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5) | 철학이 늑대를 만났을 때] 늑대와 춤을 출 준비가 돼있는가?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개 조련하는 방식으로 늑대 키울 수 없어... 야성적 인재 받아들이려면 CEO와 조직이 변해야

어느 날 지역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이런 문구를 봤다면 어떨까. ‘96% 늑대 분양’.

늑대? 아마 키우겠다는 생각은 안 할지라도 눈길이 한동안 머물 것이다. 그런데 이 문구를 보자마자 당장 달려가 집안에 들여놓은 사람이 있었다. 생후 6주라는 새끼 늑대의 순혈도가 사실은 96%가 아니라 100%라는 말이 호기심을 더 증폭시켰다. 녀석의 부모는 알래스카와 그 아래쪽의 툰드라 지대에서 자란 늑대들이었고 96%라는 수치는 정부에서 그 이상의 순혈 늑대를 팔지 못하게 한 것 때문이었다.

‘100% 순혈 늑대라….’ 어릴 적부터 덩치가 산만한 개들과 뒹굴며 자라온 터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궁금했다. 늑대는 어떤 녀석이고 늑대와 함께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궁금증이 현실화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녀석은 집에 도착한 지 2분 만에 거실의 커튼을 몽땅 잡아당겨 바닥에 좍 늘어놓았다. 망가진 커튼을 수습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더 큰 사고를 쳤다. 에어컨과 실외기를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관을 몽땅 물어뜯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게 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야생의 본성을 즉시 실천했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녀석은 120여 만원(약 1000달러)이나 되는 거금을 쏟아 붓게 만들었다. 500달러는 자신의 몸값으로, 나머지 500달러는 에어컨을 고치는 수리비로. 물론 녀석의 정체성 드러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호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되었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개들과는 차원이 다른 게 분명했다. 이 녀석과 어떤 관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빨리 설정해야 했다.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를 18개월 만에 졸업하고 미국 앨라배마대 철학 교수로 부임한 마크 롤랜즈는 혼자 사는 적적함을 달래려다 생각지도 않은 늑대를 만났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듯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문명의 상징인 철학이 거친 야생의 상징인 늑대를 초대한 것이니 말이다. 어느 날, 촉망 받는 철학자의 삶에 들어온 야생의 늑대와의 만남, 철학이 늑대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 보는 순간 새끼 사자처럼 생겼다는 생각에 브레닌‘(brenin)’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는데 녀석은 딱 그대로 행동했다. 브레닌은 영국 웨일즈 말로 ‘왕’이라는 뜻인데, 진짜 사고뭉치 왕이 되었다. 녀석은 야생에서 살아온 존재의 후손답게 지루한 걸 참지 못했다. 집에 놓고 외출하는 순간 집안은 녀석의 호기심 천국이 되었고 곧 엉망진창이 되었다. 뭐든지 물어뜯어 어질러놓아 남아나는 게 없었다. 당연히 함께 살기 위한 제1 규칙을 서둘러 정해야 했다. ‘항상 어디든 같이 다닐 것!’

순혈 늑대를 길들인 철학자


▎어린 새끼 늑대. 귀여운 모습 속에 굴복시킬 수 없는 야성이 숨어 있다.
한눈에 봐도 보통 개와 다르게 보이는 녀석을 사람들에게 좀 특별한 혈통의 개라고 소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강의할 때 강의실 한쪽에 조용히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 같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칙을 익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웬만한 조련사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만큼 길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 자기보다 더 덩치가 큰 개들과 같이 살아본 경험으로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동안 경험했던 개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우선 녀석은 지프 뒷좌석 자기 자리에 누워 편히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절대 눕는 법이 없었다. 1300km나 되는 장거리 출장에서도 항상 창 밖을 주시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야생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눈 감고 편히 잘 수 있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또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르는 편이 아니었다. 애교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어 개가 보는 앞에서 나무 막대기를 저 멀리 던지면 개는 신이 나서 물어온다. 하다가 그만두면 더 하자고 졸라댈 만큼 사족을 못 쓴다. 뭐든 더 시키라고 보채기까지 한다. 녀석은 달랐다. 막대기를 저만큼 던져주면 그를 이상하게 보곤 했다.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어오라고요? 왜요? 필요하면 직접 가져올 것이지 왜 나를 시켜요? 다시 가져오게 할 거면 애당초 왜 던졌어요?’

녀석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이 있었다. 당연히 길들이는 법도 달라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잊을 수 없는 의미를 준 이 과정을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으로 남겼는데 사실이 책은 ‘다른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누누이 말하듯 앞으로는 늑대 같은 조직, 늑대 같은 인재가 필요한데 알다시피 이런 야성적 인재들은 조직 친화적이 아니다. 새끼 늑대 브레닌이 문명을 낯설어 하듯 이들은 구획되고 위계서열 가득한 문화에 숨막혀 한다. 남다른 일을 알아서 해내고, 그러기 위해 모험적이며 끈질기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은 결국 떠나버리고 만다. 바로 이런 문제, 그러니까 늑대 같은 인재를 어떻게 조직에 적응시켜야 하는가 하는 과정이 이 책에 있다.

젊은 철학자가 늑대와의 접점을 만들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녀석에게 다가가는 방식, 즉 마음가짐에 있었다. 요즘 개를 키우는 사람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말을 듣지 않는다 싶으면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하는 식으로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명령하고 너는 따라야 한다’는 이런 방식은 상대의 굴복을 전제한다. 누가 굴복을 원할까. 아무리 상대가 개라고 해도 이런 방식은 악화된 관계를 만들어, 좋은 성향을 갖게 하기 힘들다. 성공한다 해도 기계적인 ‘지배-복종’ 관계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창의가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너무 흔한 보상과 칭찬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예쁘다” “잘했어” 하면서 맛있는 걸 무작정 주고 칭찬을 남발하면 개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보상이 주어지는데 왜 애써 뭔가를 하겠는가? 안 한다. 더구나 먹이보다 흥미로운 게 나타나면 그쪽으로 가버린다. 어떻게든 좋을 걸 주려고 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은혜도 모른다”고 화를 낼 만하다. 사실은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으면서도 그걸 모르니 개를 탓하고 화를 낸다.

롤랜즈는 다르게, 그러니까 늑대의 관점에서 시작했다. 저 녀석은 왜 내 말을 들어야 할까? 왜 훈련을 받아야 할까? 주인이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이 상황을, 아니 이 상황이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여 이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시키려고 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끼 늑대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그는 세상이 녀석에게 뭘 원하는지 알려주는 걸 자신의 역할로 삼았다. 녀석이 살아가야 할 곳은 야생이 아니라 생존의 법칙이 완전히 다른 인간 사회라고 말이다. 훈련이라는 것은 굴복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게 아닌가?



‘지배-복종’ 프레임 아닌 늑대의 관점에서 접근


▎청년 스티브 잡스는 조직에 순응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 같은 존재였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었다. 개들과 다른 늑대에게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방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들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활용’하기도 하지만 늑대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문이 닫혀 있으면 개들은 사람을 쳐다본다.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자꾸 쳐다보는데도 자신을 봐주지 않으면 짖거나 다가가 옷을 물어 당겨서라도 주의를 끈다. 이뿐인가. 개는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인간의 표정을 읽는다. 사람이 부르면 개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해석한다.

늑대는 달랐다. 사람의 표정을 읽을 줄도 몰랐고 읽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야생에서는 그런 게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늑대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하나였다. 녀석에게 뭐가 필요한지 그들의 언어와 방식으로 알려주어야 했다. 예를 들어 다른 개들과 마주쳤을 때 공격적인 상황이 조성될 때가 있다. 이럴 때 보통 개들이라면 말로 하거나 목줄을 잡아당기면 된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목덜미를 양손으로 쥐고 고개를 들어올려 시선을 자신에게 맞추게 하는 것이다. 야생의 늑대 무리에서 이건 확실한 언어다. ‘하지 말라. 정 하려면 나하고 하라!’ 우두머리가 하지 말라는데 하는 건 우두머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즉시 멈춘다.

물론 아는 것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녀석을 이끌려면 실제로 우두머리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헬스장에 가서 피나는 운동을 해야 했다. 2년 만에 어깨 높이가 90cm 가까이 되고 몸무게가 70kg 가까이 나가는 녀석을 힘으로 통제하는 우두머리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녀석에게도 목줄과 같은 통제수단이 필요했을까? 물론이었다. 단,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효과적인 통제와 정확한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쪽으로 가야 하는데 저쪽으로 가려고 하면 목줄로 잡아당겼고 앞서서 걸으면 무릎으로 옆구리를 툭 쳤다. 야생에서 이것은 구성원이 우두머리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다. 상황을 판단하고 무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보스의 고유 역할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보스가 그런 것처럼 어떤 감정도 담지 않았다.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차분하고 단호하게 녀석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쳤다.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먼저 보였다. 녀석은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자기 방식으로 행동하려고 했지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본 결과 협조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고는 순순히 따랐다.

늑대 같았던 청년 잡스와 그를 알아본 부쉬넬


▎마크 롤렌즈가 쓴 <철학자와 늑대> 원서.
그 순간 둘을 강제적으로 연결하는 목줄은 더 이상 필요성을 잃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확실하게 알았는데 왜 그게 필요하겠는가. 야생의 무리에서 늑대들은 상대를 속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규율을 지키면 그 외에는 자유다. 롤랜즈는 조련사들조차 포기하는 진짜 늑대와 11년을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소리를 치거나 때린 적이 없었다(녀석은 천수를 누리고 떠났다). 이뿐인가. ‘지배-복종’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고 교감하는 관계를 만든 덕분에 녀석의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야성적 사고의 진수를 배울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철학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이제 세상은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많은 첨단기술이 우리의 눈을 현혹하지만 이 물결의 핵심은 사람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조직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은 이런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야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인재는 조직에 순응적이지 않다. 그러니 조직을 미래로 이끌어가는 리더는 어떻게든 이런 이질적 인재를 품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언젠가 웬 히피 같은 복장을 한 젊은이가 제법 규모가 큰 게임회사를 찾아와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인사 담당자의 대답은? 말할 것도 없이 ‘노(No)’였다. 그런데도 떼를 쓰며 소란을 피우자 이를 본 사장이 “한 번 해보라”며 말단 기술직으로 채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출근 첫날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회사에서 자겠다는 것이었다. 보안 책임자의 대답은? “규정이라 안된다!” 노(No)였다. 하지만 사장은 규정을 바꿔 그렇게 하게 했다.

2년 후 이 회사는 그가 만든 히트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고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이제는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다. 무작정 찾아와 떼를 쓴 야성적 인재를 알아본 잡스의 첫 보스 놀란 부쉬넬은 “(잡스의) 눈이 달랐다”고 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일하도록 해주었고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혹시 우리 조직에 이런 인재들을 끌어오려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 진짜 늑대를 키워 본 철학자가 한 애정 어린 충고가 있다. “녀석들은 개와 다르다. 그래도 정 키워야겠다면 그때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변해야 ‘늑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박스기사] 개와 늑대, 누가 더 똑똑할까? | 불확실한 상황에선 늑대가 해결 능력 뛰어나

유전적으로 사촌인 개와 늑대. 개는 인간과 함께 살아오고 있고 늑대는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누가 더 똑똑할까?

많은 연구에 의하면 이런 질문은 사자와 악어 중 누가 이길까, 하는 것과 같다. 사자와 악어의 싸움은 어디서 싸우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물에서 싸우면 악어가 이기고 뭍에서 싸우면 사자가 이긴다. 개와 늑대도 마찬가지다. 똑똑한 분야가 서로 다르다. 개는 사람과 함께 살아왔기에 정해진 상황이나 지시를 수행하는데 뛰어나다. 막대기 던지기 놀이처럼 말이다. 그렇게 훈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개는 가장 먼저 사람을 쳐다본다. 주인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늑대는 야생에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뛰어나다. 야생에서는 아무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1381호 (2017.04.2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