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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경쟁(마이클 포터)의 神’이 CSV(공유가치 창출)를 강조하는 이유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yspark@posri.re.kr
기업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어 … 공유가치 창출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해야

▎ⓒted.com
300년 이상 12대에 걸쳐 부를 일궈 온 경주 최부자집에는 육훈(六訓)이 전해 내려온다. 대대손손 명심해야 할 여섯 가지 가훈이다. 이 중에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다. 있는 자, 가진 자가 그보다 못한 자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 준다. 현대식 표현으로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해당한다. 요즘 많은 기업이 연탄을 나르고, 모내기를 하고, 배식 봉사를 하는 이유다.

육훈 중에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는 말도 있다. 굳이 그럴 것 까지야 싶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려면 당시로서는 소작농을 쥐어짜야 하는데, 그러면 장기적으로 소작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최씨 집안에도 손해다. 실제로 최씨 집안은 다른 부잣집들보다 30% 정도 낮게 소작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소작인들이 최부잣집 농사를 지으려고 줄을 서고, 더 열심히 일했을 수 밖에. 역시 일반인들과는 생각의 레벨이 다르다. 일방적인 시혜 차원의 CSR을 넘어 지주와 소작농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이러한 윈-윈 해법은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 창출)와 맥을 같이한다.

기업의 역할, CSR에서 CSV로 확대


▎사진:중앙포토
사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1980년 [경쟁전략], 1985년 [경쟁우위]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설파했던 ‘경쟁의 신(神)’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 전세계 기업들은 집중화하거나 원가 우위에 골몰했고, 밸류 체인을 이 잡듯 살펴 차별화를 도모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11년, 그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의 역할, 특히 CSV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기후 변화, 환경 오염, 물 부족, 사막화, 삼림 훼손, 식량 부족, 전염병 등 하나같이 시급한 문제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주로 NGO, 정부, 자선단체 등이 나섰다. 포터 교수 자신도 지금까지 4개의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선 바 있다. 허나 수십 년간의 순수한 노력 대비 결과는 실망스럽다. 여전히 우리 주변의 문제들은 그대로이고, 갈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더해지는 형국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포터 교수는 투입 자원의 절대 부족을 지적한다. 비영리 단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기업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은 모든 부(富)의 근원이다. 기업이 시장 수요를 충족하며 이윤을 남길 때, 비로소 그 이윤으로부터 세금도 내고, 소득도 누리며, 기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이윤은 모든 행동을 이끌어 내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다. 이윤과 연결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큰 사회 문제라도 차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갈 수 있다. 더구나 엄청난 규모의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과연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겠는가 하는 것인데, 자본주의가 성숙하면서 점점 희망이 보이고 있다. 흔히 사회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 간에는 상충관계가 있다고 믿어져 왔다. 사실 과거 기업들은 경제적 성과(이윤)를 위해 사회적 성과(깨끗한 환경, 안전한 작업환경)를 훼손했고, 기업에 대한 삐딱한 시각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공해 발생을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공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업이 많아 졌다. 작업 환경을 안전하게 바꿈으로써 안전 사고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 문제에 있어서도 기업의 역할은 확장일로다.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는 코트디부아르에서의 코코아 생산, 인도에서의 우유 생산 과정에서 자신들이 가진 신품종과 경작, 가공 기술 등을 현지 농부들에게 전수해 준다. 그 결과 현지 농가의 수입이 300% 가량 늘어난 것은 물론, 네슬레도 양질의 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네슬레가 과거 1980년대에 제 3세계 밀림 파괴와 아동 노동력 착취의 오명을 썼던 것에 비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영국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은 아프리카에 보급하는 휴대전화에 모바일 송금 서비스를 기본으로 장착했다. 은행 네트워크가 취약한 아프리카 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서였지만, 보다폰도 3년 만에 14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대박을 칠 수 있었다.

기업 위상과 역할 재정립 필요


▎‘기업의 사회적 역할’ 강연 동영상.
그 외에도 많다.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 본사를 둔 재인 관개 시스템(Jain Irrigation Systems)은 ‘같은 물로 더 많은 작물을(More crop per drop)’이란 슬로건 아래 태양광물 펌프 기술, 정밀 농업 및 관개 기술을 영세 농부들에게 제공해서 물 사용을 대폭 줄이고 수백만 농부들의 삶을 개선하고 있다. 브라질 삼림 업체인 피브리아는 오래된 숲을 파괴하는 대신 성장이 빠른 유칼립투스 나무를 키워 한 헥타르당 훨씬 더 많은 펄프와 종이를 생산해 낸다. 시스코는 지금까지 400만 명의 사람들에게 IT 기술을 교육시켜 고용 창출과 함께 IT 기술의 확산, 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국내 유통업체 중에서도 전국 방방곡곡에 숨겨져 있는 전통 먹거리를 발굴해서 판매 기회를 줌으로써 지역경제와 유통업체가 모두 득을 보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기업이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헌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기업이냐 반기업이냐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기업 스스로 위상과 정체성, 역할 범위를 재정립하지 못한데 있다. 과거 무작정 돈만 버는 역할에서 나아가 이제 때때로 생색내는 역할로 진화했다면 앞으로는 사회문제 해결의 주연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100년 기업, 더 나아가 최부자집 같은 300년 기업이 되려면 거기에 어울리는 긴 안목이 필수다. 앞으로는 소비자의 가치, 기업의 가치,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가 상호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수익 창출 이후에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포터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이 바로 사업모델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더 높은 차원의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싼 게 장땡이었던 시대를 지나 같은 값이면 새로운 기능에 손이 가는 시대를 거쳤고, 친환경이어야 안심하는 시대를 거쳐 이제 착한 기업의 제품에 끌리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TED 강연 막바지에 포터 교수의 마지막 외침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들이 스스로를 다르게 본다면, 또 다른 사람들도 기업들을 다르게 본다면, 세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한때 싸우는 법을 가르쳤던 포터 교수가 이제 무기를 내려놓고 세상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절정에 CSV가 있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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