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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5) | 에누마] 장애아 위해 만든 토도수학, 전 세계 앱 교육 시장 휩쓸어 

 

미국 1000여 개 초등학교에서 정규 교재로 사용... 한·미·중 벤처캐피털에서 투자 받아

▎6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수인 에누마 대표를 4월 18일 서울 성수동 사무소에서 만났다. 에누마의 본사는 미국에 있다.
“어떤 일을 했나요?”

“온라인 게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아이를 위해서 당신의 능력을 활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한마디였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게임 기획자는 미국 UC버클리에서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남편을 돕기 위해 2008년 미국에 건너갔다. 남편도 게임 업계에서는 유명한 엔지니어였다. 두 사람의 미국행은 성공을 위한 하나의 단계였다. 남편의 박사 과정이 끝나면 두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 회사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2008년 겨울. 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의사로부터 “몸이 좋지 않아 나중에 학습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위해서 특수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부부의 원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라고 의기소침해 있는 한국인 엄마에게 미국인 의사가 던진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애플 앱스토어 1위, 구글에선 최고의 패밀리 앱 선정

의사의 말을 들은 날 남편과 함께 ‘특수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수많은 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찾았다. 그의 눈에는 모든 콘텐트와 서비스가 부실해 보였다. ‘나라면 멋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텐트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2012년 미국 버클리에서 창업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enuma) 이수인(40) 대표의 이야기다.

에누마는 서울과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얼마 전 둘째 딸을 낳고 6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이 대표를 한국 사무소에서 만났다. 에누마는 ‘하나 하나 센다, 열거하다’라는 단어 ‘이누머레이트(Enumerate)’에서 따온 말로 ‘모든 아이를 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누마가 서비스하고 있는 모바일 앱인 ‘토도수학(todomath)’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 앱으로 꼽힌다. 2014년 6월 애플 앱스토어에 론칭된 이후 미국·한국·중국 등의 앱스토어에서 교육 카테고리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여전히 앱스토어에서 우리 앱이 1위를 하고 있고, 전 세계 애플 매장에 전시된 기기에 토도수학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고 말했다. 토도수학은 2016년 7월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출시됐고, 그해 ‘구글 스토어를 빛낸 최고의 패밀리 앱’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미국소프트웨어정보산업협회(SIIA)는 ‘2016년 최고의 모바일 앱과 최고의 영유아 앱’ 후보로 토도수학을 올려놓기도 했다.

미국을 포함해 한국과 중국·일본 등지에서 토도수학은 영·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이 가장 좋아하는 수학 앱으로 꼽힌다. 토도는 스페인어로 ‘모든’이라는 뜻이다. 영어·한국어·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고, 4월 현재 35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1000여 개의 초등학교가 토도수학을 정규 수업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에누마의 비즈니스 모델은 일반 사용자의 경우 ‘인 앱 퍼처스(In App Purchase)’와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B2B(기업간 거래)로 나뉜다. 이 대표는 “구체적인 매출액은 밝힐 수 없지만, 계속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도수학은 원래 일반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장애아를 위한 앱으로 개발됐다. 장애가 있는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인터페이스와 디자인이 강점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게임 기능도 접목했다.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이 대표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장애를 겪는 아이뿐만 아니라 비장애 저학년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부모들도 토도수학을 다운받아 아이들 수학 교육에 사용했다. 시장성이 없다고 투자를 거절했던 미국의 투자사들도 에누마를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소프트뱅크벤처스, 중국의 TAL 에듀케이션그룹 등이 2015년 2월 400만 달러(약 45억)를 투자했다. TAL 에듀케이션 그룹은 중국의 방과후 학원업체 중 가장 큰 규모의 회사로 꼽힌다. 이 대표는 “우리 앱이 중국 앱스토어에서 1위를 하면서 TAL 에듀케이션 그룹이 우리에게 투자를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누마는 지금까지 500만 달러 정도의 투자를 유치했다. 창업 초기에 투자한 미국 벤처캐피털(VC) ‘K9 벤처스’ ‘뉴스쿨 벤처 펀드’ 등을 포함하면 에누마는 한국·미국·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글로벌 스타트업인 셈이다.

에누마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화려한 멤버 때문이다. 이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수인 대표의 남편이자 엔씨소프트에서 함께 일했던 이건호 박사다. 이 대표는 “우리는 동갑내기로 서울대 동문이다. 나는 미대 출신이고, 남편은 공대 출신인데 1학년 때 하이텔 서울대 동호회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남편이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유명한 논문에도 참여했다. 그 논문은 관련 분야의 필독서로 꼽힌다”면서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와 함께 일하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스탠퍼드대에서 MBA와 교육학 석사를 받은 정유진, 하버드대 교육학 석사를 받은 김민경, UC버클리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딴 이혜경 등의 전문가 20여 명이 에누마에서 일하고 있다.

태블릿 기반 앱 ‘킷킷스쿨’도 주목

이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위한 앱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미국의 VCK9벤처스의 마누 쿠마르 대표가 주목했던 것. 프로젝트가 끝난 후 쿠마르 대표는 이 대표에게 “투자를 할 테니 창업을 하라”고 권유했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거절했고 4개월 만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창업을 하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것과 창업은 전혀 다른 일”이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창업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은 2015년 시작된 엑스프라이즈 글로벌 러닝(XPRIZE GLOBAL LEARNING) 대회다. 미국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주최하고 유네스코와 탄자니아 정부가 함께 진행하는 개발도상국 어린이 교육 관련 오픈소스 솔루션 공모전이다. 에누마는 ‘킷킷스쿨’이라는 솔루션을 응모했다. 유치원부터 2학년까지의 언어와 수학 과정을 담은 태블릿 기반의 앱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굿네이버스와 손을 잡고 이 솔루션을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테스트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토도수학의 개발 노하우를 살려 킷킷스쿨을 개발했기 때문에 엑스프라이즈 글로벌 러닝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 파이널 리스트에 포함되는 5개 팀이 발표되는데 각 팀에는 100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2019년 초에 우승팀이 발표되는 데 우승자는 1000만 달러의 상금을 받게 된다. 이 대표는 “아직도 전 세계 2억5000만 명의 아이들이 읽고 쓰기를 배우지 못한다. 이들을 위한 좋은 콘텐트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1382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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