 중에도 약효보다는 부작용이 너무 커서 사람에게 쓸 수 없는 약이 많았다는 말이다.요즘 ‘김영란법’ 때문에 뒤숭숭하다. ‘공인’들의 부패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자는 취지도 좋고 ‘약효’도 좋을 것 같다. 문제는 부작용일 것이다. 국산 농수축산물에 대한 수요 감소가 심각할 것 같고, 법의 대상도 너무 포괄적이어서 건전한 경제활동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죽하면 경제당국조차도 하반기 국내 소비의 심각한 위축을 걱정할까? 문제는 신약과 달리 ‘신법’은 임상실험을 거칠 수 없으니 시행 전 부작용을 가늠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약효는 크고 부작용은 감내할 정도로 적기를 바랄 뿐이다.폭염 속에서 서울의 거리를 걷다보면 ‘사철탕’이나 ‘영양탕’ 간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는 가게도 꽤 보았다. 이 땅에서 견공의 수난은 계속되는 것 같다. 그런데 로마 제국에서도 8월은 견공의 수난시기였다. 8월 초 ‘수플리키아 카눔’이라고 해서 개를 산채로 삼지창 등에 매달아 행진하는 풍습이 있었다. BC 4세기경 갈리아족이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개가 짖지 않아 점령당했기 때문에 이를 징벌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제 할일’을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나오는 거액 뇌물, 부적절한 편의 제공, 성매매로 걸린 ‘공인’들의 이미지가 그 삼지창 위로 자꾸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