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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4) 외환위기 책임론] 희생양이 필요했던 비이성적 소극(笑劇)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com
경제위기를 형법으로 처리... 소신 정책 위축시키는 부작용 초래

▎외환위기 관련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강경식 경제부총리(왼쪽)와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이 1998년 7월 10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환란(換亂)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감사’를 받아야 할 판이다. 감사원이 외환위기 관계자들의 증언을 무시한 채 ‘정치적인 결론’을 내린 의혹이 짙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1998년 4월 10일 발표한 외환위기 특별감사(특감) 결과에 대해 당시 필자가 쓴 비판 기사의 도입부다. 나는 감사원의 특감 발표자료를 읽으면서 그 조악함에 황당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감사원의 특감이 대중의 분노를 불사르기 위한 희생양 만들기라고 판단했다. 이 인식을 공유하고자 주간 뉴스플러스(현 주간동아) 130호에 ‘‘감사’ 받아야 할 특감’ 기사를 기고했다.

이 기사에서 나는 감사원이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건 세 가지 직무유기 혐의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결론 정해놓고 맞는 추측 등만 활용

감사원은 특감 발표 자료 중 ‘수사의뢰 요지’에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이 김영삼 전 대통령(YS)에게 한국은행 등의 외환위기 사전 경고를 무시하고 경제위기의 실상을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감사원은 두 사람의 이 같은 직무유기로 인해 YS는 외환위기의 긴박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YS가 11월 12일 윤진식 전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의 보고 등을 통해서야 상황이 심각함을 알게 됐다고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YS는 이 보고를 받고 김 전 수석을 채근해 14일에야 강 전 부총리로부터 IMF 협의 추진을 보고받고 재가하게 됐다.

둘째로, 감사원은 강 전 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청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혐의를 걸었다. 한국은행이 1997년 11월 9일 IMF와 긴급자금 조달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자 강 전 부총리는 “어떻게 창피하게 IMF에 가느냐, 내 재임 중에는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11월 16일 방한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에게 금융개혁법안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데 주력하면서 자금 지원 요청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를 문제 삼았다.

셋째, 강 전 부총리는 11월 19일 아침 YS에게 IMF 지원 요청을 당일 발표하겠다고 보고해 재가를 받고도 이를 후임자인 임창열 부총리에게 인계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주장했다.

감사원은 1998년 4월 10일 임시 감사위원회를 열고 강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정책 실패가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두 사람에게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5월 13일 외환위기 수사에 착수해, 18일 두 사람을 구속하고, 6월 5일 기소했다. 검찰은 감사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외환위기와 관련한 세 가지 직무유기 혐의로 두 사람을 기소했다. 두 사람은 9월 4일 보석으로 석방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27차에 걸쳐 진행됐고 1999년 8월 20일 판결이 내려졌다.

감사원 지적 그대로 받아들인 검찰


▎1. 1998년 4월 10일 안번일 감사원 사무총장이 외환위기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2. 1998년 11월 26일 열린 IMF 환란 원인 규명과 경제위기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지원본부 현판식. / 3. 1999년 1월 25일 열린 국회 IMF환란조사특위 전체회의에서 이경식 전 한국은행 총재(오른쪽),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증인 4명이 선서를 하고 있다. / 4. 외환위기로 수많은 시민이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을 돌려서는 아무런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사진은 외환위기 당시 가격을 대폭 할인한 IMF 깡드쉬(캉드쉬)정식을 광고하는 서울의 한 분식점.
감사원과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논리와 사실의 두 갈래로 반박할 수 있다. 세 가지 혐의는 각각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사실 측면에서 근거가 전혀 없거나 확실한 사실을 외면했거나 일부 추측만 반영한 것이다. 이하 서술에는 서두에 언급한 내 기사와 이교관 당시 시사저널 기자의 책 [누가 한국경제를 파탄으로 몰았는가], 강 전 부총리의 [강경식의 환란일기], 법원 판결문을 참고했다.

검찰은 강 전 부총리가 10월 29일 발표하기 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YS에게 보고하면서 상황이 외환위기로 급진전할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 사항을 일부러 빼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가 그 가능성을 “은폐, 축소 보고하는 식으로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YS는 감사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그날 “강 전 부총리로부터 외환위기의 실상에 대해 종합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YS는 또 김 전 수석으로부터는 10월 말을 전후로 매일 두세 차례에 걸쳐 금융·외환시장의 심각성을 보고받았다고 답변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강 전 부총리는 11월 10일 YS에게 시장 안정 대책을 보고하면서 IMF 구제금융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상황을 빠뜨렸다. 검찰은 강 전 부총리가 보고 자료에서 ‘IMF와의 협의’ 항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또 전날 관련 회의에서 IMF행이 거론되자 강 전 부총리가 “어떻게 창피해서 IMF에 가느냐, 내 재임 중에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보고서의 IMF 항목 삭제 지시에 대해 강 전 부총리는 “만에 하나라도 IMF행에 관해 대통령께 보고까지 했다는 사실이 밖으로 알려질 경우가 염려돼서였다”라고 설명했다. 전날 회의와 관련해서는 IMF에 금융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이라는 문제는 “이미 큰 방향이 잡혀서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보안문제 등도 고려해 논의를 자제시키고 주로 환율문제에 논의가 집중되도록 회의를 이끌어갔다”고 말했다. 법원은 “창피하다”는 발언에 대해 “증인들의 증언은 모두 추측에 불과하며 추측만으로 피고인 강경식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 무죄 판결···감사원장 “수사의뢰는 정당”


이 두 가지 직무유기 혐의는 논리도 빈약하다. 두 사람이 설령 경제위기의 실상을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이 조기 혹은 적기에 외환위기를 YS에게 보고했다면 YS가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능히 막을 수 있었을까. 그랬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제때’는 언제인가. 감사원과 검찰은 그 가능성을 주장하지 않았고 최적의 시기도 제시하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요청 회피 혐의도 같은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감사원과 검찰의 주장대로 두 사람이 만약 IMF 구제금융 보고를 피하며 늑장을 부렸고 그게 문제가 됐다면, 검찰과 감사원은 더 일찍 언제 보고했으면 위기를 진화할 수 있었을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했어야 했다.

지난 회(1375호, IMF 구제금융 협상)에서 다룬 것처럼 임창열 부총리는 한국 정부가 합의한 IMF 자금지원을 번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렸다. 이에 대해 임 부총리는 이 사안에 대한 업무 인계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변명했고, 검찰은 이 발언을 강 전 부총리에 대한 직무유기 혐의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법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장관이 교체되면 그 임무의 인수·인계는 통상 부하직원으로부터의 업무보고 형식으로 된다”는 관행을 들었다.

임 부총리가 재경원 간부들로부터 보고를 받았으리라는 얘기다. 임 부총리가 IMF행을 보고받았음은 그가 1998년 2월 17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로버트 데이비스 기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드러났다. 그는 여기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결정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고려하면서 다른 경제장관들과 논의한 끝에, 구제금융 신청을 연기하기로 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를 얻었다”고 밝혔다. 구제금융 신청을 신중히 ‘결정’하기로 한 게 아니라 이미 결정된 바를 ‘연기’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재판장 이호원 부장판사)는 환란 선고공판에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의 외환위기 관련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특감은 김대중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한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재임 시기에 이뤄졌다. 한 감사원장은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이 무죄 판결을 받은 지 약 한 달 뒤인 1999년 9월 16일 퇴임했다. 한 감사원장은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의 무죄 선고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사원이 수사의뢰한 부분은 두 사람이 외환위기의 실상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데 대한 것이지 정책적인 사안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감사원의 수사의뢰 부분과 관련해서는 법원이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검찰도 구속기소를 했다. 감사원의 수사의뢰는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한 법조인다운 답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말은 ‘범인 열 사람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해서는 안 된다’는 형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그는 또 경제정책 판단에 형법을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빚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스기사] 반복된 역사, 변양호 신드롬 - 정책 판단 처벌하면 구조개혁 누가?


▎2009년 1월 15일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서울구치소에 나와 기자회견하고 있다.
“커다란 사회적 위기 때에는 그 실제 원인이 다양하다는 사실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엄청난 재난에 당황한 사람들은 미처 그것의 자연적인 원인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저마다 제 각각의 정도와 양상으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아무 강요도 하지 않은 사회 전체나, 유죄를 덮어씌우기가 손쉬워 보이는 타인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때 용의자들은 어떤 특별한 유형의 죄악으로 비판받는다.

박해자들은 항상 몇 안 되는 개인들도, 아니 한 개인이라도, 그 상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희생물의 책임은 사실 유무를 떠나서 터무니없이 과장된다.”

문학평론가 르네 지라르의 책 [희생양]에서 발췌한 글이다. 괄호 속 문구는 필자가 추가했다. [희생양]은 여러 신화나 설화에 나타난 희생양 메커니즘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1997년 외환위기 태풍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쓰나미가 덮치자 우리는 신화나 설화 속 집단처럼 희생양을 찾았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외환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했다. 큰 경제위기는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우리는 책임이 큰 각 부문의 리더들을 책망하기보다는 두 사람의 직무유기로 외환위기가 일어났다고 비난했다. 두 사람이 한국 경제 전체를 망가뜨렸다며 그들을 매도했다.

외환위기의 희생양 찾기와 번제(燔祭)는 감사원과 검찰이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사태를 복기하면서 교훈을 얻고 재발을 막을 방도를 단단히 실행하자는 의견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간혹 이성적인 제언이 나오긴 했으나 흥분한 다수의 큰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검찰의 수사를 차분히 비판했다. 조 교수는 1998년 4월 28일자 한국경제신문 칼럼에서 정책적인 판단과 대응을 “사법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외환위기는 모두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기왕 시작한 검찰 수사는 바로 우리 국민 모두를 직무유기로 고발하고, 각자 상당기간 실질소득과 재산의 감소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에 동참하라는 구형을 내리고 종결되기를 바란다”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한국 국민 모두의 직무유기에 대해 그는 “생산성보다 웃도는 봉급을 받아온 근로자의 책임이며, 투자 수익성보다 웃도는 금리를 받아온 예금주의 책임이며, 이익이 남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투자를 늘려왔던 기업인들의 책임이며, 그런 기업을 정리하려 할 때 못하게 했던 정치인들의 책임이며, 이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경제질서를 설득하고 정착시키지 못한 정책당국자들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의 칼럼에서 주목할 대목은 정책 대응의 결과만 놓고 담당자를 사법 처벌하는 행위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다. 그는 “우리 경제는 위기를 넘긴 것이 아니다”라며 “또 다른 위기를 맞고, 그래서 지금의 정책담당자들을 단죄하려 든다면 누가 소신을 가지고 기업, 금융부실 등 말 많고 어려운 구조개혁 작업을 하려 들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그리고 이로부터 초래되는 추가적인 비용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검찰은 조 교수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두 사람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반성하지 않았다. 검찰은 반성하지 않은 채 몇 년 뒤 다시 정책담당자를 희생양으로 잡았다. 2006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을 수사하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변양호 씨를 긴급체포해 별건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그를 기소했으나 이 건에서도 패소했다. 정책 판단과 대응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구속 수사와 기소는 ‘변양호 신드롬’으로 불리게 된 소극적인 공직 수행 행태를 빚었다. 검찰이 끝내 조윤제 교수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변양호 신드롬은 한국 경제에서 반복해서 불거지는 고질 증상이 됐다.

1377호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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