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창조가&혁신가 |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참기름으로 올리브유와 한판 대결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저온 압착 방식으로 승부... 미국·일본 유통사와 판매 협의

▎박정용 대표가 저온 압착 방식의 참기름 추출법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12월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데뷔 무대로 꼽히는 스파크랩 데모데이가 열렸다. 이번 데모데이는 스파크랩 8기 프로그램에 선발돼 13주 간 집중적인 액셀러레이팅 과정을 거친 9개 스타트업의 성과 발표(피치 세션)가 펼쳐졌다. 고객채널 관리 플랫폼을 클라우드로 제공하는 클로저를 시작으로 머신러닝 툴을 제공하는 엑스브레인,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인 스윙비 대표의 피칭이 이어졌다. 4번째로 나온 스타트업의 피칭이 시작되기 전 스파크랩 이한주 대표는 “가장 많은 질문이 나올 스타트업”이라고 소개했다. 무대에 나온 이는 쿠엔즈버킷(queensbucket)의 박정용(48) 대표였다. ‘Our sesame oil is the world’s next olive oil(우리 참기름이 올리브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박 대표의 마지막 말에 관객석에서는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고온 압착 방식으로 추출하면 맛·향 너무 강해

서울 역삼동의 한 골목. 작은 도로 옆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다. 아파트 맞은 편에는 ‘참기름’이라는 작은 간판을 달고 있는 방앗간(?)이 하나 있다. 쿠엔즈버킷의 작업장과 사무실이다. 59㎡(약 18평) 크기의 작업장 한 켠에는 압축기·추출기 등의 참기름을 제조하는 기계가 설치돼 있고, 다른 한 켠은 이곳에서 만든 참기름과 들기름을 전시해놓고 파는 곳이 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방앗간이 ‘참기름의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온 참기름은 무엇이 다를까. 추출 방식이다. 그동안 우리가 맛본 참기름은 고소한 향기와 맛으로 대표된다. 파란 소주병에 담긴 참기름 뚜껑을 열면 향기가 온 방안을 휘저을 정도. 박 대표는 “맛과 향이 강한 참기름이 나온 것은 고온 압착 방식으로 추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깨에서 기름을 추출하기 위해서 대부분 고온으로 볶은 후에 압착했다. “참깨 기름은 섬유질 티슈인 파이버 안에 있는데, 참깨를 고온으로 볶으면 쉽게 분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깨는 보통 하얀색인데, 고온으로 볶으면 갈색의 탄화된 색소가 함께 나온다. 사람들이 참기름을 갈색으로 알게 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고온으로 참깨를 볶고 추출을 했을 때 생기는 단점은 향과 맛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참기름이 한식에만 많이 쓰이는 이유는 맛과 향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음식과 페어링이 안 되는 식물성 기름’인 셈이다. 참기름이 올리브유처럼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다.

고온으로 태우면서 참기름에 방부 성분도 많아진다. 참기름을 오래 놔둬도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이유다. 고온으로 볶다 보니 참깨가 타면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이 검출되는 경우도 있다. 박 대표는 “이런 단점을 없애려면 참깨를 저온에서 타지 않도록 볶은 후에 추출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느 기업도 저온 압착 방식의 참기름을 내놓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니까 기업들이 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계로 아무리 압축해도 기름이 나오지 않을 경우도 있고, 기계가 압착해 기름을 추출할 때 손상되는 경우도 많을 정도라고 한다. 박 대표는 “만일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을 정도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그가 기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유명 백화점에서 명인과 식품을 발굴하는 컨설팅 일을 하면서다. 이때 많은 참기름 명인을 만나봤지만, 만드는 방법은 모두 고온 압착 방식이었다. 박 대표는 어렸을 때 청소도 하지 않는 시골 방앗간을 떠올렸다. “어릴 때 방앗간을 보면서 ‘청소라도 좀 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참기름 명인들을 만나면서도 ‘나라면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창업에 뛰어든 이유를 말했다. “10여년 전부터 일과 상관없이 기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명인들을 만나면서 올리브유와 경쟁할 수 있는 참기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강남 참기름’으로 불리면서 인기

2012년 쿠엔즈버킷을 창업하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앗간에 취직하고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6개월 동안 참기름 짜는 방법을 배웠다. 창업한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저온 압착 방식으로 추출할 수 있는 기계를 찾고, 좋은 원료를 찾는 것이었다. 전국 팔도를 누볐고, 다양한 기계를 사서 실험을 거듭했다. 현재의 기계를 세팅한 건 1년이 지난 후였다. 현재 사용하는 원적외선 저온 볶음기는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기계다. 필터기는 해외에서 수입했다. 필터는 순수자연물질로 만들어져 제약회사에서 사용할 정도로 깨끗하다. 다른 곳에서 쿠엔즈버킷의 참기름을 흉내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기계 세팅의 미세한 차이에도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브랜드 마케팅 컨설팅을 13년 동안 했던 임여숙 이사, 이랜드에서 곡물 구매바이어를 했던 정형남 이사 등이 쿠엔즈버킷의 미래를 보고 합류했다. 그렇지만 1년 동안 제품 준비를 하면서 함께 투자했던 돈은 대부분 소진했다. 마케팅할 여력이 없었다. 쿠엔즈버킷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입소문이었다. “아직도 첫 손님을 기억한다. 이 동네를 왔다갔다 하던 분이 우리 참기름을 사서 먹어본 후 너무나 좋았다고 다시 찾아오셨다”고 말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지만 한번 구매해본 고객들이 다시 찾았다. “예전에 맷돌로 만든 참기름 맛이 나서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고객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고객은 “이 제품이 너무 좋으니까 우리 집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도 제품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고객의 집 앞에 있는 수퍼는 다름 아닌 갤러리아 백화점이었다. “그 고객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른다. 갤러리아 백화점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 제품을 소개했는데, 쉽게 납품할 수 있었다”고 박 대표는 웃었다.

현재 쿠엔즈버킷의 제품은 현대백화점·갤러리아백화점·반얀트리호텔 같은 곳에 프리미엄 참기름으로 납품하고 있다. 참기름 가격은 3만9000원, 들기름은 2만5000원이다. 볶지 않고 압착하는 콜드 프레싱(cold pressing) 방식의 생참기름은 4만3000원, 생들기름은 2만8000원이다. 고객들 사이에서 ‘강남 참기름’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다양한 곳에 납품하고 싶지만, 현재 여건에서는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서 그러지 못한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얼마 전에는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에 입주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경진대회에 나가서 선정된 덕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8억8000만원, 올해는 1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유통 업체와도 거래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 참기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오일”이라고 강조했다. 스파크랩 이한주 대표에게 “쿠엔즈버킷을 스파크랩 8기 프로그램에 선정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세계적으로 팔릴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참고로 쿠엔즈버킷은 ‘퀄러파이드(qualified)’ ‘앤드(and)’ ‘유틸리티(utility)’의 합성어다. 최적화된 방법으로 좋은 품질의 참기름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363호 (2016.12.1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