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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3) |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억대 연봉 컨설턴트 수제 맥주에 빠지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취미로 시작해 수제 맥주 양조 스타트업 세워... 5월 송도 시작으로 직영점 4곳으로 확대

▎지난 3월 20일 서울 성동구의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본사에서 만난 김태경 대표가 직접 양조한 60여 가지가 넘는 수제 맥주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컴퍼니의 서울 지사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했다. 회사에서 ‘맥주 덕후’로 통했다. 수조원이 넘는 모 맥주 기업의 M&A 프로젝트 컨설팅을 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능력을 인정받아 억대 연봉을 받는 팀장이 됐다. 2015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회사는 그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순환근무를 보냈다. 네덜란드 한쪽은 벨기에, 다른 쪽은 독일이 맞닿아 있다. 맥주로 유명한 나라들이다. 그는 주말마다 네덜란드·벨기에·독일 등지에 있는 맥주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주말에 집에서 쉰 적이 6개월 동안 딱 세 번 밖에 안 될 정도였다. 그곳에서 ‘취미로 시작했던 맥주가 이제 더 이상 취미가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 억대 연봉의 컨설턴트는 누구나 부러워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Amazing Brewing Company, 이하 ABC)’라는 수제 맥주 양조 스타트업을 열었다. 조그마한 공간에는 사람들이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펍도 열었다. 요즘 수제 맥주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태경(39) ABC 대표다.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받아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파는 수제 맥주가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 붐이 일고 있다. 수제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은 가게 이름을 공유하면서 유명 수제 맥주 집을 찾아다닌다. ABC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지난 2월 한국의 유명 벤처캐피털(VC)로 꼽히는 알토스벤처스와 본앤젤스가 투자한 것이다. 구체적인 투자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십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VC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전례에 비춰보면 VC가 이곳에 왜 투자했는지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20일 만난 김 대표는 “사람들이 ‘좋은 직장 그만두고 맥주집을 왜 차렸냐’ ‘왜 맥주 장사를 하느냐’고 말할 때 가장 서운하다. ABC는 장사가 아니라 맥주 기업”이라며 웃었다. “VC는 우리가 스타트업처럼 빠른 시간에 성장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ABC의 최종 목표는 오비맥주나 하이트진로 같은 기업과 경쟁하는 것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그는 4단계 성장 목표를 세웠다. 1단계는 ABC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하는 것이다. 창업 첫날부터 이 목표를 이뤄냈다. 김 대표는 “오픈 첫날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매일 손님들이 줄을 선다”고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와 펍의 규모를 늘려야만 했다.

이태원이나 강남 같은 핫플레이스가 아닌 인적 드문 성수동 주택가에서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업계에서 유명한 이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홈브루잉 대회에서 12번이나 우승했던 브루마스터 스티븐 박, 독일 베를린 VLB 양조 학교를 나온 김관열 팀장 등 업계 유명인들이 김 대표와 뜻을 함께 했다. 특히 스티븐 박은 호주 시드니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MBA 과정을 밟던 때 김 대표와 만났다. 앞길이 전도유망했던 젊은 청년에게 김 대표는 “뭐 그런 거 하냐. 나랑 그냥 맥주 만들자”라는 한마디로 그를 영입했다. 김 대표는 “내가 MBA도 취득했고, 컨설팅 일도 해본 업계 선배니까 내 말을 믿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2단계는 ABC 브랜드 확장이다. 김 대표는 “5월부터 송도를 시작으로 서울 잠실과 성수에 차례대로 직영점이 들어선다”면서 “투자를 받은 이유가 ABC 브랜드 확대를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현재 매달 15t 규모의 수제 맥주를 만들 수 있는데, 직영점이 4곳이 되면 매월 50t 규모로 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조장마다 특징을 가지고 수제 맥주를 만들 계획이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3단계는 유통이다. ABC가 만든 병맥주와 캔맥주를 대형마트에 유통하는 게 목표다. 현재 ABC에서 만든 수제 맥주는 맥주통에 담겨 전국 150여 곳의 수제 맥주 가게에 팔리고 있다. 법의 규제 때문에 대형마트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김 대표는 “지난 2월 말 정부가 내년부터 수제 맥주를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유통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그때를 대비해서 양조장 규모를 늘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O2O 서비스 ‘어메이징 익스프레스’ 개시

캔맥주 유통은 이미 시작했다. 지난해 8월 주류 관련 고시 규정이 개정돼 음식과 함께 하는 맥주 배달이 허용된 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3월 중순 서울 강남부터 ‘어메이징 익스프레스’라는 ABC 캔맥주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제 시작인데 인기가 너무 좋다”면서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이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마지막 4단계는 수출이다. 그는 “우선 동양인의 입맛에 맞는 수제 맥주를 찾는 게 우리의 숙제”라고 말했다. ABC를 한 단계 한 단계 성장시키면서 스타트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게 그의 역할이다. 김 대표는 “지금은 30여 명의 임직원 중 내가 가장 적은 월급을 받고 있지만,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쁨 때문에 억대 연봉을 받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맥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2005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P&G에서 일하다 2010년 미국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교 켈로그경영대학원에 유학을 떠났다. 그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라고 유학을 떠난 이유를 말했다. 그때 기숙사에서 가까운 한 마트에서 100여 가지가 넘는 세계 각지의 맥주를 보게 됐다. 그는 “당시 맥주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며 웃었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맥주 양조장을 찾게 됐고, 한국에 10명도 없다는 맥주 자격증 시서론(Cicerone)도 미국에서 취득했다. 취미로 시작했던 맥주 입문이 전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취미가 생업이 됐는데, 여전히 재미를 느끼고 있을까.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맥주가 취미를 넘어섰다고 느꼈다. 지금은 스타트업을 큰 기업으로 만들어나가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ABC의 매출 목표는 50억원 정도다.

1378호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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