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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근로시간 확 바꾸자] ‘나인 투 식스’ 근무 규정 없애자 

 

근로시간은 인격권이자 국격 … 초과근로 줄이면 일자리도 늘어

근로시간은 노동법을 있게 한 근간이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로자의 몸부림과 일터에 붙잡아두려는 사측이 갈등을 빚으며 노동법이 탄생했고, 개정을 거듭했다. 그래서 ‘근로시간은 인격권’이라는 말이 나온다. 근로자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건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권혁 부산대 법대 교수는 “외국에선 흔히 기술집약적인 상품을 한국산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장시간 노동을 통한 착취의 산물이라 여긴다. 일본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게 국격과 기업의 품격을 높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황용석 롯데그룹 인사노무담당 상무는 “근로 시간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며 “고용량, 생활의 질, 생산성 모두 근로시간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시간 근로는 고속성장의 산물이다. 인격권보다 성장동력이 우선시되던 시대에 통했다. 지금은 다르다. 가족과 여유가 어우러지는 근로가 중시되는 시대다. 성장동력도 시간을 투입하는 것보다 창의성에 기댄다. 지친 상태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없다. 창의성을 북돋우기 위해서도 효율적인 근로시간 활용이 필요하다. 그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기본 토대다.

이런 생각에 따라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고용노동분과위원은 근로시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것을 호소했다. 근로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면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도 없다.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근로시간=생산량’의 공식이 통했던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를 과감하게 수정하고, 의식도 바꿔야 한다고 위원들은 봤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중심으로 일하는 시대는 갔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런 관점에서 근로시간을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제 1 | 하루 8시간 근로규정 없애자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두는 나라는 한국과 프랑스, 일본 뿐이다. 한국은 하루 근로시간까지 8시간으로 제한한다. 나머지 국가는 대부분 주당 48시간 규정만 둔다. 일일 근로시간 규정은 없다. 단체협약이나 근로계약을 통해 주 48시간 범위 안에서 유연하게 조정한다. 회사와 근로자의 사정에 따라 하루에 10시간도 일할 수 있다. 주당 40시간인 한국에 이를 적용하면 하루 10시간씩 일하면 주4일 근무도 가능하다. 연장근로의 개념이 아니라 효율적 배분의 개념으로 근로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셈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도 맞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EU)는 근로시간 규제방식을 이미 주당 근로시간 개념으로 바꿨다. 하루 일하는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꼭 필요한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 개인과 가정의 문화를 챙기도록 배려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가고 있다”며 “주5일 근무를 강제하는 것은 시대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과제 2 | 통상임금 높이고 가산금 낮추자

규정만 바꾼다고 근로시간이 주는 건 아니다. 의식을 바꿀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고용량을 늘리는데 따른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그래서 있는 근로자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고, 그래서 연장 근로를 선호했다”고 진단했다. 이상학 한국투명성기구 이사(전 민주노총 정책실장)는 “법적 조치만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에 한계가 있다”며 “시장적 조치를 통한 의식변화를 유도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임금이란 얘기다. 한국 근로자 소득의 30% 이상은 초과근로에서 생긴다. 역으로 초과근로를 줄이면 고용량도 그만큼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분과위원들은 “사용자에겐 오래 일을 시키면 손해가 나도록 하고, 근로자에겐 장기간 일하는 데 따른 소득 기대치를 줄여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선 연장근로수당의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올리는 대신 연장근로에 따른 가산금을 낮춰야 한다. 다행히 통상임금이 오르면서 가산임금 비중이 덩달아 높아져 토대는 마련돼있는 상태다. 그러나 연장근로 가산금은 여전히 50%다. 선진국은 높아야 25%다. 김영기 대한산업안전협회장(전 LG그룹 노경담당 부사장)은 “수당과 낮은 임금 모두 초과 근로의 유인책이 되면 안 된다”며 “기업의 이익측면에선 논란이 일겠지만 이는 개인과 가족을 중시하는 청년세대에도 부합하고, 고용을 늘리는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제 3 | 휴식과 휴가를 보장하자

근로자 휴식보장책이 필요하다. 분과위원들은 유럽을 벤치마킹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 각국은 일한 시간에 비례하는 휴식 시간 보장 조치를 속속 취하고 있다. 대체로 9~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한다. 이 때는 연락을 금지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금지하는 게 아니라 15분 이내의 짧은 연락은 가능하다. 그 이상이면 휴식을 방해한 것으로 간주한다. 호주 멜버른은 888운동(8시간 일하면 8시간 레저하고, 8시간 쉬자)을 정착시키고 있다. 일본에서도 퇴근 후 출근할 때까지 일정시간의 휴식을 주는 인터벌 운동이 한창이다. 권혁 부산대 법대 교수는 “근로시간 단가가 낮다 보니 사용자는 근로시간을 철저히 관리하기보다 필요할 때 불러서 쓰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있다”며 “카톡지시도 생각날 때 시키는 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용자 측의 노무관리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퇴근 후 휴식과 일과 중 휴식시간을 분리해 느슨한 휴식시간의 개념 재정립도 필요하다는 게 위원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독일의 휴식시간은 6시간당 20분이다. 9시간이 넘으면 45분을 준다. 한국은 8시간에 무조건 1시간(대체로 점심시간)이다. 이러다 보니 하루 8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휴식시간에 대한 개념을 두고 충돌이 인다. 현실과 규제가 맞지 않는 셈이다. 또 선진국처럼 연차휴가를 의무적으로 소진토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이를 방해하는 사업주는 형사처벌하고, 근로자가 소진하지 않으면 금전으로 보상하지 않는다. 주완 김앤장 변호사는 “유럽은 연차휴가를 방해하면 형사처벌까지 한다. 연차휴가를 가지 않으면 기업 쪽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제 4 | 사문화된 노사협의회 활성화하자

근로시간을 주당 일정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조정하고, 휴식시간을 제대로 가지려면 노사협의가 필요하다. 한데 근로시간 논의에서 근로자 측 입장은 노조가 나서 교섭하고, 협상한다. 이상학 이사는 “유럽은 노사간 교섭제도가 잘 발전됐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교섭권이 없는 사람은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자율을 실현하려면 모두가 대등해야 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10% 근로자를 둔 노조가 나서기 때문에 90%는 의견 개진은 물론 대등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1383호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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