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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서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 주장이 부회장의 극단적인 선택에는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에 대한 결백을 입증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은 유서에서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고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은 A4용지 4매(1매는 표지) 분량의 자필 유서에서 롯데와 신동빈 회장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며 이 같이 적었다. 그는 가족에게 ‘그동안 앓고 있던 지병을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다. 힘들었을 텐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라고 썼다. 또 롯데 임직원에게는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적었다. 유서에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아울러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 본부의 수장으로서 수사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본부장은 비자금 조성, 계열사 부당 지원 등 검찰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롯데 경영비리를 모를 수 없는 자리다. 검찰의 고강도 추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심리적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그의 직책을 감안하면 모른다고 잡아떼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말할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다.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에서 ‘비(非) 오너 일가’ 중 처음으로 부회장까지 올랐다. 올해 69세로 43년 간 롯데에 몸담은 국내 최장수 CEO다. 수십 년 간 신격호 총괄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신 총괄회장의 ‘복심’ ‘리틀 신격호’으로 불렸던 이인원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롯데 사태’를 거치며 신동빈 회장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신 총괄회장이 지시한 이른바 ‘살생부’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져 신동빈 측 인물로 각인됐다. 2007년 정책본부의 부본부장을 맡으면서 신 회장을 보좌한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사람으로 신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한 이후 1987년까지 호텔롯데에서 근무했다. 이어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겨 관리와 상품구매, 영업 등의 핵심 업무를 두루 거쳤다. 1997년 50세에 롯데쇼핑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후 10년 동안 롯데쇼핑을 유통 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제2롯데월드의 안전 관리를 총괄해왔고, 9월부터는 롯데그룹 기업문화개선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은 신 회장의 측근들을 조사한 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 등을 불러 수사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 검찰은 특히 이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비자금 조성, 탈세, 횡령, 배임 등 불거진 각종 혐의에 대한 키를 쥐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검찰 관계자는 “진심으로 안타깝고 고인에 애도를 표한다”며 “수사 일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검찰은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수사동력이 급속도로 약해지거나 핵심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검찰은 롯데 계열사의 모든 경영 사항을 직접 챙겨온 이 부회장을 총수 일가의 6000억원대 탈세 의혹, 롯데 건설의 500억대 비자금 조성 의혹, 그룹 계열사 간 부당거래 의혹 등을 규명할 핵심 피의자로 봤다. 특히 신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비리 연루 의혹을 밝히려면 롯데 전문경영진들의 진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사 방식 적절성 놓고 논란 가능성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이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검찰로선 롯데 총수 일가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기 위한 중요한 연결 고리 하나를 잃게 됐다. 검찰은 앞서 황 사장과 소 사장을 상대로 비자금 조성 등 그룹 경영비리 전반을 캐물었으나 이들은 주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사장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기자들과 만나 비자금 조성 사실을 보고받거나 신 회장으로부터 비자금 조성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지난해 4월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회장의 자살 이후 또다시 핵심 피의자가 자살해 검찰의 수사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재계를 중심으로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경기 침체 속에서 기업의 존속이 위태로울 지경이라는 불만도 제기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은 6월 수사관 240명을 동원한 사상 최대 규모의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롯데 총수 일가와 계열사 비리를 전방위적으로 훑어왔다. 그러나 이미 수사가 마무리 단계인 만큼 이 부회장의 장례가 끝나는 등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수사를 재개할 확률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스기사] 끊이지 않는 피의자 자살 - 정몽헌·성완종·남상국 등 비극적 마감2015년 해외 자원개발 비리에 연루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영장실질심사가 있던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외 자원개발 비리 사건은 성 전 회장의 죽음 이후 당사자의 부재에 따라 수사가 난항을 겪었다. 2014년에는 철도비리 의혹을 받던 김광재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전 이사장은 이른바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혐의로 서울중앙 지검에서 수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김 전 이사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1월에는 금품수수 및 횡령 혐의로 대전 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한 업체 대표가 2회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후 주거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했으며, 방위사업 비리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전 방위사업청 관계자도 귀가 도중 행주 대교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2003년 대북송금과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2004년 노 전 대통령의 형에게 금품을 전달한 혐의를 받던 남상국 전 대우건설 회장, 건강보험공단 납품비리 의혹의 박태영 전 전남지사 등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