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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평행선 긋는 은행권 성과연봉제 도입 논란] 수익성 높일 제도 vs 관치·낙하산이 문제 

고용노동부, 임금체계 개편 가이드북 내고 압박 … “호봉제 고집 구시대적 발상” 비판도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7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서여의도 영업부 앞에서 총파업 2차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8월 9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소속 은행장들은 금융 노조 집행부와 만나 협상을 벌였다. 통상 휴가철인 7, 8월 두 달은 교섭을 열지 않는 게 관례였지만 올해는 7월 26일 산별교섭 이후 2주 만에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의 제안으로 다시 만났다. 은행권 뜨거운 이슈인 성과연봉제를 협의하기 위해서다. 이상헌 은행연합회 경영지원부장은 “금융공기업과 마찬가지로 민간 은행도 내년부터 성과연봉제를 적용하자는 게 사용자협의회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는 7월 22일 같은 직급끼리도 성과에 따라 연봉이 최대 40% 차이 나게 하는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평가등급을 5등급 이상으로 나눈 상대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성과연봉제다. 2000년대 초 각 은행은 간부급(부 지점장급 이상)엔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차장 이하 일반 직원엔 해마다 기본급이 꼬박꼬박 오르는 호봉제를 유지해왔다. 가이드라인 대로 모든 직원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면 수십 년 넘게 이어져온 ‘은행원 호봉제’의 틀이 깨진다. 그동안 기본급은 호봉에 따라, 성과급은 집단(지점 단위) 평가에 따라 결정됐지만 앞으로는 개인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은 물론 기본급까지 달라지게 된다.

금융노조는 가이드라인 초안이 나온 7월 말 이미 성과연봉제 거부를 선언하며 9월 23일 총파업을 결의했다. 파업결의가 연례행사인 금융노조이지만 이번만은 유독 강경하다. 김문호 위원장은 “가만히 있으면 금융공기업처럼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 밀어붙일 게 뻔하다. 파업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9월이 되면 은행권이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금융 전문가들이 “잘못 얘기했다가는 금융노조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는다”며 기자와의 인터뷰를 꺼릴 정도로 노조의 반발 강도가 세다.

고용부 “노조 동의 없어도 임금체계 개편 가능”


금융노조가 특히 강하게 반발하는 건 금융공기업처럼 민간 은행도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게 될 거란 우려 때문이다. 8월 17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북’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 키우고 있다. 이 가이드북은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노조가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경우 법률과 판례’에 따른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사실상 노조의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을 사용자 측에 안내한 셈이다. 이에 금융노조 측은 ‘노동부가 사용자에게 불법·탈법적인 임금체계 강제 변경을 장려하고 있다’면서 장관의 사퇴와 가이드북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은행 경영진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내심 다른 은행이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서줬으면 하는 입장이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성과연봉제가 필요하다는 점엔 공감하지만 노조와의 갈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어디도 앞장서고 싶어하진 않는다”며 “다른 은행이 분위기를 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노사 양측은 ‘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 하느냐’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노조 측은 성과연봉제는 곧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없던 개인평가가 도입돼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찍게 되면 이것이 곧 해고의 기준이 될 거란 뜻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하려는 일반해고와 성과연봉제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해석한다. 사측과 정부의 설명은 다르다. 성과와 보상을 연계해 열심히 일하게 하는 유인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해고나 임금 삭감의 수단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갈수록 떨어지는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려면 보수와 성과를 연계해야 한다”며 “보수를 깎는 게 아니라 성과를 높이는 데에 방점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수익성과 인건비 간 연관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통계로 확인된다.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율은 2010년 2.32%에서 지난해 1.6%로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총이익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6.9%에서 26.8%로 커졌다. 2014년 기준 금융업의 평균 월급은 497만5000원으로 전 산업 평균(232만2000원)의 1.5배에 달했다. 성과와 상관없이 연공에 따라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가 인건비 부담 상승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와 달리 노조 측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계좌이동제 같은 정부 주도의 상품·서비스가 은행의 수익성을 해치는 요인이라면서 관치·낙하산 방지가 먼저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한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노사 모두 좀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적 자원이란 점에서 성과연봉제는 맞는 방향이지만 사측이나 정부가 성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성과연봉제는 매우 예민한 문제인데도 기계적으로 추진하려고 끌고 나가다 보니 생각지 않은 반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노조의 낙하산 방지 같은 요구를 수용하면서 중장기적인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성과연봉제를 검토해 보자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HR(인사관리) 전문 컨설턴트는 “일반 기업에서 성과연봉제는 계획부터 적용까지 3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며 “지나치게 서둘러 도입하면 조직과 구성원 모두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성과연봉제가제 기능을 하려면 직무별 특성이 반영된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며 “평가지표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이제 노조 측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현재의 판매 목표 중심의 은행 성과평가지표(KPI)가 그대로 개인 평가에 쓰인다면 불완전판매와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고객의 수익률이나 만족을 평가지표로 반영하는 것이 보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국민은행이나 KEB하나은행 등은 성과연봉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평가시스템을 다듬는 단계에 와있다. 노조가 무조건 거부만 외치기보다는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조언이다.

전문가 “노사 양측 모두 유연한 자세 필요”

은행연합회의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안을 만든 머서코리아 윤훈상 전무는 “개인 평가에 따른 성과차 등은 해외나 국내 일반기업도 다 하고 있어서 무작정 못한다고 하기엔 근거가 떨어진다”며 “SK하이닉스처럼 생산직까지 연봉제로 전환하는 시대에 은행이라고 계속 호봉제만 고집할 순 없다”고 말한다. “저성장 시대에 이러한 임금체계를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은행 경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노조는 ‘공정한 평가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 못 한다’고 하는데 그건 하기 싫다는 이야기일 뿐”이라며 “촉박하지만 일단 성과 연봉제의 첫 단추를 꿰고, 시작하면서 다듬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1349호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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