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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산업 경기 어디쯤 | 반도체·스마트폰·석유화학] 반도체·석유화학 ‘더 오를 수 있지만’ 스마트폰 ‘신제품 흥행이 좌우’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상승 사이클 이어갈지 미지수 … 최근 한국 수출 1등 공신 반도체도 장담 못해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
어려운 경제환경에도 국내 몇몇 산업은 최근 반등 내지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반도체와 통신기기(스마트폰), 석유화학 산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산업들도 고민이 깊다. 지금이 정점, 즉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간 산업계가 그려왔던 사이클은 이런 근심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기댈 구석은 있다. 과거에는 없던 변수가 산업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반도체 | 수퍼 사이클 진입 속 착시현상 논란도


반도체 시장은 산업 사이클의 기로에 섰다. 일단은 상승기류를 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의 시작됐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반짝 호황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반도체 시장은 다른 산업에 비해 사이클이 짧다. 보통 3~4년을 주기로 불황과 호황을 오갔다. 2000년·2004년·2006년·2010년·2013년 반도체 가격이 상승했고, 이후에는 1~2년 씩 시장이 침체됐다. 이런 반도체 산업의 주기를 ‘실리콘 사이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의 경기 변동은 무엇보다 수급이 좌우한다. 경기가 호황을 누릴 때 반도체 기업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도입하는 등 설비 투자를 늘린다. 시장에 갑작스레 늘어난 초과생산량은 가격을 떨어뜨린다. 그러다 자금이 부족해진 기업들이 설비 가동을 중단하면 다시 물량부족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이클대로라면 지난해 말부터 호황을 나타낸 반도체 시장에서 1~2년 후에는 공급과잉이 재현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시장에서는 이러한 주기 공식이 다소 무의미해졌다고 보는 추세다. 과거에는 PC위주로 D램 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3~4년 주기의 호·불황 공식이 대략 들어맞았지만 현재는 PC말고도 서버, 전장 등 D램의 수요처가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향후 반도체 시장이 10년 이상 이어질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거라는 전망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00년대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IoT) 등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공급 업체가 줄면서 과점에 가까운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D램을 생산하는 곳은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뿐이다. 시장에서 향후 주력 상품으로 꼽는 낸드플래시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도 4~5곳 정도에 불과하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 업체가 제한적인 만큼 수익을 독점할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지난해 말 기준 3571억달러(약 423조원)에 달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1년까지 연평균 4.9% 성장세를 지속한다고 봤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선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같은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7.3%로 예상했다.

단기적으로도 일단 반등에는 성공한 모습이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은 공급과잉으로 단가가 하락하고 수익성이 떨어져 부진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마이크론의 경우 지난해 5월까지 재고처리와 원가절감을 위해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메모리 탑재용량 증가로 반도체 수급이 개선되고 반도체 가격이 안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은 “D램 수요의 증가와 재고의 정상화로 인해 메모리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며 2017년 반도체의 수출액이 2016년에 비해 3.3% 증가한 635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장조사회사인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7.2% 증가하고, 메모리 반도체가 성장세를 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투자에 2018년부터 중국 기업이 만든 메모리 반도체가 쏟아져나올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자국 반도체 업체들을 대상으로 10년간 1조위안(약 17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성장하면 한국 반도체 수출 실적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은 매년 2000억~3000억 달러의 반도체를 소비하고 있다. 이 중 88%를 수입에 의존한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 따르면 2015년 한국 기업이 중국에 수출한 반도체가 278억 달러로 전체 반도체 수출 액의 44.2%를 차지한다.

슈퍼 사이클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는 2월 8일 보고서를 통해 지금의 반도체 경기 호황이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분석했다. PC·스마트폰 업체들이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일시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충분한 재고 물량이 쌓였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수요가 줄고 가격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석유화학 | 유가·환율 덕에 웃지만, 정제마진 하락 추세


▎GS칼텍스 여수 제2공장.
석유화학 산업은 시장 환경이 개선돼 ‘구조적 호황’에 대한 관측이 나오지만, 과거의 사이클 모형은 상승 곡선이 밑으로 꺾일 가능성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체들은 저유가로 기대 이상의 이익을 기록했다. 국내 4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8조276억원의 이익을 냈다. 4조6592억원 영업이익을 낸 2015년의 2배 수준이다. 7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2014년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화학업계도 지난해 주요 5개사(롯데케미칼·LG화학·한화케미칼·한화토탈·여천NCC)가 7조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호황을 보였다.

그러나 석유화학이 산업 주기의 상승 곡선에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정제마진이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정유업계의 사이클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다. 원유와 석유제품의 가격차이를 말한다. 유가와는 별도로 제품 수요와 공급에 따라 마진이 달라지고 정유사의 이익에 영향을 미친다. 연초 배럴당 9.9달러에 달하던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8월 3.9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6~7달러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연평균 10달러에 달하던 2015년 수준에는 못미쳤다.

정제마진이 부진했는데도 정유사의 실적이 좋아진 것은 유가와 환율의 반등 덕이다. 2015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배럴당 20달러 붕괴 위험까지 보이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연말 53.8달러까지 상승했다. 지난 연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영향이 컸다. 유가가 단기간에 오르면 정유업체 이익에는 ‘래깅효과(lagging, 원재료 투입 시차효과)’가 발생한다. 산유국 현지에서 원유를 구입한 시점과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시점에 차이가 나는데, 제품 가격은 원유 상승이 바로 반영돼 오르기 때문에 실제 석유제품을 판매했을 때 거둬들이는 마진이 커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에는 환율도 달러당 1172원에서 1210원까지 올라 이익 상승에 기여했다.

화학업계도 저유가 덕을 봤다.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은 대부분 석유제품인 나프타를 주원료로 쓴다. 가격이 싼 석탄 및 셰일가스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미국 기업에 한동안 열세를 보였지만 유가가 하락하면서 나프타분해시설(NCC) 기반 화학 업체가 주도권을 잡았다. 나프타를 원료로 쓰면 생산 제품도 다변화할 수 있어 국내 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가가 ‘골디락스’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큰 이유다. 원유 수요와 공급이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는 가격대가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OPEC의 감산 합의가 이행된다는 전제 아래 세계은행은 올해 국제유가를 55달러로 전망했고, 골드만삭스나 바클레이스 등 해외 IB 역시 OPEC의 감산합의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구도도 국내 업체에 유리하다. 그간 공급 과잉과 정제마진 하락을 유발한 중국의 소규모 설비가 당국의 규제 강화로 퇴출될 전망이다. 수요도 건재하다. 메리츠종금투자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정제 설비 순증은 하루 59만4000배럴, 내년엔 하루 52만4000배럴 정도다. 석유제품 수요 증가 예상치는 각각 하루 120만 배럴, 130만 배럴로 공급을 크게 웃돈다. 화학업종 전망도 비슷하다. 연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NCC의 경쟁력은 여전하고, 유가가 시장 예상대로 횡보하면 나프타 가격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변수를 제거하고 수급을 기반으로 한 산업 사이클만 봤을 땐 전망이 밝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장기적인 저유가 추세에 따라 정제마진이 낮게 형성된 상황에서 지난해 같은 가파른 상승세가 멈추면 ‘반짝’ 래깅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환율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추가적인 원화 약세도 장담할 수 없다. 화학업계는 설비 증가가 불안 요소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화학업계 역시 글로벌 업체들의 투하자본수익률(ROIC)이 사이클 상 고점에 도달했다”며 “역사적 패턴대로라면 이후 설비투자(CAPAX)가 가시적으로 늘어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증가한 설비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하면 과잉 공급으로 수익성이 하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마트폰 | 점점 약해지는 신제품 효과


스마트폰 산업은 꺾이기 시작한 수요 때문에 불안감이 크다. 시장에서는 올해 스마트폰 시장에 대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성장하더라도 소폭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급성장하던 스마트폰 산업은 2014~15년 부진을 겪었다. 지난해 신규 모델 출시를 계기 삼아 모처럼의 반등을 기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노트7 배터리 폭발과 LG전자의 G5 부진으로 지난해에도 휴대폰 산업의 날씨는 흐렸다. 시장에서는 이제 스마트폰 시장이 사이클의 고점을 찍고, 밑을 바라보는 시점이 됐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폰 출하량 증가율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도(19억1700만 대)에 비해 1.6% 감소한 18억8700만 대를 기록했다. 2017년은 소폭 증가한 19억1000만 대로 전망했다. 란지트 아트왈 가트너 책임 연구원은 “전세계 디바이스 시장은 현재 정체 상태를 보인다”며 “포화 상태에 이른 시장과 함께 혁신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디바이스를 구입하거나 기존 디바이스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최신 스마트폰이 선을 보였지만, 오히려 혁신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복고인지 퇴행인지 알 수 없는 노키아의 피처폰에 의외로 관심이 집중될 정도였다. 제조사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제 디자인 등으로 차별화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이 3~4%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아예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곳도 있다. SK증권은 2017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은 2015년 14%에서 2016년 2%로 줄어드는 등 2012년 이후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며 “2017년에는 역성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선진시장의 스마트폰 시장은 성장을 멈춘 지 오래됐고, 중국과 브라질·멕시코·인도 등 신흥 시장도 지난해 2분기에 이미 성장률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점에 오른 스마트폰 산업의 재도약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만한 신기술·신제품이 나오는가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장에서는 ‘폴더블 스마트폰’이나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을 탑재 등에 대한 기대가 크다. 모바일 혁신이 정체돼 시장에서 나타나지 못했던 전면적인 디자인·콘텐트 개선의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구성·기능·안정성·가격경쟁력 등의 문제가 있어 이를 단기간에 해결해 상용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375호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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