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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동북아시아 군비경쟁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모파상의 [두 친구]로 본 죄수의 딜레마... 우월전략 택하다 모두가 낭패 볼 수도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거울의 방. 이 방에서 1871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꺾은 프로이센의 빌헴름1세가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 사진:중앙포토
남북관계가 험해질 때마다 ‘전쟁불사론’이 나온다. 경제력 차이로 보나 군사력 차이로 보나 북한과 맞붙어서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력 충돌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엄청난 재산상 손실과 함께 수십, 수백만의 자국민이 죽어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영혼마저 파괴하는 가장 마지막이자 최악의 반문명적 선택이다.

기드 모파상은 세계 3대 단편소설가로 손꼽힌다. 그의 소설 중에는 전쟁이 배경인 작품이 많다. 특히 자신이 겪었던 보불전쟁은 자주 소재가 됐다. 보불전쟁은 1870~71년 사이 벌어진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이다. 프로이센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 수립을 선포한다. 프랑스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알자스-로렌지방도 잃었다. 프랑스로서는 대굴욕의 역사다.

[두 친구]는 전쟁이 일반인의 평범한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냉정하게 그렸다. 배경은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에워싸 고립시킨 1871년 1월이다. 시계상 출신의 모리소와 봉제 재료상인 소바주는 친구 사이다. 두 사람은 낚시광이다. 일요일마다 낚시터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절친’이 된다. 하지만 전쟁은 두 사람의 낙을 가져가 버렸다. 어느 화창한 날, 두 사람은 우연히 파리 시내에서 산책을 하다 마주쳤다. 올 들어 가장 청명한 이런 날에 낚시를 가지 못하다니. 압생트 두 잔에 취해버린 두 사람은 낚시를 떠나기로 의기투합한다.

홀로 자백하거나, 친구를 믿거나


이들이 즐겨 찾던 낚시터는 파리 외곽 아르장퇴유 인근의 마랑트섬. 프로이센과 대치해 있어 지금은 갈 수가 없다. 이들은 파리를 지키는 프랑스군으로부터 끝내 통행허가증을 얻어낸다. 텅 빈 벌판의 한쪽, 강둑 마른 갈대 속에서 두 사람은 낚시를 즐긴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로이센군에게 발각돼 체포된다. 프로이센군은 전쟁통에 낚시를 하는 이들을 첩자로 몬다. 그리고는 프랑스군을 통과할 때 필요한 암호를 요구했다. 납빛이 된 두 사람에게 프로이센 군인들은 총을 겨눈다.

보불전쟁은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정작 프랑스는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군은 나태했고, 무기는 부족했다. 감히 프로이센군대와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던 파리경비대는 ‘실내화를 신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로 변질됐다. 모리스도 파리경비대였지만 전쟁에 대한 현실 인식은 없었다. 그에게는 전쟁의 참상보다 당장 낚시를 하지 못하는 고통이 더 컸다.

프로이센 장교는 두 사람에게 암호를 실토할 5분을 준다. 두 사람이 말을 않는다. 장교는 다시 1분을 준다. 그래도 두 사람의 반응은 없다. 답답해진 프로이센 장교. 이번에는 전략을 바꾼다. 장교는 모리소의 팔을 붙잡고 조금 먼 곳으로 나가 제안을 한다. “그 암호는 뭔가. 당신 동료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오. 내가 유감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을 거니까.” 모리소가 말을 않자 이번에는 소바주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프로이센 장교가 두 포로를 설득하려한 방식은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론 중 하나다. 서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에게 최고의 선택이 되지 않는 게임을 말한다. 범죄 용의자 A, B 2명이 있다. 경찰이 이들을 탐문한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이 선택할 경우의 수는 네 가지가 있다. ①A, B 모두 침묵할 때다. 이 경우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둘 다 무죄가 된다. ②A만 자백을 하고 B는 침묵을 할 때다. A는 무죄, B는 징역 10년형을 받는다. ③A는 침묵하지만 B가 자백하는 경우다. A는 10년형을 받고 B는 무죄다. ④A, B모두 자백하는 경우다. 두 사람 각각 5년형을 선고받는다. 네 가지 경우의 수중 죄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것은 ①이다. 혐의가 입증이 안 돼 무죄다. 상식적으로라면 죄인들은 ①을 택한다. 그런데 실제로 같은 상황을 재현해보면 ④를 가장 많이 택한다고 한다. A, B 각각 5년형을 받는 선택이다. 왜 그럴까.

경찰이 머리를 썼다. A만 끌고 가서 “네가 자백하면 풀어주겠다. 끝까지 침묵하면 10년형에 처하겠다”고 말했다. A는 고민한다. B가 끝까지 입을 다물지 어떨지 자신할 수 없다. 만약 B가 입을 다문다면 나는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면 나는 무죄다. B가 입을 열었더라도 나는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 10년형이 아닌 5년형으로 감형되기 때문이다. 내가 실토를 했을 경우 나는 무죄거나 5년형을 받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10년형은 받을 일이 없다. A는 B가 어떻게 하든 실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똑같은 제안을 경찰이 B에게 했다. B도 고민해보지만 결국은 ‘실토한다’를 택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입을 열게 되고 각각 5년형을 받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기에게 유리한 전략이 한 가지뿐인 것을 게임이론에서는 ‘우월전략’이라고 부른다. A와 B는 침묵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만 각자 ‘우월전략’을 선택하다 보면 실토를 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한 대표적인 정책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실토하면 실토한 기업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감면해준다. 첫 번째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두 번째 기업에 대해서는 과징금의 반을 깎아준다.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해 서로 배신하게 하는 전략이다. 지구온난화도 ‘죄수의 딜레마’의 결과로 본다. 지구온난화를 막겠다며 탄소배출량을 감축시켜본들 다른 나라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 지구온난화 개선 없이 나만 상품경쟁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이 줄이든, 줄이지 않든 나도 탄소감축을 하지 않는 것이 ‘우월전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탄소배출감축은 요원하다.

동북아 군비경쟁도 ‘죄수의 딜레마’와 닮았다. 다른 나라가 군비를 줄이든 줄이지 않든 자국이 군비를 확장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한국의 사드 배치도,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도 개별적으로는 자국방어를 위한 최선의 전략이지만 동북아 전체로 보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는 ‘죄수 딜레마’의 결과

소설의 배경이 되는 파리 외곽의 아르장퇴유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에 자주 나오는 공간이다. ‘아르장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은 광활한 초록 위에 핀 울긋불긋한 빨간 꽃이 돋보이는 인상파의 대표작이다. 그런 아르장퇴유도 보불전쟁 중에는 ‘광활한 벌판은 텅 비어있고, 벌거벗은 버찌 나무들과 칙칙한 회색 빛 지대만 보인다’고 모파상은 소설 속에서 묘사했다.

모리소와 소바주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장교의 히든카드였던 ‘죄수의 딜레마’가 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총살되고, 밧줄과 돌덩이에 묶인 시신들은 강 속으로 사라진다. 장교는 두 사람이 낚은 물고기들을 보며 아무 일이 없었던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 물고기들이 살아있을 때 얼른 튀겨라. 아주 맛있을 것이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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