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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 증시 열기와 일자리 대통령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장미꽃이 증시에도 피는가. 코스피가 5월 들어 사상 최고 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갔다. 대선 전날인 8일 종가 기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첫날인 10일에는 장중 2300을 돌파했다. 한국 주식시장이 문을 연 1956년 이래 가장 높은 곳에 닿았다. 증시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기업실적이 개선되고 외국인투자가 몰렸다는 것을 증시 열기의 이유로 설명한다. ‘주식의 시대가 열렸다’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었다’ ‘지수 3000포인트도 가능하다’는 낙관적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운이 좋은 셈이다. 그는 코스피 사상 최고치에서 임기를 시작한 첫 대통령이다.

하지만 코스피 상승 배경을 들여다보면 웃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이번 지수 상승은 정보기술(IT) 기업, 꼭 집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주도했다. 올해 코스피 2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분 중 3분의 2는 두 기업에서 발생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코스피가 2300을 넘보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착시(錯視)’를 빼면 1900에 못 미친다. 한국 경제와 증시 모두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나타나는 극단적 현상이다. 게다가 주식시장은 정보가 빠르고 자금력이 막강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좌우한다. 외국인 자금 비중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넘는다. 외국인 자금은 글로벌 경기가 변화하거나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투자 메리트가 사라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증시를 흔들 수 있다. 활황 장세에도 개미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거나 한국 주식시장이 ‘외국인의 현금인출기(ATM)’로 비유되는 이유다.

외국인들은 왜 지금 한국 주식을 사들이나. 기업실적에 비해 값이 싸기 때문이다. 주가가 그 회사 주식 1주당 수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주요 국가보다 낮은 데서 보듯 한국 주식은 저평가돼 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 정치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한다.

새 정부로서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호기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른 시일 안에 정상회담을 하고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면 한반도 리스크를 줄임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할인)’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한반도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의 낮은 배당 성향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도 적잖은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숙제다.

주식시장은 실물경제의 거울이자 기업가치의 함수다. 코스피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증시가 기업의 자본조달 창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부문의 기업실적이 더불어 좋아야 한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의 잔치에 그쳐선 안 된다. 소수 수출 대기업의 호황과 나머지 기업들의 부진으로 나뉜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 수출과 내수 부문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창업 붐을 일으키는 등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증시의 신기록 달성에 취하치 말고, 왜곡된 산업구조의 판을 바꿔 일자리 창출로 연결시켜야 대선 때 그토록 강조한 ‘일자리 대통령’이 가능해진다.

1384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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