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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정치인’ 트럼프의 두 얼굴(1)] 무모하고 뻔뻔한 사업가 … 포기도 빠르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항공·카지노·모기지 등 10개 사업 평균 3.7년 만에 접어... 정치·외교도 막히면 ‘회피’ 전략으로 대처

▎트럼프의 대표적인 실패사업인 트럼프 스테이크. / 사진. Flickr
생선을 싼 삼베에는 생선 비린내가, 꽃을 싼 삼베에는 꽃향기가 밴다. 불혹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듯 삶의 궤적과 인품은 행동과 말투,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올 초만 해도 고립주의를 표방하던 미국이 4월부터 적극적인 개입 전략으로 외교 노선을 선회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처럼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 무기를 이유로 들었다. 서로 으르렁대던 유럽·중국과는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최신예 항공모함인 칼빈슨호를 한반도 일대에 배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과 내통설이 나오고 있는 러시아를 압박하는 한편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 포기 선언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돌연 김정은에 대해 “꽤 영리한 녀석(smart cookie)”이라며 “만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의 갈지자 행보는 종잡을 수가 없다.

최근 미국의 외교 노선 변화는 사업가로서 트럼프의 무모함이 묻어난다. 트럼프는 모기지·항공·카지노·보드카·보드게임·잡지 등 10여 개 사업에 진출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여러 곳 투자가 실패해도 한 곳만 대박 나면 된다는 부동산 사업자의 심리다. 정치처럼 자신의 비전문분야에서 마구잡이로 수 싸움을 한 전력도 적지 않다. 트럼프는 미국의 주택 시장이 뜨겁던 2006년 주거 및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트럼프 모기지 LLC’를 출범했다. 이 회사는 기존 업체들과 달리 대출은 물론 대출 주선까지 했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금융 분야를 잘 모른다며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이 예견은 적중했다. 당시 미국의 모기지 시장에는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 이듬해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2008년에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레드오션에 뛰어든 트럼프는 임금 체불 등으로 직원들에게 소송만 당한 채 모기지 사업에서 물러났다.

지지율 급락, 1·2호 법안 실패하자 외교전략 수정


▎사진. 중앙포토
항공사업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항공’(Trump Airlines)은 1989년 설립해 92년 매각했다. 중형 항공사 ‘이스턴에어셔틀’을 인수해 설립한 이 항공사는 금테 두른 화장실과 크롬 안전벨트, 전 승무원에게 진주목걸이, 헬리콥터 서비스 등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셀프 체크인 등 혁신적인 시스템도 도입했다. 그러나 3억8000만 달러(약 4325억원)의 대출을 갚을 만큼의 돈벌이는 안 됐다. 당시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브랜드화했다. 보스턴글로브는 “트럼프는 항공사 첫 취항 때 라이벌인 팬아메리칸월드 항공을 안전하지 못하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며 “트럼프는 전형적인 허세와 브랜드 메이킹으로 언론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트럼프의 강점은 오히려 ‘실패 이후’나 ‘실패 관리’에서 엿볼 수 있다. 실패할 일에 고집스럽게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한다. 모기지 사업은 소송전이 돌입하기 시작하자 2년 만에 철수했다. 항공 사업은 걸프전이 터지자 22개 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탈출했다. 트럼프가 포기한 주요 10개 사업의 평균 지속 연수는 3.7년에 불과하다. 세금 문제로 문을 닫지 않다가 2008년 파산한 카지노를 제외하면 2.7년밖에 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최근 외교 노선에 변화를 준 것은 국내 정치와 외교적 고립주의가 여의치 않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트럼프는 취임과 함께 자신의 1, 2호 정책인 ‘반이민 행정명령’과 ‘트럼프케어’ 실행에 실패했다.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그러자 갈등을 빚던 서유럽·중국에는 화친의 메시지를 보냈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북한·시리아·아프가니스탄을 강하게 압박한 것이다. 러시아의 팽창 정책에 부담을 느끼던 유럽과 환율조작국 지정 등 경제제재를 우려하던 중국으로서도 미국과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 난관에 부딪히면 빠른 ‘엑시트’(exit) 유연 전략


▎트럼프셔틀이 운영하던 보잉727기. 트럼프는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유가 파동에 시달리다 채권단에 매각했다. / 사진. 위키피디아
현재 트럼프가 펼치고 있는 외교전략은 대통령 후보 시절 유색인종을 상대로 펼쳤던 ‘소수 따돌리기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일종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를 외교에 적용했다. 이는 ‘대세에 편승’이라는 트럼프의 투자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방이 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맨해튼은 한정된 자원이며, 사람과 돈이 몰리는 곳의 부동산은 오르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오르게 만드는 것은 투자,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은 투기”라고도 했다. 사람이 몰릴만한 희소 자원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능력이란 소리다.

일단 시리아와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무력시위를 감행한 트럼프의 외교 전략은 크게 성공한 모습이다. 이를 동력 삼아 지난달 26일에는 대대적인 세금감면을 담은 세제개혁안을 발표했다. 물론 지금도 편안한 상황은 아니지만 탄핵 위기까지 몰렸던 3월과 비교하면 정치적 부담은 한결 가벼워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이런 모습에 대해 “99일 중 91일은 적어도 한번 이상 거짓말 하거나 사실을 오도하는 주장을 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말과 행동을 쉽게 바꾼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강점은 뻔뻔함이다. 각자의 성격과 이미지에 따라 다르지만, 트럼프에게 뻔뻔함은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략적 판단은 유연하게 하지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써 지지층 이탈을 막고 있다. 항공사 매각 당시 트럼프가 1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 달러를 벌었다(made a couple of bucks)”고 응수했다. 사업가가 자신의 실패를 쉽게 인정했다가는 재기의 발판을 잃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트럼프케어가 실패했을 때도 “썩은 워싱턴 정치 탓”이라고 미 의회에 책임을 돌렸다. 이런 허풍과 기만 행동은 트럼프식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면모이기도 하다. ‘트럼프오가니제이션’은 애플·구글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이 아니다. 부동산을 싸게 매입해 비싸게 파는 딜러에 가깝다. 트럼프의 돌출행동과 화려한 사생활에 대한 집착도 이런 측면에서 비롯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의 취임 100일을 조명하는 특집기사에서 “허풍으로 허풍을 덮는 정치 경험 없는 이단의 지도자”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한미 관계 불확실성 커질 듯

트럼프는 판매 부진과 생산관리 실패로 손을 뗀 보드카 사업과 관련해서도 “성공적인 제품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감성 산업에 대한 관심을 넓힌 계기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에서의 유연함이 외교·정치적으로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사업에서는 불리할 때를 피하고 유리한 시점을 노려야 하지만 외교·정치는 신뢰를 바탕에 둔다. 정책의 일관성이 있어야 정치적 자산도 쌓인다. 이런 점 때문에 트럼프의 공약을 ‘허풍’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다. 정책을 과연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조셉 미나릭 미국 경제개발위원회 연구이사는 “최근 주식시장도 공약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라며 “트럼프케어, 세제개혁, 1조 달러의 인프라 투자 등 세 가지 주요 목표의 진전은 없어 보인다. 양분된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외교 전략 역시 불안감을 키운다.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면서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흔드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위비 증액,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설치 비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관련한 혼선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토마스 라이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처음엔 중국에 매우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다 갑자기 총구를 북한에 겨눴다”며 “중국의 부상과 지역경제 발전 등 아시아에 대한 명확한 정책과 비전은 없다”고 평가했다. 지미 카터·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테러리스트 협상자문을 맡았던 허브 코헨은 그의 책 [협상의 법칙]에서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 태도나 발언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트럼프의 정책과 외교 노선을 예의주시 하되 과민한 대응은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박스기사] 트럼프의 사업 실패 사례

1. 항공: 1989년 항공사 ‘트럼프 셔틀’ 창업, 1992년 채권자에게 소유권 이전

2. 음료: 생수 업체 ‘트럼프 아이스’ 2004년 창업, 2007년 상표 취소

3. 보드게임: 1988년 재산증식형 보드게임 ‘트럼프: 더 게임’ 출시. 판매량 80만장, 1990년 단종

4. 카지노: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1991년 설립, 2004년 기업회생 2008년 파산

5. 잡지: 2007년 명품 잡지 ‘트럼프 매거진’ 출간, 2009년 폐간

6. 주택대출: 2006년 모기지 사업 개시, 미 주택시장 경색으로 2007년 9월 종료

7. 스테이크: 2007년 판매 개시, 2개월 만에 판매 종료. 총 판매금액 5만 달러

8. 보드카: 2006년 스웨덴서 생산 개시, 2011년 공장 폐쇄

9. 여행: 2006년 온라인 여행 서비스 ‘GoTrump.com’ 개설, 영업부진으로 2007년 폐업

10. 통신: 1990년 전화통신서비스 사업 개시, 1992년 상표 등록 취소

1384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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