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Life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정력·장수의 바람 담은 거북형 약함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절단된 약이나 알약 보관 … 사용자의 취향·연령·신분에 맞게 주문 제작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길쭉한 이것을 단순히 약 담는 함의 손잡이라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어쩌면 남성상(男性像)의 회복을 위한 간절한 기원일지도 모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 목을 길게 빼고 있는 거북의 목은 건강한 남근(男根)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생식과 장수의 의미인 것이지요. 가야의 왕 김수로의 탄생설화에는 구지가(龜旨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龜何龜何(구하구하)-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구워서 먹으리

십장생(十長生) 중에서도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의 머리를 내어 보라는 노래까지 있지만, 이 약함에서 보듯 머리를 길쭉하게 내어놓고 있는 유물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약함은 절단된 약이나 알약을 단기간 보관하면서 수시로 복용하기 위해 만든 기구입니다. 주로 소나무나 오동나무로 만들었는데, 이 약함은 강도나 결로 보아 느티나무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거북이 등인 약함의 뚜껑의 중심부에는 태극이 새겨져 있고, 그 모서리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팔괘(八卦)가 조각돼 있습니다. 팔괘는 놋쇠로 장식돼 있을 만큼 꼼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팔괘에는 음양오행이 근간이 된 한의학의 이론이 내포돼 있습니다. 동양철학의 근간인 [주역(周易)]에 보면 ‘역(易)에는 태극이 있으며 태극에는 음과 양이 있고 이 두개를 나눈 것이 사상(四象)이다. 이것을 다시 이분하면 팔괘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우주만물을 형성하는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면서도 조화를 바탕으로 해서 운행되는데, 이들의 조합을 통해 한의학이 만들어지고 정립돼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 약함을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팔괘가 뚜껑에 조각되고 동시에 형이학적인 남근이 손잡이로 만들어진 이 약함을 사용했던 인물은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추측건대 쇠잔해진 정력에 고심(苦心)이 많았던 왕족이나 지체 높은 사대부(士大夫)가 약을 담고 장식의 의미로도 썼던 것 같습니다.

정력은 몸과 마음의 모든 활동력 지칭

‘정력(精力)’은 생명을 잉태하는 힘을 말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모든 활동력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생식기능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골수와 뇌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체와 뇌가 활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정(精)이란 한자를 뜯어보면 곡식을 뜻하는 미(米)와 태어난다는 생(生), 그리고 붉은 새 생명을 뜻하는 단(丹)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정력(精力)이란 말은 부모에게서 받은 선천적인 정(精)과 음식으로부터 받은 후천적인 정(精)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힘(力)이라는 뜻인 겁니다. 이는 사람의 몸을 만드는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정(精)이 부족하면 기(氣)가 순행이 안 되고 흩어져 병이 생기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관절이 아프고 이명증이나 어지러움이 심해지며 눈이 침침해지고 유정(遺精)이나 몽정(夢精)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정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니 점점 쇠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렇듯 정력은 섭생과 관리를 못하거나 나이가 듦에 따라 서서히 감퇴돼 갑니다. 이는 성기능 장애와 난임(難妊)을 초래하게 되지요. 성기능 장애는 발기부전, 조루(早漏), 유정(遺精)을 뜻하고, 난임은 정자 부족, 무정자증, 기형 정자 등을 의미합니다.

발기는 성적으로 흥분되면 심장의 박동이 활발해지고 혈액이 성기의 해면체에 유입돼 일어납니다. 정맥이 수축되면 발기상태가 유지되는 것이고요. 이는 자율신경이 조절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이를 양기(陽氣)라고 합니다. 양기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후천적인 기(後天之氣)라도 잘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심신(心神)의 수양, 운동, 섭생 등이 필수적입니다. 섭생의 첫 단계로 동의보감에서는 ‘단능담식곡미 최능양정(但能淡食穀味 最能養精)’이라 해서 ‘소박한 음식과 곡식이 정력을 보하는 데 최고’라고 했습니다. 고기보다는 잡곡 위주의 담백한 음식이 몸을 보하는 데에는 더 좋다는 말입니다.

발기부전은 심리적인 원인이 더 많습니다. 특히 50세 중반쯤에 오는 남성 갱년기에는 무기력해지고 체중이 줄며 식욕이 부진해지면서 성욕의 감퇴가 시작됩니다. 고환의 생리적인 기능이 떨어지지만 이보다는 스트레스와 심약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당뇨가 있거나 혈압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더욱 심해지겠지요. 이러한 경우에 한방에서는 두충과 구기자를 많이 처방합니다. 쌍화탕도 권할 만합니다.

조루는 흥분을 잘하는 소양인(少陽人)에 가장 많습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조급증이 있는 사람은 특히 심합니다. 성기 자체가 민감한 체질이지요. 이럴 때에는 연자육과 검인이란 약재의 효과가 좋습니다. 한방차 애호가라면 평소에 구엽초(九葉草)를 달여서 수시로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구엽초는 수컷 양이 이 약초를 먹고 음탕해져서 암양과 하루 종일 교미를 했다 해서 음양곽(淫羊藿)이라고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이 풀을 먹고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할머니한테 뛰어갔다고 해서 기장초(棄杖草)라고도 합니다. 맛도 좋고 즉효는 없어도 꾸준히 복용하면 어느 정도의 효과는 볼 수 있습니다. 정력이 좋아지면 정자수가 늘고 기형 정자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남성에 문제가 있어 야기되는 난임은 30% 정도라는 통계가 있는 만큼 정(精)과 기(氣)는 빨리 보충을 해야 합니다.

성기능 장애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입니다. 남성의 성기는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데, 혈액순환이 잘 안될 경우에는 말초까지 혈액을 보내기 위해 고혈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해 혈압약을 먹으면 말단까지의 기혈순환이 잘 안돼 사지 저림이나 발기부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발기부전은 심리적 원인일 때가 많아

당뇨나 고지혈인 경우에도 피가 탁해지게 되어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성기능 장애를 유발합니다. 젊어도 이러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심장에서 성기까지의 기혈이 순행이 안 되고 신장이 허해져서 발기부전이 되기 쉽기 때문에 이들 질환을 빨리 치료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입니다.

두 번째로는 표준체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비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욕이 감퇴되고 성기능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셋째로는 정기적인 운동이 필수적입니다. 향상된 심폐기능이 조루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과로를 피해야 합니다. 절제된 성생활은 성기능을 향상시켜줍니다. 다섯째로 금연을 해야 합니다. 흡연은 정자의 활동이나 숫자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자율신경계의 장애를 일으켜 발기부전을 유발한다는 임상보고가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신장과 간장의 기능을 돋워주어야 합니다. 한의학에서의 신(腎)은 콩팥, 부신, 전립선, 생식기 등의 기관을 다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신장의 기능이 충실하면 간 기능에도 좋은 영향을 주어 노화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수생목(水生木)이라 합니다. 성(性)의 한자는 마음(心)이 살아있다(生)라는 뜻글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수반된 절제된 성생활이야말로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61호 (2016.11.2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